• 최종편집 2024-03-27(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1031일이 그야말로 코 앞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종교개혁을 맞이한 올 초부터 한껏 들뜬 모습이다. 지난 수년간 그야말로 끝을 모르고 추락한 한국교회에 있어 이번 종교개혁 500주년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한국교회 위기 탈출과 재부흥의 계기가 될 새로운 시작점으로 한껏 기대를 받고 있다.

현 한국교회 모습이 지난 500년 전 종교개혁의 전야와도 타락과 탐욕에 가득한 중세교회의 모습임을 자인하며, 한국교회가 제2의 종교개혁을 통해 새로운 교회, 온전한 교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개혁하려 하는 것인가? 사방 곳곳에서 외쳐대는 제2의 종교개혁의 진정한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난 500년 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며 발발한 종교개혁은 단순한 종교의 개혁이 아니었다. 종교를 넘어 사회 전체를 변화시켰고,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알렸던 개혁이었다. 물론 당시는 종교가 곧 사회였고,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삶과 행동 자체를 설명할 수 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이 모두를 개혁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당시의 종교개혁자들은 이미 종교를 넘어 사회 전체의 변화를 염두해 두고, 개혁의 깃발을 올렸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무엇을 말하는가? 국내 제1의 종교, 1000만 성도를 자랑하면서 이 사회의 어떠한 변화조차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 중 100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 기독교인이지만, 성경에 기반하고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정책이 통과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사회와 국민들의 불안과 위기 앞에 종교로서의 최소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제2의 종교개혁은 결코 교회 울타리 안에 갇힌 우리들만의 개혁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물론 한국교회 내부의 개혁이 너무도 시급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를 결코 좌시하자는 것도, 게을리하자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부의 자성적 움직임과는 별개로 종교개혁 500주년은 반드시 한국교회가 우리 한국사회와 공유해야 한다. 국민들의 안위는 뒷전이고 파벌싸움에 눈 먼 그릇된 정치권, 부정부패와 부조리가 도사리는 각종 제도권, 여기에 갈수록 심해지는 부익부빈익빈에 신음하는 우리의 이웃들, 종교개혁 500주년의 정신과 역사는 당장 우리 한국교회 뿐 아니라 이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다시 한 번 묻는다. 한국교회는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 종교개혁을 한국교회만의 공유물로 전락시킬 것인가? 루터의 종교개혁은 암흑에 가득찬 이 세상에 터뜨린 희망의 빛이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역시 이 사회와 국민들에 어떠한 희망을 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종교개혁 앞에 오직 무너진 한국교회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고민하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스스로 1000만 성도를 칭하고 있고, 이러한 숫자는 우리 한국사회를 충분히 바꾸고도 남을 원동력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교회 말고는 우리 사회 내 그 어떤 집단도 해내지 못할 일이다. 완전히 두 패거리로 쪼개진 정치권에게 이 일을 기대키도 어렵다. 이익을 기대하지 않고, 순수한 믿음으로 뭉친 1000만명의 집단은 이 땅에 오직 한국교회 뿐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정신을 온 국민에 나누고, 그들과 함께해야 하는 것 역시 한국교회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제2의 종교개혁은 복음을 교회 안에 가둬버린 높은 울타리를 허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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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종교개혁,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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