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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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학자인 스콧 페이는 그의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인생은 힘든 것’이라고 했다. 인생은 연약해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또한 세상은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시련을 극복하려 노력하지 않고 환경이나 남을 원망하고 탓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그때는 낙심이나 남을 원망하거나 ‘탓’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부정적인 말을 할 때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갓 지은 밥을 동일한 두 그릇에 담고 한쪽에는 ‘고마워, 사랑해’와 같은 긍정적인 말을, 한쪽에는 ‘짜증나, 미워 죽겠어’ 같은 부정적인 말을 일정 시간 동안 들려주었더니 긍정적인 말을 들은 밥은 하얀 누른 꽃이 피었고 부정적인 말을 들은 밥은 아주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시커멓게 썩어 있었다. 하물며 밥도 이렇게 큰 결과를 나타내는데 사람은 오죽할까? 서양 속담에 자신이 한 말을 가장 먼저 듣는 것은 자기 ‘귀’라는 말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들이 자신도 모르게 의식을 좀먹을 수 있다. 자기가 한말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시시 때때로 원망과 불평과 남이나 환경을  탓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쉽게 말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그런 습관이 들었다면 의식적으로 바꿔야 한다.  
김종래의 칭기즈칸의 리더십 혁명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이복형제와 싸우면서 자랐고 커서는 사촌과 육촌의 배신 속에서 두려워했다. 가난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다. 내가 살던 땅에서는 시든 나무마다 비린내 마른 나무마다 누린내만 났다. 배운 것이 없다고 힘이 약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글자라고는 내 이름을 쓸 줄 몰랐고 지혜로 안다. 자모카르를 당할 수 없으며 힘으로는 내 동생 카자르한테도 졌다. 대신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고 내 귀는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 나는 힘이 없기 때문에 평생 친구와 동지들을 사귀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나를 위해 비가 오는 들판에서도 밤새도록 비를 막아주며 나를 위해 끼니를 굶었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 탈출했다. 땡볕이 내려쬐는 더운 여름날 양털 속에서 하루 종일 숨어 땀을 비 오듯 흘렸다. 빰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했다. 가슴에 화살을 맞고 꼬리가 빠져라 도망 친 적도 있었다. 나는 숨을 쉴 수 있는 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적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생각건데 만일 그가 젊은 날에 환경이나 남을 탓했다면 그는 평범한 양치기에 불과 했을 것이다.    
문제를 대하는 자세를 볼 때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내 탓’ 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남의 탓‘ 으로 돌리는 사람이다. 문제를 보고 ‘내 탓’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본임의 책임을 정확이 보고 잘못을 인정하며 개선 방안을 찾는다. 그렇게 문제를 하나씩 해결에 갈수록 나날이 그만큼씩 발전 한다. 반면에 문제를 ’남의 탓‘ 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핑계거리와 변명거리를 찾는다. 그런데 남의 탓을 하면 내가 편해질 것 같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스스로 자괴감에 빠진 나머지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지름길이 된다. ‘내 탓‘을 하는 사람은 ’조금만 더 열심히 일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래 배려가 부족 했어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어‘ 라며 반성을 한다. 그 결과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노력 한다. 이런 자세로 몇 년을 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나게 발전할 것이다.
옛말에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현명한 명필이라면 정말 형편없는 붓을 들고도 불평하지 않으며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붓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붓으로도 글씨를 잘 쓸 수 있어야 하건만 아직도 수행이 부족하다’ 며 자신을 더욱 채찍질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남을 탓하기 전에 필히 자신의 책임을 먼저 돌아봐야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어려울 게 없다.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받으면 반발심이 생기지만 스스로 반성하면 기분 상할 일도 없고 인격도 그만큼 깊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가정에서는 물론 외식적인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이나 교직자들이나 종교인들처럼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남을 ‘탓’ 하지 말자.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자. 사회 생활을 하면서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은 존경을 받을 수 없다. 그러기에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한다. 특히 지도자가 되어 부하를 거느리게 되면 더더욱 그렇다. 덕망은 리더에게 빠트릴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태도에 대해 언제든 스스로 책임을 져야 업무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완성된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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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 ‘탓‘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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