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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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6세기 이전부터 그리스에서는 연극이 성행하였습니다. 디오니소스 축제일이 다가오면 희곡을 공모하고 거기서 뽑힌 작품을 가지고 제작자를 공모하여 원형극장에서 공연을 하였던 것이지요. 마이크 시설이 없던 시절에 배우들이 어떻게 수천 명의 관객을 상대로 공연할 수 있었을까요? 초기에는 코러스(합창단)를 동원하여 노래를 통해 연극의 줄거리를 알려 주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배우가 전면에 나서게 되지요. 대개 희랍 신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많아서 관객들은 관객석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연극을 관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배우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게 되는데, 그들은 멀리서도 관객에게 잘 보이도록 하이힐을 신고 망토를 둘렀으며 가면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 가면 위에 등장인물의 성격이 잘 표현되어 있었기에 관객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요즘에도 표정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있는데, 나는 노래할 때 표정을 살려서 노래하는 편입니다. 내가 코미디언 이주일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주일(본명: 정주일)은 1940년 10월 24일 강원도 고성군 거진에서 5대 독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60년 ‘문선대’에서 코미디를 시작하여, 1965년 ‘샛별악극단’ 사회자로 연예계에 데뷔를 하였습니다. 한국 코미디계의 대부 김경태 PD에게 발탁되어 1980년 TBC의 <토요일이다 전원 출발>로 본격적으로 방송 데뷔를 하며, MBC <웃으면 복이 와요>로 늦깎이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못 생긴 얼굴로 인하여 정상적인 방송의 데뷔가 어려웠던 그는, 자신의 단점을 그 자신만의 개성으로 끌어내어 1980년대를 주름잡는 ‘코미디의 황제’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로 대표되는 여러 개의 유행어를 남겼고, 수지큐(Susie Q) 음악에 맞춰 추던 그의 특유의 엉덩이를 흔들며 뒤뚱뒤뚱 걷던 '오리춤'은 오랫동안 어린이들에게 모방되었고, 코미디언 이상해씨와 콤비를 이루며 묘기 아닌 묘기에 도전하면서 코미디 프로의 절정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2001년 11월 17일에 폐암 말기를 선고 받은 후 끝내 폐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2002년 8월 27일 오후 3시 15분 경 국립암센터에서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가 이주일 코미디언으로부터 배운 것은 표정 연기였습니다. 그의 우는 표정은 슬픈 듯하면서도 그 슬픔을 극복하는 웃음이 담겨, 시청자들에게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 표정에 배어 있는 그대로 어려웠던 시절을 웃음으로 극복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대중의 인기를 얻은 후에도 외아들의 죽음을 겪으며 찾아온 여러 가지 고통에도 그는 오뚜기처럼 일어서 대중을 웃기는 자신의 소명을 다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코미디가 빛을 발한 것은 1980년대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신군부권력의 욕심으로 생긴 제5공화국에서 개인의 자존심이 매우 위축되어 있을 때에 그는 대중에게 위기와 고통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웃음을 선사하였습니다. <웃으면 복이와요>(MBC, 1979), <일요일 밤의 대행진>(MBC, 1981년)으로 서민들의 지친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199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그는 <이주일의 투나잇 쇼> (SBS, 1996~1997), <이주일의 코미디 쇼> (SBS, 1997~1998) 등을 통해서 그는 웃움이 행복의 조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습니다.
나는 이주일 코미디언을 통하여 나에게도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곧 언어 예술을 통하여 대중에게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꿈과 의지를 심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꿈과 의지는 웃음을 통하여 대중에게 확산되고, 대중의 자존심을 세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사이의 <강남 스타일>에 나오는 말춤이 2억 뷰 이상의 접속을 가능하게 한 것도, 병자호란 때에는 50만 명 이상이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가고, 근대에도 한국 전쟁을 치르는 등 수많은 내우외환을 겪어오면서도 한국인 본연의 생명력으로 위기를 극복해 온 우리들의 자신감에 찬 웃음이 자신감을 한 몫을 하였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웃음은 자손들만은 자신과 같은 고생을 겪지 않게 하겠다는 선조들의 의지에서 생긴 것이었으며, 붕당 제도로 인한 부조리를 풍자와 해학을 통해 극복하는 지혜의 결과였습니다.
얼마 전 S문인회 시낭송회에서 ‘이주일’ 흉내를 내며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원곡: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의 「봄을 위한 세레나데(Serenade to spring)」를 불러 보았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고백하듯이 노래 가사에 감정을 실어 표정 연기까지 해 보았더니, 나의 음치가 커버되며 사람들을 빨아들일 듯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는 이주일 코미디언이 나에게 심어 준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시낭송회가 열리는 곳을 찾아다니며, 이 노래를 표정 연기까지 섞어 가며 부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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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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