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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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되고 나니 지인들이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봉급을 받는 직업을 안 가졌으니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는가, 하루 온종일 글만 쓸 수도 없을텐데 심심하지 않겠는가 등으로 작가로서의 삶을 염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생각이 다릅니다. 남이 나를 작가로 알아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에게는 나의 삶에 동행하는 그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나를 작가로 인정하는데, 더 이상 작가를 알아 달라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내가 고독의 상황에서 그분을 통해서 얻은 지혜입니다. 나는 영원 위에 남는 흔적을 위해서 상상하고 글을 쓰는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유를 위해서 나에게 하루에 필요한 돈은 만 원입니다.
만 원은 개인이 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돈입니다. 오늘날 세계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나라간의 경계가 생기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뛰어넘을 탈경계적 사고를 통해서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이 일상의 행복을 영위하는 데에 하루 만 원이 꼭 필요합니다. 그것도 몸이 건강한 상태에서 아침과 저녁 식사를 집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가능한 돈이지요.
우선 노년의 경우를 생각하여 봅시다. 65세 이상은 교통비가 안 들기는 하지만, 요즘처럼 50대에 은퇴하는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는 한 달 평균으로 잡아서 적어도 하루 3000원 정도는 교통비로 들어가지요. 그걸로 동묘역 옆의 풍물 시장 구경도 할 수 있고, 동쪽으로는 춘천, 서쪽으로는 인천, 남쪽으로는 온양, 북쪽으로는 소요산까지 다녀올 수 있습니다. 점심은 그 지역에서 유명한 춘천 막국수나 해물 짬뽕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집 근처의 공원이나 천변을 얼마든지 산책할 수가 있지요.
만 원은 내가 생존하고 있다는 근가가 되는 돈이고, 나의 일상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돈입니다. 만약 하루에 쓸 돈이 너무 많다면 나는 좋은 차를 굴리며 여행하는 데 시간을 다 소비할 터이지만, 만 원은 내가 작가로서 하루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딱 적당한 돈인 것입니다. 하루 만 원은 내가 허황되지 않고 겸손하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돈이며, 자그마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멋진 돈입니다. 간혹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낙원상가 4층에 있는 영화관에 가서 이천 원짜리 명화를 볼 수도 있고, 그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이천 원 짜리 팥빙수를 맛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그 근처의 이발소에 가서 3500원 자리 이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은퇴한 이발사들이 소일거리로 나와서 일하는 곳이기에 그 이발 솜씨가 꽤 괜찮습니다.
간혹 개인이 노년이 되면 경조비가 상당히 들어갈 것입니다. 인간 관계에서 축하나 위로를 받았으니, 그 정을 생각해서라도 지인의 애경사를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요. 그럴려면 하루 일당을 아끼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일주일 동안 집과 공원을 오가며 산책하며 지내면 됩니다. 집에서는 무얼 하냐고요. 책을 보든가 글을 써야지요. 글을 아무나 쓰냐고요. 아무나 쓸 수 있습니다. 개인이 지나온 삶을 뒤돌아 보면 얼마든지 쓸 얘기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릴 적 고향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친구들과 소꿉장난하던 얘기도 있고, 젊은 시절 연애하던 때의 심정도 있고, 중년에 전문가의 입장에서 전문 분야의 노하우를 쌓던 얘기도 있을 겁니다.
평범하게 살아온 인생이어서 쓸 얘기가 전혀 없다고요. 있습니다. 개인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이야기를 하지요. 과거 유대 민족은 남성이 중시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천 명의 무리에게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그 자리에 참석한 남성만 센 숫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다말은 남편과 그 형제마저 세상을 떠나자 창녀 복장을 하고 들에 나가 있는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맺어 대를 이었습니다. 라합은 여리고성에서 자기 민족을 배반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된 이방인이었습니다. 룻은 이방인인데도 불구하고 보아스와 결혼하여 대를 이었습니다. 우리야의 아내는 장군인 남편을 죽인 다윗과 결혼하여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이는 죄인도 얼마든지 구원의 길에 들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우리 인생은 앞에서 열거한 여자들보다도 훨씬 더 규모 있게 살았습니다. 사회 규범을 따르며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자녀를 낳아 잘 키웠습니다. 이는 개인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온 결과입니다. 개인은 자식들을 건사하였고, 가정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 갔습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고, 70억 인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고,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으며,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팔다리를 가졌습니다. 빈 몸으로 와서 어느 정도의 재산을 일구었고,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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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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