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24
2017/11/25 13:2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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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개혁사상은 ‘칼빈’이라는 특출한 개혁자를 배출했다
2부 중세 종교개혁의 발단과 그 결과

24. 프랑스에서 진행된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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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가 지배하는 대부분의 유럽 지역에서 종교개혁은 거세게 저항을 받았고 때로는 개혁자들이 성경의 진리를 주장하고 고수하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일도 허다하게 많았다. 그런데 이 개혁의 와중에 늘 문제가 되는 것은 개혁파와 로마교회 사이에서 세력을 행사하는 황제의 태도였다. 어떤 황제들은 로마 교황권의 압력 때문에 개혁 세력들을 핍박하였고 또 어떤 황제들은 개혁파를 도와서 개혁사업이 발전되도록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한 때, 독일에서는 카알 5세가 이단 박멸을 작심하고 개혁자들을 지지하는 제후들을 포로로 잡아서 이 성(城) 저 성으로 보내면서 큰 괴롭힘을 주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제후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사라지면서 카알 황제는 쓰디쓴 패배를 경험한 일도 있었다.
쯔빙글리에 의해서 꽃을 피웠던 스위스의 종교개혁 사업도 한 때 매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개혁사업에 헌신하던 많은 지도자들이 카펠(Cappel)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고, 얼마 후 가장 영향력 있던 지도자 에콜람파디우스도 죽었다. 이곳저곳에서 개혁사업이 타격을 받으면서 다시 가톨릭의 세력이 확장되는 듯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이 개혁사업을 인도하고 계셨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가톨릭의 세력은 점차로 약화될 것이고, 개혁자들이 주장하는 성경의 진리가 힘을 얻고 빛을 보게 될 날은 분명히 올 것이었다.

프랑스의 종교개혁이 시작됨
당시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루터와 관계없이 거의 동시대에 사방에서 개혁이 바람이 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성경의 빛을 명확하게 깨닫기 시작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파리 대학의 러페브르(Leferve) 교수였다. 그는 매우 열심 있고 진실한 가톨릭교회의 추종자였으나 고대문학을 연구하던 중 성경을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빛들을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루터나 쯔빙글리가 개혁 사업을 시작하기 전인, 1512년에 이미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는 의, 곧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시고 영생에 이르게 하시는 의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깨달았고 그 사실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의 제자들 중 후일에 개혁의 선두주자로서 활동한 한 인물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윌리암 파렐(William Farel)이다. 파렐은 사도 바울과 같은 열정과 열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러페브르는 주로 그의 제자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가르쳤는데, 그의 제자 파렐은 그 진리를 들고 나가서 공중에게 큰 소리로 전파하였다. 이 과정에서 특기할만한 사실은, 파리 근교의 모오(Meaux)라는 도시의 한 고위 성직자인 감독이 이들과 연합한 것이다. 개혁파의 가르침은 신속하게 전파되었고, 당시 왕이었던 프란시스 1세의 누이도 개혁신앙을 받아들임으로 개혁의 복음은 노동자로부터 왕궁에 이르기까지 확산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러페브르는 프랑스어로 신약성경을 번역하였고 모오의 감독은 자신의 노력과 비용을 들여서 성경을 보급한 결과 모오에서는 농부들까지 성경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귀족 베르캥의 개혁사업
당시 프랑스 귀족 가운데 최대의 학자로 알려졌던 베르캥(Louis de Berquin)은 매우 세련되고 용감하고 품위 있는 인격을 갖춘 인물이었다. 동시에 그는 로마교회의 충실한 신봉자이도 하였다. 정직한 양심의 소유자였던 그가 성경을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밝은 진리의 빛을 비추어 주셨다. 그는 원래, 개혁자 루터를 증오하는 사람이었는데, 성경을 깊이 연구한 결과, 루터의 가르침이 로마교회의 가르침보다 성경에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마침내 개혁사업의 선봉자가 되었다. 그는 프랑스의 로마교회 교도들에게 기피해야할 매우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는 로마교회의 당국자들에 의해서 세 번이나 투옥되었으나 그의 천재성과 고결한 인격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당시 프란시스 왕이 그를 석방시켜 주었다. 베르캥은 주변의 상황이 악화되고 저항이 증가할수록 더욱 더 열심히 성경의 진리를 전파하였다.
당시 그의 대적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베르캥을 처형하고 싶었지만 왕의 비호를 받고 있는 그를 제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길거리에 세워져있던 성모 마리아상이 파손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 문제로 도시 안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베르캥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고 있던 수도사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그 사건이 마치 베르캥의 개혁사업의 영향이라고 거짓 소문을 내었고, 그 결과로 베르캥은 다시 체포되었다. 공교롭게도 베르캥의 수호자였던 왕이 파리를 떠나 부재중이었으므로 그의 원수들은 베르캥을 신속히 재판하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베르캥의 용모는 진리의 화신처럼 빛나고 있었으며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평화스럽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의 죽음을 지켜보던 수많은 군중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주었고, 프랑스 전역에 산재해 있는 개혁의 동지들에게 순교를 각오하고 개혁사업에 매진할 수 있는 용기를 부여하였다.
파리와 모오 시(市)에서 핍박의 심해지자 개혁의 지도자였던 러페브르는 독일로 들어갔고 파렐은 동프랑스의 고향으로 돌아가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여전히 개혁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복음을 전하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핍박이 이르렀을 때에 유대와 사마리아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했던 사도행전의 선교 역사가 반복된 것이다.

칼빈의 출현
파리의 어느 대학에 매우 침착하고 총명하고 탁월한 한 학생이 있었다. 그는 로마교회의 충실한 신봉자였으며 개혁자들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저들은 화형을 당해야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청년이 바로 요한 칼빈(John Calvin)이다. 개혁파에 가담하여 활동하던 그의 사촌이 파리에 살고 있었는데, 칼빈은 종종 그 사촌 올리베탄(Olivetan)과 만나서 당시의 종교적 시국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칼빈은 그 사촌의 개혁적 사상이나 교리에 대하여 공감하지 않았고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예리하고 총명한 그의 마음 한 쪽에는 개혁사상에 대하여 무엇인가 끌리는 것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칼빈은 우연히, 큰 광장에 나가서 이단자들을 화형시키는 장면을 보게 되었고, 이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평화스럽고 빛나는 얼굴과 늘 어두운 그림자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 볼 때에 자신의 신앙에 분명히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교자들의 순수한 신앙과 확고한 믿음의 기초가 바로 성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칼빈은 본격적으로 순교하는 이단자들의 “기쁨의 비결”이 들어있는 성경의 참 진리를 찾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칼빈은 구원이란 교회가 주는 것이 아니고 고행이나 인간의 수고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칼빈의 출현은 프랑스 종교개혁에 있어서 새로운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그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던 중에 성경에 나타난 구원의 원리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성경의 참다운 진리를 깨닫게 된 그는 신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한 동안 법률공부에 치중하다가, 마침내 그것도 포기하고 자신의 전 생애를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기로 작정한 다음, 개혁신앙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소위 유력한 종교개혁자들이 로마교회 신앙을 포기하고 개혁신앙에 목숨을 걸고 충성을 바치게 된 배경에는 언제나 ‘성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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