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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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전 4주간 ‘예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력에서 말한 절기이다. 예수의 탄생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맞는 교회력의 절기이며 이를 대림시기, 대강절, 강림절로도 부른다. 그 뜻은 ‘오다’(Adventus)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교회력이 대림절로 시작하기 때문에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뜻도 있음을 부언한다. (대림 첫째 주일은 11월27-12월3일 사이의 주일)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신 지도 2000년이 되셨다. 예수께서 마구간에 태어나서 빈 구유 바닥에 눕혀 지내심을 안다. 마구간의 식구들로 상징되는 온 생물은 물론 구유로 상징되는 마구간 식구들에게 말없이 밑바닥이 되어 준 존재하는 모든 빛과 생명에게 까지 하느님이 오시는 그 까닭이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한다.
당시 낮은 이들로 여긴 목동들에게 먼저 인사를 나누듯이 세상의 낮고 천한 밑바닥 인생들 ‘땅의 백성(암 하 아레츠)들과 함께 즐겨 먹고 마시기도 함을 알게 한다. 이는 맨바닥, 땅 바닥에 누워 오심의 의미를 알게 한다. 이 나눔의 완성으로 자기 자신을 내어 주셔서 삶을 공유하신다.
빛과 생명은 생물로 만물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생명의 특성은 땅이 무질서하게 혼란한 상태로 되려는 경향이 있지만 빛과 생명은 정돈되고 조직화 되려는 경향이 있고 생명은 환경에서 에너지를 얻어 성장과 자기 유지에 이용하려 한다. 그리고 빛과 생명은 자신의 유전 암호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려고 한다. 그리고 환경에 적응하여 이로운 방향으로 가려한다. 그리고 항상성이라는 안정된 정상상태를 유지하려하고 한다는 점에 유의한다.
이러한 생명의 특성을 고찰하면 인간 사회의 삶에서 삶의 구도자가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알게 한다. 이는 빛과 생명으로 오셔서 구원의 생명의 모습을 친히 견디어 가게 하신다. 그리하여 성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 표현엔 인간의 본질, 곧 그의 근원과 성질과 운명으로 한 빛과 생명을 가지고 삶을 영위해 나타나고 있다. 이 말씀은 인간이 그 생명을 이어 받은 것이요 스스로 존재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생명을 소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성서로 보면 사람으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인 인간은 빛과 생명이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 하는 자”로 창조된 것을 믿음으로 감당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에덴동산에 생명나무를 두신다고 한다(창 2:9). 즉 에너지 ( Energy) 공급원을 두신 것이다.
이 나무의 열매를 따 먹어야 생명을 이어 갈 수 있다는 말은 이미 아담 하와가 하나님을 의존해야 함을 인정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 생명나무는 인간의 생명을 영속시키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다시 말하면 그 열매를 먹고 있는 한 죽지 않을 것을 믿는 것이다. 인간은 하등의 피조물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과 기능과 능력들, 곧 이성, 선택의 능력, 지능 등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를 감당하게 한다. 동물들에 비하여 인간들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주는 이러한 특징들은 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성은 하나님의 뜻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오늘의 우리의 이 시대에서의 삶은 ‘빛’과 “생명의 삶”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력으로 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속에 들어올 때 이루어진다. 그때서야 우리는 그분이 원하시고 작정하신 모습대로 만들어진다. 충만하고 완전하고 새로운 삶의 탄생은 쉽사리 감추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신앙생활 속에 있는 사람들은 영원속의 참된 재탄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빛이 주어져 생명이 되는 신앙이 된다. 이제 두 가지의 상징적인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죄악과 무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썩어가고 있는 인류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그들의 삶과 교훈을 통해서 썩어져 가는 인류를 지식과 은총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목적에 합당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맛을 잃은 소금이 되고 마는 것이다. 빛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의 빛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밝히 드러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빛이 어둠에 가득한 이 세상과 이웃에게 비추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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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생명으로 오신 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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