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영남장로회 특별강연회 설교
2018/03/22 16:2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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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이 부모 세대를 아는가?(신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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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시대에나 세대 간극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사기 2장 10절에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24장 31절에는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고 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 및 같은 세대 사람들의 신앙과 경험을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알지 못하므로 신앙에서 떠나 우상숭배와 이방족속을 쫓게 된 세대 간극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1장 8, 9절에도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라고 말하며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탄압과 박멸정책을 세워 시행하게 됩니다. 나라 사정이 과거보다 달라진 점도 있겠으나 요셉 시대와는 오랜 세월이 경과한 역사적 시대적 간극이 자리한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의 십년은 예전의 백년보다 더욱 시대 격차가 큽니다. 그런 점에서 세대 갈등이란 자연스런 현상이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화의 단절과 이해의 부족이 그 간격을 더욱 벌여놓았고 갈등과 불신을 증폭시킨 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부모세대를 알아야 하고, 부모들은 자녀 세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현장과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교과서적 이해는 가능해도 심정적 공감은 어려울 것입니다. 더구나 불신과 선입견, 이념적 기준과 정치적 목적, 시대정신과 대중성향에 따르는 입장일 때 자녀들은 죽었다 깨어난대도 부모세대를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네 사회에서 증폭되어 가는 세대간격은 혈육지친인 가정의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까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사이로 갈라놓고 있습니다. 대화불통의 사이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의 해에 자녀들이 부모세대와 어떻게 다른 지점에 서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자녀들이 부모세대의 식민지 생활을 압니까?
1945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짧게든지 길게든지 일본제국의 식민지 통치를 경험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주권을 상실한 망국의 백성이었습니다. 이 강산은 일본 사람이 들어와 주인 노릇했고 한국인은 그들의 식민지 백성에 불과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일어가 국어였고 성명까지도 일본식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들의 황민화 정책에 따라 학교는 물론 교회에까지도 신사참배와 동방요배가 강요되었고 나중에는 거부자에 대하여 투옥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죽어지내든지, 이주하든지, 망명하든지, 협력하든지 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나도 부모님을 따라 네 살 때 만주로 이주하여 거기서 살다가 해방된 이듬해인 일곱 살 때 국경선인 압록강을 빙판으로 건너 조국 땅에 귀환한 입장입니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태어난 부모세대의 아픔과 설움을 과연 자녀들이 얼마나 압니까?

2. 자녀들이 부모세대의 진주군 시대를 압니까?
일제시대가 오래갈 줄 알고 있었던 이 땅의 대다수 국민들에게 뜻밖에도 해방의 기쁨이 왔습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임하신다 하셨듯이 도적같이 온 해방을 맞은 것입니다. 연합군의 승전으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게 된 까닭입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38도선 남쪽엔 미국군대가 진주하여 관활하게 되고, 38도선 북쪽엔 소련군대가 진주하여 관활하게 되었습니다.
남한은 진주군 사령관이 하지 중장이었고 아놀드 장군이 군정장관이었으며, 북한은 진주군 사령관이 치스차코프 대장이었고 로마넨코 장군이 군정장관이었습니다. 뜻밖에도 나라가 두동강난 가운데 외국 군대가 들어와 군정을 펴게 되고 건국하기까지 3년간 군정시대를 살아야 했던 게 부모세대였습니다. 내가 내 나라, 내 고향 찾아 귀환한 1946년에 압록강은 국경선이라 치더라도 38선을 넘는데 안내원을 사서 밤중에 몰래 넘어야 했으니 해방되고도 국권이 회복된 게 아니었고 한반도가 분단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좌우 이념의 갈등과 혼란이 극심하여 정말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게 부모세대였습니다. 모든 게 정돈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받아야 했고 연명해야 했으니 정말 서러운 세월을 보낸 세대입니다.

3. 자녀들이 부모세대의 건국한 과정을 압니까?
해방 후 북한은 계획이 치밀했고 부드러운 포고령 속에 철권을 숨긴 소련군정 치하에서 이내 북한 노동당 단일세력이 그 사회와 인민을 장악하게 했으나 남한은 좌우익 대립과 대결이 매우 치열한데다가 통일정부란 이상론에 치우쳐 오히려 북한의 정치공작을 강화시켜 주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건설해야 한다는 건국의 결단이 내려진 것입니다.
북한에선 국민적 지지를 받는 조선민주당의 조만식 장로가 연금되고 기독교 지도자들이 투옥되고 기독교도와 지주계급의 사람들이 남쪽으로 월남하게 되었고 남한에선 남로당계열과 반공정부 수립으로 발판을 잃은 이상적 민족주의자들 일부가 월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취임하게 되었으니 망국의 세월 38년 만에 내 나라를 갖게 된 그 감격을 체험한 세대가 바로 부모세대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반쪽나라로 건국하게 된 허전함도 어쩔 수 없는 감격이었습니다. 이때 소련 지배하의 38도선 이북은 이미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앞서 ‘인민위원회’란 실질적 정부가 수립되어 북한 전역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1946년 2월에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한 임시인민위원회 창설, 3월에 토지개혁 법령 발표, 7월엔 김일성 종합대학 개설, 10월엔 북조선 중앙은행을 임시인민위 직속으로 이관, 47년 1월엔 김일성 신년사 ‘전국 인민에게 고함’ 발표, 2월엔 ‘임시’란 꼬리표를 떼고 ‘북조선 인민위원회’로 조직했습니다.
그러므로 남한의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당연지사입니다. 형식상으로 북한이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출범한 날자가 1948년 9월 9일이므로 그보다 25일 앞선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2국가.2체제의 책임을 떠 넘기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지금에선 왜 그 때 통일 정부를 수립하지 않았느냐지만 그 때로선 자칫 실기하면 나라 전체가 공산화 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음을 부모 세대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그 때 독립운동의 원훈이란 이승만 박사의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단독정부의 결단과 난국의 수습은 정말 어려웠을 것입니다.

4. 자녀들이 부모세대의 6.25동란을 압니까?
건국 된지 이년 만에 동족상잔의 6.25동란이 터졌습니다. 북한 공산군의 전면 남침으로 발발한 이 전쟁은 유엔군의 참전으로 16개국에서 군대를 파견했고 북한쪽에 중공군이 가담하여 서울이 두 번, 평양이 한 번 주인이 바뀌게 되는 치열한 전투 끝에 1953년 휴전하게 되므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3천리 강토는 폐허가 되다시피 파괴되었고 얼마나 많은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외국군대도 엄청나게 죽고 다쳤습니다. 1950년 7월에 국군 참모총장 채병덕 장군이 전사했고, 9월에는 강건 인민군 총참모장이 전사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소개명령에 따라 피난가야 했고 혹은 적치하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경산의 자인까지 피난하게 되었는데 낙동강은 물로 건넜으며 나는 아버지 어깨 위에 목말 타듯이 올라타고 건넜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고아가 된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며 외국에 건너간 경우들도 흔하였습니다. 정말 살기 위해 허둥대고 먹기 위해 발버둥 치던 시대였습니다.
젊은 청년들은 전쟁에 나가는게 죽으러 가는 길이었고 역에서의 전송장은 눈물 바다였습니다. 한 집에서 몇 사람씩 전사자 아들 생기는게 흔하였습니다. 내가 다닌 학교도 미군이 주둔한 고로 우리학교 학생들은 같은 지역의 고등학교에 곁방살이했고 졸업식도 거기서 했습니다.
정말 전쟁의 참화 속에 허둥대며 발버둥질 치며 살아온 게 부모세대입니다.

5. 자녀들이 부모세대의 물질적 설움을 압니까?
일제시대의 수탈, 해방 후의 혼란, 6.25동란의 상흔과 더불어 정말 가난한 삶을 살아온 게 부모세대입니다. 초근목피란 말이 생소하지 않았습니다. 구호물자로 연명해야 했고 단칸방에 온 식구가 살아야 했습니다. 분뇨 퍼는 사람들이 냄새를 피우며 온 골목을 헤매는 시대였습니다. KBS에 사람 찾는 게 방영되었었지만, 그 때 식구 한 둘 줄이려고 남의 집에 애보기로 보내고 고아원에 맡기는게 예사였습니다. 그렇게 헤어졌다가 서로 만나지 못하여 수십 년 만에, 더러는 반세기를 지나 찾으러 나온 경우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머리 좋은 아이들 중 집안 사정 때문에 진학 못하고 썩은 아이들이 늘려 있는 판이었습니다. 간혹 그 시절에 외국에 나가도 장학금 받아가되 배타고 긴긴 여행을 해야 했고 결혼한 사람은 가족과 떨어져 몇 년 간이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 보다 훨씬 후인 70년 전후에도 미국에 유학 간 친구 목사님이 한국의 부모님이 각각 별세했을 때 돈만 얼마 붙이고 들어오지를 못했습니다. 신학교 동기생인 내가 그것을 찾아서 전달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부모세대입니다.

6. 자녀들이 부모세대의 경제적 기적을 압니까?
나는 4.19, 5.16날 때만 해도 한국이 과연 자력으로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을지에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원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60년대부터 경제계획이 1차, 2차, 3차 5개년 계획들을 통해 차곡차곡 진행되고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 해보자’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잘 살아보자’란 구호가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었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란 새마을 노래가 국민운동가였습니다. 정말 총력동원체제를 통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경제 토대를 마련했고 언제부터인가 춘궁기도 없어졌고 세계 속의 한국으로 도약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부모님 세대는 땀 흘린 세대입니다.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월남에 군인으로, 민간 기술자로, 중동에 산업인력으로 나가 열심히 일했고 나라 안에서도 모두 새마을운동 및 산업인력으로 마을과 공장에서, 농촌 및 건설현장에서 열심히들 일했습니다. 기능올림픽에 우승한 자들이 영웅으로 대접받았고 공학도들이 인재로 대우받았습니다.
이렇게 땀의 댓가로 여기까지 견인한 게 부모세대입니다.

7. 자녀들이 부모세대의 격동적 세월을 압니까?
부모들이 살아온 세대는 일제와 해방, 건국과 동란, 혼란과 정변의 연속이었습니다. 4.19 학생의거, 5.16 군사정변, 10.27 유신선포, 10.26 대통령 시해, 12.12 군권찬탈, 5.18 광주항쟁, 6.10 부마항쟁, 6.29 직선선언, 최근의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등 잠시도 바람 잘 날이 없는 격변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와중에서도 부모세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했고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민주주의 토대를 구축하여 오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산업전사도 있고 민주투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침묵하는 다수는 거창하지도, 생색내지도 않는 생계형 소시민들입니다. 단지 살기위하여, 가족을 돌보고자 한눈 팔 겨를도 없이 열심히 살아온 그들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의 후세대는 과실을 공짜로 따먹으면서 그것을 심고 가꾼 부모 세대를 깡그리 무시하고 연령적으로 구분하여 부모세대를 죄인시 해 버립니다.
나는 생각컨대 부모세대야말로 아픔과 설움을 지닌 세대이면서도 잡초처럼 그 상황을 뚫고 생존과 번식을 해왔으며 피땀 흘려 일하므로 오늘의 이 나라를 이룩한 자랑스런 분들이라고 여깁니다. 누구보다도 이 땅의 후예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선대인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부모세대는 안정된 사회에서 몇 세기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단기간에, 한꺼번에 경험한 세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오늘날 느낄 소외감과 허탈감을 헤아려 그 마음을 위로하고 자긍심을 갖겠금 훌륭한 선배로 모실 수 있어야 하고 부모세대는 우리가 흘린 눈물과 땀과 피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여기며 후손들을 기쁨으로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통일한국, 선교한국, 복음한국도 확실하고 분명하며 틀림없이 앞당겨 성취될 것입니다.

2018년 3월 13일
100주년기념관 소강당
대한민국 건국70주년기념예배 및 특별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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