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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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를 뒤지다가 우연히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 <악어>를 펴들게 되었는데, 몇 줄 더듬다가 끝까지 읽고 말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나”는 그 이야기가 1865년 1월 13일 12시 30분에 시작되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150년 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일어난 일로 그리고 있지만, 어느덧 최근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주간지를 읽고 있다는 착각을 맛보게 된 것이다.  
페테르부르크, 멋진 아케이드들이 즐비한 거리, 큰 악어를 수조에 넣어 두고 약간의 입장료를 받고 구경시켜주고 있는 독일인의 가게가 있다기에, 나의 교양 있는 친구이며 먼 친척이기도 한 이반 마토베이치와 미모의 그의 아내 엘레나 이바노브나와 더불어 그 악어를 보러 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 가게에서 일어난 세상에도 진기한 사건의 보고입니다.  
이반 마토베이치가 금속 그물을 쳐들고 악어를 놀려대다가 그만 악어에게 먹혀버린 것입니다. 놀란 우리가 가게 주인에게 악어의 배를 갈라 달라고 호소했지만, 이 독일인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기보다는 사람을 삼킨 악어가 죽기라도 한다면 자기 가족이 밥을 굶게 될 형편이라며 사정을 봐달라는 것이었다.  처음 한동안 주인은 악어의 배가 찢어질 것을 두려워하는가 싶더니, 안전하다는 것이 확인되자, 입장료를 배로 끌어올릴 수 있다며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악어의 배를 가르다”할 때, “가르다”라는 러시아말은 농노를 매로 “때리다”라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아케이드 거리를 지나가던 진보사상가들이 모여들어서 “그런 반동적인 언동을 일삼다니 용서할 수 없다.” 하고 항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악어 뱃속에서 이반 마토베이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경제적인 손해배상을 하지 않고 악어의 배를 가르기는 어려울 터이니, 먼저 돈을 구해야한다.”하고 말하더니, 이어서 경제학적이거나 사상적인 문제들을 뇌까리는 것이었습니다.
악어의 뱃속은 텅 비어 있어 약간 구리기는 하지만, 지내기가 어렵지는 않은 것 같기에, 나와 엘레나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사후대책을 강구하기로 했습니다. 흥분하자 더 아름다워진 엘레나는 “남편이 집에 있어야하지 악어 뱃속에 있다니...”하면서 넌지시 이혼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동료 치모페이 세미요니치와 의논해 보았습니다. 그는 이반 마토베이치가 진보사상을 떠들고 다니다가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면서 자업자득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직장에는 당분간 악어 뱃속에 출장 중이라고 보고하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도 해주었습니다.  
이 사건을 눈치 챈 여러 신문들이 러시아에는 동물애호 사상이 터 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 기사를 싣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색다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조심스럽게 외투의 깃을 세우고 아케이드 거리로 나가봤더니, “악어 집”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상이 <악어>라는 소설의 줄거리. 주인공 이반 마토베이치라는 공무원은 악어 뱃속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그 곳의 삶에 익숙해지고 만족스러워하기조차 하고 있다. 이반은 모든 인류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완벽한 사회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드디어 그 진리에 다가가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지금 진리와 빛이 비춰지고 있다. 틀림없이 나는 새로운 경제관에 대해서 독자적인 새 이론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이 이론에 긍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말할 것이고, 새로운 사상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바깥세상을 향해 선언했다.
이반으로 하여금 “야만인들만이 자유를 추구할 뿐 현명한 사람은 질서를 사랑한다.” 라고 떠들게 하면서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유가 박탈된 인간은 악어 뱃속처럼 캄캄한 암흑세계에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반이 고안해낸 유토피아는 악어뱃속처럼 폐쇄된 공간에서만 가능할 뿐 현실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느 시대나 세상은 다 그렇고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는 작품으로 읽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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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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