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87
2018/05/18 16:1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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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의 예언 (요 11: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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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신 것을 보시고 이들에게 자기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배척당하여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알려 주시기 시작하셨다(막 8:31). 그리고 그의 발걸음을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이적을 행하셨다(요한 11:38-44).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소식을 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공회를 소집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 민중들의 소란이 자칫하면 로마 당국을 자극하여 땅과 민족을 빼앗기는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염려한 것이다. 이때 대제사장 가야바가 일어나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멸망하지 않는 것이 당신들에게 유익하다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소.’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스스로 말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여 죽으시고, 그 민족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들은 그 날부터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요 49-53)
대제사장, 가야바의 발언은 예수님을 속죄양으로 삼아 나라와 민족이 망하는 것을 구하자는 것이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구체적인 작전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요한은 가야바의 이 발언이 자기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예언이라고 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백성들을 대표하여 속죄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속이라는 개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바치는 속죄양이 자신들의 죄를 대신한 속죄물이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을 속죄양으로 삼아 나라와 민족을 살리게 하겠다는 생각은 특별한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한 개인의 죄 값으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왔다.”(막 10:45)고 하신 말씀대로 나라와 민족을 살리기 위한 희생적이고 대속적인 죽음이라는 것을 대제사장을 통하여 해석하고 예언적인 선포를 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그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타락한 후 그와 그의 연대성 안에 있는 피조물들을 살리기 위한 계획을 세우신다. 아담을 대신한 “새아담”을 세워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려는 것이었다. 창조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그의 대리 통치자로 세우고 그의 모든 피조물을 그의 수하에 맡기셨다. 언약적 연대성의 원리를 아담과 그 수하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적용하여 그들을 상대하신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담의 반역과 범죄도 아담의 통치권에 아래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똑같이 적용하신 것이다(창 3:17). 그리하여 우리 인간은 모두 아담과 함께 하나님께 불순종한 반역자가 되었고, 그 결과 죄와 죽음의 종노릇을 하게 되었다. 아담 한 사람이 문제였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와 똑 같은 원리로 아담의 연대성 안에서 죄와 죽음이라는 언약적 저주 아래 있는 그의 피조물들을 살리려고 하신 것이다. 그것은 아담을 대신한 “새아담”을 세우고 그의 모든 피조물들을 그의 통치권 아래 맡기는 것이다. 모든 피조물들이 그를 순종하고 경외하는 새아담과 더불어 새로운 연대성을 형성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 하는 것이다(롬 5:12, 15-19). 따라서 바울은 아담을 가리켜 “오실 분의 모형”이라는 말을 쓴다(롬 5:14).
그렇다면  “새아담”은 누가 될 수 있는가? 새아담은 어떠한 자이어야 하는가? 첫째로 새아담은 “여자의 아들”이어야 한다(창 3:15). 이 말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로 뱀을 조종하여 여자를 유혹하게 했던 사단의 머리를 짓밟을 수 있는 신적 존재여야 한다. 따라서 새아담은 인성과 신성을 겸한 존재여야 한다. 셋째는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에 매여 있는 피조물들을 구원하려면 아담의 죄 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것은 죽음이다(롬 6:23). 따라서 새아담은 아담을 대신하여 죄 값을 치르기 위하여 성전에서 제물로 드리는 허물없는 속죄양처럼 그 자신을 속죄물로 바쳐져야 했다. 넷째는 새아담은 아담과 그의 연대성 아래 있는 피조물의 죄 값을 온전히 치렀다는 증거를 보여야 했다. 죄 값을 치렀으니 더 이상 죄가 아담과 그의 연대성 아래 있는 피조물들을 죄와 죽음으로 가둬둘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새아담부터 살아나야 하는 것이다(고전 15:13, 17, 21-22). 부활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아담처럼 모든 만물 위에 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고후 4:4; 5:17)골 1:15; 2:10)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아담과의  연대성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로 심판아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아담을 만들어도 안 되고, 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신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이 되어야 이 조건들을 충족하실 수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로 성육신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원리를 제사제도를 통하여 미리서 이스라엘 그의 백성들에게 모형적으로 가르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때가 되어 이 땅에 오셨고, 이제 그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속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제자들에게 그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미리서 반복적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많은 사람들의 속죄물로 드리고 부활을 해야만이 새아담으로서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대제사장 가야바가 바로 예수께서 나라와 민족을 구할 속죄양으로 죽어야 할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야바가 하는 말은 예수께서 로마를 대항하여 모여든 반 로마 세력의 우두머리로 이스라엘 나라와 민족을 위한 희생양이 되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이 명분없는 정치범이나 잡범의 죽음이 아니라 적어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죽음임을 미리서 알게 하고 인정하게 한 것이다. 대제사장은 자기들이 살기 위하여 백성들의 소요에 대한 책임을 예수께 떠넘기는 발언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죽음이 나라와 민족을 살리기 위한 희생적이고 의로운 죽음임을 공회 앞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점에 대하여 요한은 대제사장이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여 죽으시고, 그 민족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으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해석한다(요 11:52).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예수님의 죽음을 만민을 위한 속죄적 죽음이라는 것을 공회 앞에서 선언하고, 공회는 이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제사장은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체 나라를 살린답시고 예수님을 죽이자는 제안을 했지만 그것은 민족을 위한 짐승의 희생이 아니라 사람을 통한 속죄를 언급하고 예언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은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부활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루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염두에 둔 말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었음을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선포하고 공회가 공인했다는 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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