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1.jpg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나의 대적들이 욕을 옷 입듯 하게 하시며 자기 수치를 겉옷같이 입게 하소서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니 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사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 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시편> 109:26-31)
2018년 2월 평창 동계 올림픽 이후 한반도에는 평화의 봄바람이 불고 있다. 김정은이 보낸 특사가 청와대를 다녀갔고, 곧 남북한간, 북미간 정상 회담도 있을 예정이다. 이는 주님이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하여 주시는 기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인은 말보다 물건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사물이나 기표는 인간 관계를 나타내는 징표가 될 수 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로테의 남편이 보낸 선물에 붉은 리본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로테를 얻은 것처럼 좋아한다. 베르테르가 맨 처음 로테를 보았던 날 그녀의 가슴에 꽂혀 있던 바로 그 리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죽는 날에도 푸른 연미복을 입고 호주머니에 그 리본을 넣고, 그 리본과 함께 관 속에 묻힌다. 리본은 바로 그가 사랑하는 로테이고, 그 리본과 함께 있는 것은 그녀와 영원히 하나가 된다는 환상을 심어 준다. 타인에게는 한낱 천조각에 불과하지만 그에게는 목숨만큼 귀중한 징표였던 것이다.
또한 베르테르는 로테와 맨 처음 만나 함께 춤을 출 때 입었던 푸른 연미복을 그녀를 사랑하는 동안에 한 번도 입지 않았다. 그만큼 로테를 사랑하였으므로 평범한 상황에서는 입을 수 없었던 것이다. 베르테르의 간절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로테가 알베르트의 아내가 되자, 푸른 연미복은 그의 첫 번째 상흔을 떠올리게 한다. 베르테르는 죽음을 앞두고 그 옷을 꺼내 입는다. 그 옷이 자신과 그녀를 하나로 묶어 준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 옷은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옷이지만, 그에게는 엄청난 의미를 가졌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의미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므로, 그것은 가장 기호성이 높은 기표이다. 베르트르는 자살하기 위해 알베르트로부터 권총을 빌린다. 아무 것도 모르는 로테는 권총을 하인에게 내 주고 그것을 받아든 베르테르는 단지 로테가 그 권총을 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게 죽는다. 로테가 만지던 권총, 그녀가 내 준 권총은 그가 기꺼이 그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만드는 의미인 것이다.1)
베르테르에게 ‘리본’과 ‘푸른 연미복’이 로테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기호였다면,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기호가 나타난다. 그것은 주님께 기도함으로써 나타나는 징표다. 필자에게 주님이 보내 주시는 기호는 바로 ‘영감’과 ‘글’이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면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매일 만나 - 성경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40년 동안 먹었다고 나오는 한 종류 또는 그 이상의 음식 - 를 내려주셨듯이, 나에게 영감의 만나를 내려 주신다. ‘오늘은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 행복을 주러 오시는 예수님, 하나님과의 교제를 정리해야겠어. 제목은 ‘하나님, 저 예뻐요?’로 할까, 그러면서 앉은뱅이 책상 위에 놓인 두꺼운 노트에 그 날 쓸 글의 설계를 해 본다. 한 두어 시간 사색을 하고나서 본격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면 그야말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좋은 글이 나올 때가 많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이 인정하여 주시는 작가’라는 말을 되뇌어 본다.
주 님이 나에게 주시는 기표는 이밖에도 많이 있다. 아내의 건강과 딸아이의 출산과 아들의 취업을 위해 기도 제목을 정해 놓고 열심히 기도하다 보면, 새벽마다 맑은 이슬이 내리듯 기도가 이루어질 때가 많다. 그러므로 나는 요즘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한다. 핵무기보다도, 과거에 대한 적폐보다도 우선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원래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단일 민족이었으며, 백의 민족으로서 순수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한 때 약소 민족으로서 강대국의 이해 타산에 의해서 분단의 선이 그어지기는 하였지만, 단일한 언어인 한글을 사용하는 한 통일의 물꼬가 트이리라 믿는다.
무엇보다도 800만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오늘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고, 평화를 추구하는 다음 세대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한, 한반도 통일이 이루어질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주님이 몸소 실천하신 사랑과 용서와 화해 등의 인간미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용솟음쳐 누구나 부러워하는 먹지고 행복한 복지 국가가 되기를 기원한다. 모두冒頭에 제시한 <시편> 구절에서 주님은 인간사에도 개입하신 것을 알 수가 있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기독교인의 행복론 - 75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