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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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사람들이 ‘소설의 신’이라 일컫는 시가 나오야(志賀直哉,1883-1971)가 1913년에 발표한 ‘세이베에와 호리병박’은 작가 자신의 경험이 묻어있는 작품이란 평이 붙어있다.  
열두 살 난 초등학생 ‘세이베에’가 호리병박에 반해버린다. 날마다 박을 보러 다니다 눈에 띠는 것이 있으면 용돈을 털어 사 모았다. 박 주둥이를 잘라 열흘 쯤 물에 담가두었다가 물러진 속을 파내 말린 후 술을 담아서 수건을 둘러 통에 넣어서는 아랫목에 묻고 나서야 잠이 들곤 했다. 아침에 꺼내든 “호리병박은 땀을 흘려 살결이 흥건히 젖어” 있곤 했는데, 술을 담아 문지르면 윤이 더해지는 것이었다.    
세이베에가 정성들여 가꾼 박들은 어른들의 눈에는 그렇고 그렇게만 비쳤던 지, 아비의 친구들은 세이베에가 열심히 닦고 있는 박을 보고는 “어쩌자고 지지리도 못생긴 것들만 골랐을까?”라며 나무라곤 했다. 그럼에도 소년은 “이게 좋은 걸요.”하며 손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세이베에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어른들이 품평회에서 본 박에 대해서 감탄할라치면 소년은 속으로 코웃음 치며 “별로에요. 덩치만 컸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아들을 보는 아비의 마음은 편치 않을 뿐만 아니라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쇠뿔도 모르는 녀석이!”하고 역정을 냈다.  
그러나 그 누구의 어떤 말로도 그러는 소년을 타이를 수는 없었다. 어느 날 뒷골목에서 “소름을 돋게 할 만한 멋진 박을 발견”하자 대금 10전을 주고 사온다. 이후 소년은 한시도 그 박과 떨어져 있을 수 없게 된다.
학교에 가지고 가서 수업 중에 책상 밑에 감추어서 손질하다가 담임교사에게 들킨다. 그 시간이 수신(修身)시간이었기에 교사의 노여움은 대단했다. 박을 빼앗아 쳐들어 보이면서 “이따위 것에 정신을 팔고 있는 녀석에게는 앞날이 없다!”하고 소리치는 선생. 무서워 떨며 집에 와서도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소년.
아니나 다를까 화를 삭이지 못한 교사가 세이베에의 집을 찾아와서는 소년의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퍼부었고, 이를 알게 된 아비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아들을 두들겨 패고 나서 모아둔 박을 모조리 깨어버렸다.  
“파랗게 질린 세이베에는 아무 말도 못했다.”
이게 고작 작자가 그 순간의 소년을 묘사한 문장의 모든 것. 소년이 용돈을 털어 장만해 정성들여 가꾸어온 박들이 순식간에 박살이 나고, 소년이 아껴 마지않던 그 박마저 교사가 앗아가 버렸는데도... 그래 그거면 충분했다.
아비는 소년의 마음의 세계만은 어쩌지 못했다. 교사도 소년의 마음속에 형성되고 있는 아름다움의 세계에는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수난 중의 소년은 그로서 승리를 맛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년이 변명도 반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확고한 세계 때문이었으리라. 아비나 어른들이 그리고 교사가 공들여 갈고 다듬은 박들은 박살낼 수는 있었지만, 소년의 마음 세계까지는 쳐들어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소년의 손에는 붓이 들려 있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는 소설의 말미를 이렇게 닫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아비는 이제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일에도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
훗날 주인공 세이베에와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후일담을 듣는다. 소년에게서 박을 빼앗은 교사가 그것을 학교 소사에게 주어버리자 소사는 그 박을 들고 골동품가게를 찾았다. 가게 주인이 선심이라도 쓰는 척 “5원”을 주겠다고 하자 영리한 소사가 머리를 가로 저었고, “10원”도 물리치자 끝내 가게 주인은 “50원”에 사들였다가 얼마 후 어떤 부자에게 “600원”에 되팔았다나. 이 이야기가 최근에 경영기법에 인용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기야 “선택과 집중”, 그리고 “가치의 창조”등, 유행하는 투자기법 풀이에 안성맞춤의 자료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주인공 세이베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이고 보면, 당시의 “600원”의 가치를 환산해본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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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베에와 호리병박’ -시가 나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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