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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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셨을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하였다. “나발이 죽었다 함을 다윗이 듣고 이르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도다 하니라 다윗이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말하게 하매 다윗의 전령들이 갈멜에 가서 아비가일에게 이르러 그에게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당신을 아내로 삼고자 하여 우리를 당신께 보내더이다 하니 아비가일이 일어나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이르되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전령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 하고 아비가일이 급히 일어나서 나귀를 타고 그를 뒤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전령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사무엘상> 25:39-42).
다윗이 광야의 요새와 십 광야의 산골을 전전하며 동굴에서 잠자던 사울을 해하지 않고 살려준 후의 일이다. 마온에 살던 나발은 갈멜 지역에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 되는 목축업을 하는 부자였다. 그런 나발에게 다윗이 소년 열 명을 보내어 군사들이 먹을 식량을 구하였나 보다. 그러자 나발은 다윗이란 사람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주겠느냐며 거절하였다. 이에 다윗은 사백 명의 용사들을 대기시키고 나발의 종들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들녘에서 일하는 나발의 종들을 지켜 주었는데 세금을 바치지 않는다는 것에 다윗은 매우 불쾌하였던 모양이다. 이러한 위기를 간파하고 다윗을 설득한 사람이 바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다.
그녀는 서둘러 많은 양의 떡과 포도주와 양고기와 볶은 곡식과 건포도를 준비시켜 다윗을 찾아가서 다윗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말을 하면서 선을 베풀어 달라 한다. 이에 다윗은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행동으로 나발의 종들이 죽게 될 위기를 벗어난 줄 알라고 한다. 그 사건 후 하나님이 나발을 치자, 다윗은 전령을 보내 정식으로 아비가일에게 청혼하여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이 사건에서 중시되는 것은  바로 다윗과 아비가일이 하나님의 시선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편에서 나발의 괘심한 행동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고, 아비가일도 하나님 편에서 다윗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았다는 것이다. 성경 기록자가 방점을 찍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의에 따라서 행동하였다는 데 있는 것이다. 이를 보면 기독교인은 하나님 나라와 의에 따라서 행동하는 데 그 윤리적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의가 세상 도덕과 괴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십계명을 보아도 엄연히 “네 부모를 공경하라”,“살인하지 말라”,“간음하지 말라”,“도둑질하지 말라”,“네 이웃에 대하여 거진 증거하지 말라”,“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등 세상 도덕과 보편적으로 통하는 점도 많이 있다. 아비가일 사건도 그러하다. 남편과 오랫동안 쌓은 정도 있을텐데 어떻게 하루 아침에 남편에게 매정하게 대할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보다 공정하여서, 나발의 의롭지 못한 행동을 하나님은 곧바로 나무라셨다. “여호와께서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사무엘상> 25:38). 나발의 잘못은 자신의 종과 목축을 보호해 준 다윗에게 서운하게 대한 데에만 있지 않다. 하나님이 선택한 자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경솔하게 대한 데 대한 엄정한 심판이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다윗은 한때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성전에 있던 음식을 먹기도 하였으며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 깊이 회개하는 일도 있었다. 하나님은 다윗의 여러 시행 착오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다윗을 사랑하셨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배꼽을 드러내 놓고 춤을 추기도 하였으며, 사울왕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다. 이는 다윗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럼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았다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주님은 나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심성을 주셨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달란트를 주셨다. 성직자에게는 영성을 주셨고, 작가에게는 영감을 주셨으며, 과학자에게는 사물을 헤아릴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그러므로 주님이 그 자녀에게 내려주신 달란트를 주님 영광을 위하여 발휘할 때 거기에는 축복이 따르게 될 것이다. 주님은 아브라함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셨고, 이삭에게는 온유를 심성으로 주셨으며, 야곱에게는 지혜를  주셨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와 사도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와 의를 알리게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믿는다. 주님이 주신 영감의 달란트로 독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글이 많은 이들에게 소개되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알리는 계기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는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인도하시어 나의 의지를 생동하게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인도하시는 한 나는 주님이 인정하는 작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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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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