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⑯ 십일조
2018/07/25 14:3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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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는 결코 율법주의 산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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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속에서 남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이다. 이것은 신실한 신앙인의 삶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주일성수나 십일조는 이른바 율법주의로 매도당하는 듯한 경향들을 나타내고 있다.

문제의 탐색
십일조를 강조하면 율법주의자 또는 교인들의 돈을 갈취하는 것 등으로 비난을 받는 세태가 되었다. 심지어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싫어한다고 십일조에 대한 설교를 기피하는 형편이다. 과연 이래도 될까?

사례의 탐구
성경적 신앙을 실천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장로교 로고스 총회 소속 일신교회(광명시 소재) 박정희 목사를 만나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남식(이하  김): 십일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박정희(이하 박): ① 십일조는 하나님 자신의 명령이다(레 27:30, 말 3:10, 잠 3:9-10). 이렇게 성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십일조 할 것을 명하셨다. ② 예수님께서도 시인하셨다(마 6:19, 20). 특히 십일조를 철저히 행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 23:23) 하시면서 십일조 행위를 버리지 말 것을 말씀하셨다. ③ 성령님께서도 사도들을 감동시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케 했고 성도 중 핍절한 사람이 없도록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지고 각 사람의 필요한대로 나누게 했다(행 4:32, 31).
김: 현대교회의 십일조 경시 풍조의 근원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박: 십일조를 사람들은 흔히 ‘十一租’라고 생각하여 마치 인간이 하나님께 바     치는 세금같이 여기고 있다. 또 우리말 국어사전에도 ‘중세 유럽교회가 교구민에게 징수한 세’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십일조의 한문은 ‘十一條’이다. 따라서 십일조행위는 결코 세금개념이 아니다. 세금은 물질이 나의 소유라는 개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교회의 십일조 경시 풍조는 모든 소유물이 하나님의 것이 아닌 ‘내 것’으로 착각하는 데서 비롯된다하겠다.
김: 십일조 폐지론자들의 주장이 무엇으로 보는가?
박: 구원받은 성도가 구약 율법에 더 이상 매일 필요가 없으므로 십일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옹호하는 구절들(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은 단순히 구약시대의 말씀이니, 지금 신약시대(율법시대가 아닌 은혜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굳이 지킬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즉 ① 십계명 가운데 십일조에 대한 항목은 나오지 않는다. ② 신약성경에는 십일조를 하라는 분명한 명령이 없다. ③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동행하라고 하셨는데 구태여 나의 연보를 십일조 테두리에 가두워야만 하는가? 라는 주장 ④ 레위기 27:30에 나타나 있는 십일조 말씀은 레위기 시대의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지금의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이다.
김: 현대교회의 십일조에 대한 바른 실시 방안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박: ① 우선 신약시대 들어와서도 십일조 생활은 계속되었는가?이다. 이는 예수    님 당시 바리새인의 기도 중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12)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예수님 시대에도 백성들이 계속하여 십일조 생활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십일조에 대하여 두 가지 면에서 언급하셨는데 한 번은 십일조 생활에 대해 칭찬하셨고, 한 번은 부족한 점을 꾸짖으셨다(마 23:23, 눅 11:42).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십일조에 대해 강조하실 필요가 없었다. 백성들은 이미 실천하고 있었으므로 부족한 것만 경고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십일조는 안식일 준수문제에 대해 비평을 받으셨어도 십일조에 대하여는 한 번도 비판을 받으신 적이 없으셨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도 철저하게 십일조 생활을 하셨던 것을 알 수 있고, 예수님 스스로는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고 오히려 완성시키러 왔다고 하셨다(마 5:17).
한편 초대교회는 오순절 이후 율법적 유대교가 복음적 그리스도교회로 변혁되는 과정에서 예루살렘 사도회의(행15장)를 통해 이방인 할례문제와 주일문제 등이 해결되었으나, 십일조에 대하여는 율법주의라고 변경했거나 폐지된 흔적은 한 곳도 찾아 볼 수 없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초대교회는 십일조 제도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 십일조 제도 이상의 헌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행 2:44-47, 4:32-35).
십일조 연보는 사실상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물질 축복들 가운데 명하신 최저 기본선의 의무이다. 십의 십이 모두 하나님의 것인데 이를 인정하여 그 중의 십분의 일을 그 증거로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물질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과 관계하는 출발선이라 할 수 있다. 신약교회가 십일조 이상의 것을 서로 교회에서 통용한 것은 이 최저의 기본선을 넘어 간 것이다. 그것은 은혜 위에 은혜생활의 표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들에게 십일조에 대하여 몇 가지 원칙을 가르쳐야 한다.
① 십일조는 모든 성도 곧 어린 아이부터 성인까지 모두 해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 ② 십일조는 수입액의 순이득에서가 아닌 총수입에서 드려야 한다. 그것이 온전한 십일조 정신이다. ③ 십일조는 반드시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드려야 한다. ④ 십일조는 생활비보다 먼저 구별해 놓아야 한다. ⑤ 설사 교회재정 운영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십일조는 반드시 드려야 한다.
김: 십일조 생활을 기복신앙으로 보는 관점도 있는데….
박: 먼저 확실히 말해 둘 것이 있다. 십일조의 축복은 상리적(商利的) 행위에서나 기복관념의 행위에서나, 어떤 논공행위에 대한 보상관념에서 해석될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온전한 십일조 행위는 하나님 명령에 대한 순종의 행위이고 바로 그 자체가 신앙고백의 표현이 된다. 따라서 그 신앙고백은 바로 믿는 대로 되어지는 체험을 수반하게 된다. 그리고 온전한 십일조 행위는 하늘의 문이 열려지는 축복이 약속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믿음의 행위에서 나온 열매의 축복이다. 이는 이것을 실행한 모든 개인, 가정, 교회, 나라가 온갖 물질적인 축복을 누린 기독교 2,000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기본에의 회귀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실시한다. 이것은 율법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현이다. 우리는 물질의 십일조만이 아니라 시간, 재능의 십일조도 드리는 ‘전인적 드림의 삶’을 영위하고 이것을 통해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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