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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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잊을 수 없는 친구가 있다. 내가 살던 마을 작은 교회 담임전도사님 아들이었다. 나는 유교적이고 불교적 전통을 중시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그랬는지 그 친구를 무던히도 괴롭혔다. 예수님이 부처님 앞에서 도망가는 그림을 그려놓고 친구를 골리기도 했다. 그가 울면 좋아서 괴롭히며 때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들어오면 너 왜 우니하고 철저하게 착한 아이처럼 위장을 했다. 그래서 하루는 그 친구의 어머니가 학교로 쫓아왔다. 담임선생님께 저 놈이 우리 아들을 때린다라고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의 철저한 위장 때문에 선생님은 친구 어머니께 이 아이는 모범생이라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다음 날 학교에 가서 그 친구를 골려주었다. 그 친구는 그렇게 놀림을 당하면서도 강석아, 같이 예수 믿고 교회 좀 다니자. 내가 너를 꼭 천국으로 인도하고 싶어라며 끈질기게 전도를 했다. 그런데도 나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아무리 성탄절에 사탕을 주고 부활절에 공책을 준다고 해도 더 어긋 바라진 심정이었는지 나가지 않았다.

친구와 헤어진 것은 중학생이 된 뒤 친구 아버지가 목사가 되어서 다른 지방의 큰 교회로 부임하면서부터다. 세월은 물처럼 흘러 나는 목사가 되었고 목회를 하면서도 이따금씩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밀려오곤 했다. 친구에 대한 그리움도 생겼고 언젠가 친구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몇 년 전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TV에서 나오는 내 설교 방송을 보고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지방이었지만 친구는 사업도 잘되고 모든 것이 형통하다고 큰 소리를 뻥뻥 쳤다. 나는 먼저 전화로 사과부터 했다. “친구야, 그때는 내가 너무 미안했어. 방송 설교를 들으면서 얼마나 나를 욕했니? 미안하다. 내가 한번 내려갈게.” 그런데 얼마 뒤 전화를 했더니 결번이라는 안내 음이 흘러나왔다. 왜 그럴까, 몹시 궁금하였지만, 또 세월은 화살처럼 흘러가버렸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 친구는 위암 말기

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바빠도 친구를 위해 기도해주러 한번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주쯤 뒤에 금쪽같은 시간을 내서 지방병원으로 내려가 보았더니 이미 친구는 하늘나라로 갔고 이제 막 발인을 했다고 했다. , 어쩌면 이럴 수가 있을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몇 년 전 통화할 때 이미 사업은 부도가 났고 무척 힘들게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친구가 전화번호만 바꾸지 않았더라면 친구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었을 텐데, 어쩌면 스트레스를 덜 받아 암도 들지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니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내 친구가 죽어서야 나는 꽃다발을 들고 친구의 무덤을 찾았다. 친구의 시신은 화장을 해서 납골묘를 하였다. 나는 반 평도 안 되는 친구의 작은 무덤 앞에 고개를 떨구고 꽃다발을 헌화하며 용서를 구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이고 또 속삭였다. ‘친구야, 네가 나보다 먼저 천국에 갔구나.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나를 보고 있겠지. 미안하다. 그런데 그때 왜 전화번호를 바꿨어. 너랑 통화만 되었어도 내가 네 손을 잡아줄 수도 있었을 텐데.’ 인생은 왜 그럴까. 친구가 살았을 적에는 시간을 못 내고 왜 죽은 후에야 아쉬워하며 그리움을 느끼게 된단 말인가. 참으로 미련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애써 쓸어내리며 친구의 무덤 앞에 꽃씨를 한 줌 뿌려놓고 왔다.

이미 봄은 지나갔지만 무덤 앞에 꽃씨는 싹을 틔울 것이고, 올해는 피지 않더라도 내년에는 꽃을 피우리라고 기대를 하면서. 아니, 참으로 속절없기는 하지만 내년 봄에 다시 와서 꽃씨를 뿌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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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목양칼럼] ‘친구의 무덤에 꽃을 피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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