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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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가 때로는 새로운 뜻을 드러내며 다가오는 일이 없지 않지만, 알고 보면 베토벤도 나름대로는 비즈니스 맨이었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 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베토벤에게는 아무개 귀족에게 헌정되었다는 작품들이 유난히 많다. 동시대의 동업자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에게는 “헌정”딱지가 붙여진 작품은 수곡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헌정”현상이 유독 베토벤에게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하지 않는가.  
당시 상황으로는 베토벤도 생활을 위한 수입을 귀족들에게 의존했다고 본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상황을 들여다보면 베토벤은 그때까지의 다른 음악가들과는 달리 처음으로 “예술가”라는 의식을 가지고 예술가로 자립하려 안간힘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위 “클래식 음악”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예술”이 된 음악, “예술”이고자 했던 음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곧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셋 중 “예술”로서의 음악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오직 베토벤만이었다고 단언해도 좋으리라.  
하이든은 궁정악사로서의 그의 책무를 무난히 감당한 음악가. 다른 말로 표현해 본다면 하이든은 성공한 공무원이었다. 모차르트도 스스로 뛰어난 음악가라는 자부심은 지녔었어도 예술가라는 자각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 같다. 너무 일찍 요절해버렸기에. 한 시대를 앞서 산 바흐 역시 솜씨가 빼어난 음악장인이긴 했다. 그러나 지나친 표현일지는 몰라도 당시의 구두장이나 빵가게 주인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감각으로 대를 이어가며 음악가라는 가업을 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정리해본다면,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가에게 고용되어 있었고,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악단에 속해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름대로 정해진 수입을 취할 수 있었다.   
이들과는 달리 역사적으로도 “궁정에 속한”적이 없는 작곡가로는 베토벤이 처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된 “예술가 베토벤”으로 행세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과 베토벤에게 “헌정”된 작품이 많다는 사실과를 관계 지어보면 그 내막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베토벤에게는 연주회 입장료와 출판사에서 지급되는 악보 원고료만이 수입의 전부였고, 그것도 먹고 살아가기에는 태부족한 액수였고 보면, 소위 파트론이라 일컬어지는 후원자를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향곡 4번>, <교향곡 5번>, <교향곡 6번>이 각기 다른 귀족에게 헌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막인즉 세곡 모두가 오즈펠트 백작에게 헌정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전적으로 경제적인 이유, 다시 말해서 다른 두 귀족이 더 많은 자금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최종에 변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비즈니스 감각이 개입되었었다는 말이다.   
먼저 “헌정”부터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례금을 받고 난 다음에 헌정되는 수도 있었다. <대공>으로 알려지고 있는 <피아노 삼중주곡 7번>은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뿐 곡의 내용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내막쯤은 모르는 이가 없을 터. 루돌프 대공에게는 꽤 많은 걸작이 헌정되었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과 <29번(하머크라비아)>, <32번> 그리고 <미사 솔렘니스>등.  
얼마나 지불했는지는 짐작할 수밖에 없지만, 곡과 더불어 헌정한 이의 이름이 인용되는 고로, 적잖이 지불되었을 것이라 짐작하게 한다. 프로이센 대사 하츠펠트공이 오스트리아의 궁중고문관을 통해서 베토벤에게 “훈장과 50 다카의 금전 중 어느 쪽을 받겠느냐”고 물었을 때, 베토벤은 “물론 50타카”라 대답했다니.
무릇 비즈니스의 속성상 베토벤에게도 적잖은 실패가 따랐다. 덜컥 헌정하고 나서 대가를 받지 못한 경우인들 왜 없었겠는가.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에게 3곡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헌정했지만 사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13년이란 세월이 흐른 1815년에, “빈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황제가 빈에 왔을 때, 동행한 황후에게 신곡을 헌정하면서 편지를 동봉한다. “언젠가 황제에게 헌정한 소나타의 사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독촉장은 밀린 사례금을 회수해왔다. 비즈니스맨 베토벤은 꽤나 끈질겼던 것 같다.  
나폴레옹에게 헌정했던 <교향곡 3번(영웅)>을 두고 실패한 비즈니스로 단정지어 버린다고 해도 달리 반박할 자료는 별로 없지만, 적어도 베토벤의 치열한 삶을 아는 모든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할 것 같아서…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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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헌정(獻呈)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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