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01
2018/10/26 11:3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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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구주, 예수님 (요한 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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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3장에서는 빛과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니고데모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요한복음 4장 본문의 이야기는 니고데모와는 아주 대조되는 인물과 예수님과의 긴 대화이다. 그는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인으로 남자가 아닌 여자,  종교, 정치, 학문에 있어서 지도자이며, 돈도 많은 이스라엘 상류 사회의 일원인 니고데모와는 달리 남편을 다섯을 가졌었고, 지금 같이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소외된 듯한 무명의 여자, 밤에 스스로 예수님을 만나로 나온 니고데모와는 달리대낮에 물을 길으러 우물에 왔는데 예수께서 먼저 그에게 물을 청하며 대화를 하게 된 여자였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상당이 신학적이고 신앙적이며 현실적인 면이 있다. 그들의 대화의 주제는 예배에 대한 것이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하늘로부터 온 선생이라고 말하고 영원한 생명, 곧 영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여자는 예수님께서 선지자라는 것을 깨닫고, 예배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요한 4장은 영혼에 대한 목마름-남편-예배의 대상으로 이야기가 진전되고 있다. 이들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가?
예수께서 이 낯선 여자에게 물을 청했을 때, 이 사마리아 여자는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이 꺼리는 사마리아인에게 무슨 수작을 벌이는 것으로 생각하여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는 이유를 물었다. 이때 예수께서는 만일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물을 달라고 하는 예수님이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오히려 물을 청했을 것이고, 그러면 그가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선물이란 말이 값없이 주는 물건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여기서 예수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생수는 값없는 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들의 대화는 야곱의 우물과 예수님의 우물로 비화하여, 야곱이 주는 말과 예수께서 주시고자 하는 물을 비교한다. 야곱의 우물 물은 마셔도 마셔도 계속 목마른 물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시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며, 그 물은 사람 안에서 영생에 이르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뱃속에 영생수의 샘을 무상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여자는 그 물을 예수께 청하는 데, 그물을 자기에게 주어서 목마르지도 않고, 이곳에 물을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해달라고 창한다. 목마른 여자, 물 길으러 다니기에 지친 여자의 말 같다.
사람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이 여자는 물을 길으러 다니는 것이 싫지만, 목말라 살기 위해서라면 이 뜨거운 대낮이라도 이 우물을 찾지 않을 수 없다. 고대 근동의 광야에는 우물이 생명줄이나 다름없었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의 위대한 조상, 야곱이 물려준 이 우물물은 이 여자에게 해갈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생수에 귀가 번쩍 열린 것 같다. 그래서 그 물을 자기에게 달라고 청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예상 밖에 이 여자에게 자기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신다. 도대체 목마른 여자에게 생수를 주실 수 있다고 하신 예수께서는 왜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시는가? 생수와 남편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남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로부터 구출해 내서 시내 산으로 데려와 언약을 맺어 그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고대 근동 사람들에게 결혼은 계약이고 언약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내 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것을 여호와 하나님과 결혼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호와는 그들의 남편이고, 자기들은 여호와의 아내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남편으로서 이들을 보호하고, 의식주를 공급하는 것을 비롯하여 남편으로서의 대의를  지키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한 정조를 지키지 못했다. 남편을 배반하고 이방신을 믿고, 이웃 강대국을 의지하여 바람을 피운 것이다. 간음하고 행음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원래 야곱의 후예였지만 솔로몬 이후 여로보암이 반란을 일으키어 나라를 쪼개 북왕국을 세우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며, 그의 백성이 남왕국의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여호와께  예배하는 것을 저지했다. 아합 왕 때는 바알 신을 섬기며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숙청했다. 그리고 아람과 연합하여 아시리아에 대항하다가 망하게 되었으며, 아시리아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아시리아 땅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대신 아시라야 사람들을 북왕국의 땅에서 살게 하였다. 결국 이러한 과정 가운데서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혈통의 순수성을 잃고 혼혈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이후 그들은 아시리아에 이어 바빌로니아, 헬라, 로마의 통치를 받으며 그들과 그들의 신을 섬겼다. 나라가 망하고 통치자가 바뀌면 그들이 믿는 신도 바뀌었다. 지금은 로마의 황제를 신으로 모셔야 하는 상황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여호와, 금송아지, 바알, 바빌로니아, 헬라 등 다섯을 섬기고, 지금은 로마를 섬기고, 종노릇하고 있는 중이다. 남왕국 유대인들은 원래 야곱의 아들들로 동족이요 형제이었지만 혼혈족이 되어 이방신을 섬기는 북쪽의 사마마리아 사람들과의 왕래를 끊고 상종하지 않게 되었다.
사마리아 여자에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그들이 섬겼던 신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그가 섬기고 예배하는 신이 누구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그의 육신적인 남편을 통하여 그가 믿고 예배하는 신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이 여자에게 자기의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현재의 남자도 자기의 남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여자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아보고 즉시 예배의 장소(20-21), 때(21, 23), 대상(23), 방법(24) 등 예배에 관한 질문을 쏟아낸다. 이 대화 속에서 예수께서는 이 여자에게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아주 핵심을 찔러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메시야가 오실 것을 기대하는 이 여자에게 예수님은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이다.”라고 자신의 정체를 말씀하신다.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자신이 메시야를 만났음을 외치고 다녔으며, 동네 사람들은 이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참으로 세상의 구주”라고 고백하게 되었다(4).
예수님의 말씀대로 야곱의 우물 물은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흙으로 빚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어 생명체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가 된 것이다. 다른 모든 피조물과 달리 그 속에 영혼을 두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영적 교재를 하며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의 영적 교제의 대상으로 삼으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과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영적 존재인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반역하고 하나님의 품을 떠났다. 그들은 예배의 대상을 잃었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에게는 본성적으로 본향에 대한 향수와 목마름이 있다(히 11:13-16). 하나님께서 생명의 호흡을 그 코에 넣어주고(창 2:7),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그들 속에 두셨기 때문이다(전 3:11).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어느 것도 채워질 수 없는 오로지 무(empty)의 세계만 남게 된 것이다. 그들이 예배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자들이다(22). 자기 들이 만든 알지 못하는 신이 인생들의 목마름을 해갈시켜 줄 수 없으며, 야곱의 우물 물이 인생들의 목마름을 채워줄 수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 사람 안에서 영생에 이르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신다고 하셨다. 우리의 뱃속에 샘을 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 곧 예배를 통하여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 야곱의 샘물을 마시고 사는 자들에게, 인간들의 목마름을 영원토록 채워주는 영원한 샘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사마리아의 사람들의 말처럼 “그리스도”이시오, “세상의 참 구주”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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