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1-1.jpg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 가셔서,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여자”라고 부르신다. 혹자는 이것이 당대의 풍습으로는 존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께서 이 상황에서 그의 육신의 어머니를 굳이 존칭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의도적으로 “여자”라고 부르신 것 같다. 예수께서는 이 혼인 잔치 집에서 자신이 물을 포도주로 만든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실 뿐만 아니라, 신랑이 그의  결혼 잔치를 베풀고 축하객들에게 포도주를 접대하는 고대 근동 사회의 풍습에서와 같이 포도주를 내심으로 신랑의 역할을 하고 계심을 보여준다. 그래서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능력을 가진 신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포도주를 내는 신랑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들의 신랑이요 자기들이 그의 신부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신적-신랑 (Divine Bridegroom)이 예수님 자기 자신임을 이 혼인 잔치에서 암시적으로 보여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보통 육신의 어머니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타락하게 한 뱀에게 저주를 퍼부으시며, ”그(여자)의 씨“라는 말을 언급하신다. 히브리어 성경은 “그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보다는 “그 (여자)의 씨“자르아카()”라고 쓰고 있다. 거의 모든 영역본에서는 “자식”이나 “후손”이라는 의미의 offspring을 쓰고 있으나 KJV 이나 NAS에서는 “씨”(seed)라고 번역하고 있다. 의미상으로 씨라고 이해해야 옳을 것 같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그의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를 때는 바로 창세기에서 그 “씨”를 잉태한 그 여자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위로는 하나님-사람-만물의 위계 질서가 있는 세계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어 그가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그를 대신하여 다스리시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왕으로 세우신 것이다. 이러한 질서 체계는 계약 혹은 언약을 통하여 법적 구속력을 가지며, 왕과 백성 사이에는 대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언약적 연대성을 갖는다. 왕의 대왕에 대한 충성심 여하에 따라 신민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아담이 대왕이신 하나님께 충성하며 순종하면 왕 자신을 물론 그의 수하에 있는 모든 신민들이 평안을 누리지만, 반역을 하거나 불순종할 때는 왕은 반역의 형벌을 받게 되며, 왕과 언약적 연대성 하에 있는 모든 신민들은 왕과 함께 진멸당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담 한 사람의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아담은 물론 아담의 언약적 연대성 하에 있는 모는 인간들과 자연 만물이 아담과 함께 죄인이 되어 아담과 함께 분순종의 반역에 대한 형벌, 곧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다. 바로 원죄이다. 인간의 원죄는 우리 각 사람이 다 아담과의 연대성 안에 있어서 아담과 함께 죄를 짓고 아담과 함께 형벌을 초래한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5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 어 왔으며, 그리하여 사망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르렀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지었기 때문이다.”(롬 5:12)
그러나 만물을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시며, 안식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쁨의 대상이 되었던 그의 창조물을 모두 진멸시키기에는 이들을 너무나 사랑하셨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구원계획을 세우신다. 그것은 “새 아담”을 창조하시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새 아담 한 사람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시려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 점에 대하여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자들에게도 사망이 다스렸으니, 아담은 오실 분의 모형이었다.”(롬 5:14) 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아담은 모형(type)이고, 오실 분 곧 그리스도는 실형 (antitype)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형이라는 말은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고, 또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인이 되는 연대성의 원리를 가르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담을 대신한 새 아담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몇 가지 조건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새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여자의 씨(후손)”여야 한다.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 아니고, 여자에게 낳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새 아담은 신적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라야 할 것이다. 뱀은 단순한 들짐승이 아니다. 사단의 사주를 받아 여자를 유혹한 영적 존재이다. 육을 가진 인간이 영적 존재를 대항할 수 없다. 따라서 새 아담은 사단 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더 능력 있고, 권세가 있는 영적 존재여야 한다. 셋째로 그는 아담의 죄를 대속하여 죽고 부활해야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반역자, 아담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가죽으로 만든 수의를 입히셨다. 아담과 그의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사형 언도를 받고 그 집행을 기다리는 자들이다. 이들을 사면하고 살리기 위해서는 죄 값을 치러야 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창 2:16-17; 3:19; 롬 6:23).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는 어느 누구도 사람이든 짐승이든 아담의 죄를 대속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아담의 연대성 아래에 있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인이 남의 죄를 대속할 수 없다. 따라서 새 아담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여야 한다. 그리고 그가 아담의 죄를 지고 대신 죽고, 하나님께서 그의 속죄를 만족하게 여기신다면 그는 이제 죄와 죽음의 굴레를 벗어났기 때문에 살아나야 한다. 따라서 새 아담의 속죄에 따른 부활은 곧 아담과 그의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새 아담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은 모든 아담과 그의 연대성 아래에 있는 피조물을 살리고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새 아담은 신인적인 존재(Divine-Human Being)로서 아담의 죄 값을 치르고 부활해야 하는 자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어디 있는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적 지혜로 성령을 통하여 그의 아들을 처녀의 몸을 빌려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보내시려는 계획을 세우신 것이다(사 7:14). 그렇다면 그는 우리 인간들과 전혀 다른 보통생육법으로 낳은 자가 아니고 성령을 통하여 낳은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새 아담은 신-인적인 존재(Divine -Human Being)이아야 하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이 비밀을 알리시고 갈릴리 나사렛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이 계획을 실행하신다.
“천사가 그 여자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성령께서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덮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거룩한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눅 1:35)
바울도 이 하나님의 비밀을 “때가 찾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셨으니 이는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다”고 가르친다(갈 4:5-6). 요한은 이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한다. 성육신하셨다는 것이다 (incarnation). 이어서 선지자 세례 요한은 그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곧 자신을 세상 죄인들의 속죄제물로 바칠 것이라고 가르친다(요한 1:29). 새 아담은 부모를 통해서 이 땅에 온 것이 아니고 성자께서 성령으로 처녀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세상의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새 아담”, 곧 “마귀의 머리를 짓밟을 여자의 씨” 임을 염두에 두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성경에서 언급한 대로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씨를 잉태할 분으로 지칭하여, “여자여!”라고 불렀을 것이다.
바울은 아담과 새 아담의 모형(type)과 실형(antitype)의 원리를 말하며, 아담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사람의 범죄로,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다스렸다면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더욱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으로 다스릴 것이다. 그러므로 한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롬 5:17-18).
한 사람의 범죄와 한 사람의 의로운 행동이 우리의 죽음과 생명을 갈라놓았다. 우리 인간은 항상 아담의 범죄만 탓하고 하나님의 불공평하신 처사만 불평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정죄하신 똑같은 원리로 우리 죄인들을 살리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는 일이 없지만 그리스도 한 사람 때문에 우리를 죄와 죽음의 멍에에서 해방시키신 것이다. 값없이 사면되고, 저 죽음의 감옥에서 석방된 것이다. 이것을 은혜요 의의 선물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죄 값을 치르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면 우리는 새 생명을 얻을 수가 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하는 신앙고백을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 아담의 연대성 안으로 받아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성탄절을 맞으며, 내가 왜 죄인인가? 예수께서 누구이시며,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 영광 버리시고 이 땅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성육신(Incanation)과 낮아지심(Humiliation)의 의미를 알고 되새겨 보야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아담 안에서 아니라, 새 아담,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으로서 살아야 한다.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이 말씀이야 말로 깊고 깊은 하나님의 지혜요 섭리이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낮아져서 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예수께서는 이 모형의 비밀을 우리에게 열어주실 것이다. 그러나 교만한자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신비는 닫혀있기 마련이다. 예수님은 새 아담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인 여자의 씨이다. 그는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오신 새 아담이시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106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