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행복론 - 94
2019/01/03 11:4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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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축복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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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박해를 받을 것을 예감하였다.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유대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이 사도들에게 임하였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대교인들은, 바울이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사도행전> 21:21)며, 시비거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들은 대책이 필요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인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고 성령이 임재하심을 그들에게 분명히 선포하여야 했다. 그리고 선민 의식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성령이 이방인들에게도 임하심을 알려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동시에 알려야 하는 복음 사역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의 형제들-제자들과 사도들-은 묘안을 짜낸다. 이방인 사역으로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바울,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자가 회심하여 기독교 이론을 정립하는 위치로 바뀐 바울을 박해자들로부터 구할 방법은 무엇인가. 그때 예루살렘에는 기독교인이 되겠다고 서원한 네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의 형제들은 바울이 성전에서 그들에게 결례를 행하고 머리를 깎게 하여 유대인의 율법에 결코 저촉되는 일이 없었음을 보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들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간다. 그러자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에게 충동질을 하였다.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사도행전> 21:28)며, 바울을 비방하였다. 그리하여 바울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들과의 긴 논쟁이 시작되었다. 결국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까지 가는 과정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오늘날의 기독교 이론을 정립하게 된다.
필자가 방점을 두는 것은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갈 때 겪은 고난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배를 타고 가는 장면을 보자. 이는 <사도행전> 27장에 잘 나타나 있다.
바울은 다른 죄수 몇 사람과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었다.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이 그들을 호송하였다. 그는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그들을 오르게 하였다. 그 배가 그레데 해안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로웠다. 이때 바울은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칠 정도로 위험하다고 말하였으나, 율리오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고 항해를 강행하였다. 그리하여 맞게 된 것이 “유라굴로라는 광풍”(<사도행전> 27:14)이다. 이로 인해 사공들이 배의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배의 기구를” 내버리는 등의 “타격과 손상”을 입게 된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은 바울의 말을 율리오 백부장이 안 들었기에 생긴 일이었다. 그로 인해 바울도 유라굴로 광풍을 거쳐야 했다.
그럼 우리 인생에서는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없는가. 인간은 누구에게나 이와 같은 광풍이 없지 않다. 필자도 여러 차례 광풍을 맞은 적이 있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서 한동안 교수 임용이 되지 않아 힘든 적도 있었고, 작가가 되고나서 베스트셀러를 꿈꾸었으나 그게 그리 쉽지 않아 좌절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광풍을 하나님의 의대로 해석하였을 때 심오한 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제목을 ‘고난이 축복인 이유’라고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난이 축복이 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의대로 생각하면 될 수 있다. 이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접할 수가 있기에 축복이다. 이 고난이 없었더라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진하게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좌절과 절망과 고독에 처해 있었을 때에 나는 비로소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주님이 내 고난의 짐을 대신 지고 걸어가셨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사랑은 이러하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롬 8:2) 나를 해방시키셨다. 그리하여 나는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롬 8:4) 길을 걸어갈 수가 있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나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되었으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나는 넉넉히 이길 수가 있었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롬 8:39) 거할 수가 있었다. 곧 나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영적 전쟁에서 이길 수가 있었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주의 은혜 안에서 행복한 나는 예배를 통하여 찬양을 열심히 부를 수가 있게 되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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