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행복론 - 95
2019/01/17 15:3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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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 사회의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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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차 산업 시대가 도래하였다. 공장에서는 사무직과 노동직이 유기적으로 융합되고, 시장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맞춤형으로 연결되며 ICT에 의하여 다품종 소량 상품이 빠르게 유통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교회도 그 역할이 다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인터넷을 통하여 다수에게 감동을 주는 설교가 빠르게 유포되고 있으며, 개교회에서도 만사(서로 만나고 사랑하는 모임)를 통하여 맞춤형 전도 방식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ICT를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 재정이 든든해야 한다. 재정이 든든해야 복음이 제대로 전파될 수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실천하신 방식이기도 하다.
<누가복음>의 흐름을 살펴보자. <누가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전에 여리고에서 삭개오를 만나게 된다. 그는 세리라는 직업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소외당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한 삭개오에게 주님은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감격한 삭개오가 말하였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성인 남자 오천 명이 먹고도 남는 음식을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는 등으로 물질면에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셨다는 점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야말로 풍족한 나눔의 모습의 보여 주셨다. 삭개오를 통하여 백성들을 구제하는 길을 열어 보이심도 그러하다. 이와 같은 넉넉함은 주님의 베푸시는 이미지를 확고히 하여 급기야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라는 칭송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모습은 “성전에 들어가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을 정도로 당당한 권위를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은 재정의 넉넉함은 제자와 사도 들의 전도 활동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성령의 임하심을 체험한 후 재정적인 면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춘”(<사도행전> 5:1-2) 행위로 인해 죽게 된 것도, 성령이 제자들의 재정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바울과 전도 여행을 갔던 바나바도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사람이다.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사도행전> 4:36). 그의 조카 마가는 그 다락방에 120명의 기독교인이 모여 기도할 정도로 큰 저택을 가지고 있었다.
제자들의 지원을 받아 전도 여행을 하던 중 의견 차이로 인하여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섰을 때에도, 바울은 천막 일을 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오히려 바울은 이스라엘에 심한 흉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전도 여행지에서 구제 헌금을 거두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헌금할 정도였다. 바울의 재정은 바울을 심문하던 벨릭스 총독도 그것을 탐낼 정도로 풍성하였다.“동시에 또 바울에게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사도행전> 24:26). 또한 그가 죄수의 몸으로 이달리야로 가는 배를 탔을 때에도 죄수들을 호송하던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가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기를 허락하더니”(<사도행전> 27:3).
필자가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와 사도들(베드로, 바나바, 바울, 마가 등)의 재정이 튼튼하였음을 정리한 것은, 4차 산업 시대에 재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20세기 말까지만 하여도 한국의 성직자들은 성령이 신자들에게 물질적 축복을 주심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가난을 면한 교인들은 배고픔을 면한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하였다. 이제 재정은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21세기의 4차 산업 시대에 신자들은 재정을 어떻게 운용하여야 할까. 맞춤형 재정 운용이 필요한데, 바울이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사도행전> 18:1-4).
바울은 생업의 현장이 복음 전파의 생생한 교회였다. 이는 오늘날 신자가 어떠한 방향으로 전도를 해야 하는가를 잘 알려 준다. 곧 주일날 교회에서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직장이나 생업 현장도 복음 전파의 터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사 운동’(만나서 사랑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운동)은 그 일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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