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1.jpg
종교나 학문은 진실과 선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데아를 상정하였고, 공자는 중용과 덕을 강조하였다. 4차 산업 사회에서 사람들은 편리와 편안을 공유하면서 행복을 추구한다. 그만큼 행복은 다양한 곳에 숨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리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다양한 사조를 훑어가며 진실과 선과 행복을 찾아나선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양식으로 전파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독교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항상 복음으로 다가섰다. 기독교가 유대교와 맞서 승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면이 있다. 1세기 이후 유대교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인정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의 임재하심을 인정하지 않고 선민 의식에 가득차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하나님이 인도하여 오신 역사를 인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나님과 그 자녀의 관계가 화목하게 되었고, 주님이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하심을 선포하여야 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환상을 통하여 성령의 계시를 받아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됨을 알렸으며, 스데반은 “지혜와 성령으로”(<사도행전> 6:10)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하나님이 인도하신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설교하다가 순교를 당한다. 이어 바나바가 자신의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내놓으며(<사도행전> 4:37) 나아가 기독교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파하였으며,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주님을 만나(<사도행전> 9:5) 회심하게 된다. 이를 보면 성령이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임하였을 뿐만 아니라(<사도행전> 2:4), 4차 산업 사회에 사는 신자들에게도 임하심을 알 수가 있다.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취급하려는 이단들을 물리치면서 삼위일체론을 정립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이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사도행전> 19:21)며 기독교 교리를 정림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박해를 당할 것을 알고 있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사도행전> 20:23). 그러면서도 그가 가야만 했던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방인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으며, 할례를 받지 않았다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못 되는 것은 아님을 유대인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으며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하심은 기독교의 핵심이었고, 이를 제대로 전파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에게 자신에게 성령이 임하여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당당하게 변론하였다. 그리고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면서 그는 <로마서>에 나오는 기독교 교리를 정립하게 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나님과 그 자녀들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며, 십자가 보혈을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며, 율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행함으로써 율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써 넉넉히 이기는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전하였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8-39).
하나님의 자녀는 주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기에 가능한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려는데 왜 이렇게 고난이 심하냐고. 이에 대해 바울은 말하였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3-5).
주님은 우리가 고난중에도 함께 하신다. 그리하여 인내하게 하시고 연단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소망을 가지게 하신다.
필자가 미국 앤아버에 와서 알게 된 것은 수많은 교회들이 예배당이나 건물을 빌려 예배를 드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목사 부부는 습기가 많은 지하에서 세들어 살다 보니 사모의 팔에 곰팡이로 인해 생긴 피부병이 오랫동안 낫지 않아 고통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허름한 예배당을 대출받아 인수한 경우에도 수리해야 할 데가 많아 교인들이 직접 에어컨 공사나 난방 공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기독교인의 행복론 - 96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