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09
2019/02/01 13:0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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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담, 제사장으로 오신 그리스도 (히 7: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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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다. 예수께서는 선지자로 오셨다. 그리고 새 아담, 예수님은 제사장과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그를 대신하여 그가 지으신 만물을 돌보고 다스리는 일을 하게 할 뿐 아니라 그와 교제를 나누기 위하여 창조하셨다. 그러나 아담이 사탄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반역하여 하나님의 곁을 떠남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는 끊기고 아담은 그와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죄와 죽음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창조하신 만물을 사랑하시고 끊어진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한번 끊긴 관계를 다시 회복하려면 아담은 죄 값을 치루고 그의 죄를 씻어 정결한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죄인이 죄 값을 치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죄 값을 하나님 자신이 치르기 위하여 그의 외아들을 육신의 몸을 입고 인간 세상에 보내시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외아들이 해야 할 일은 첫째로 사람의 몸을 입고 찾아 와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아담의 범죄에 죄 값을 치르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죄 값으로 내놓아야 하는 것이고, 셋째는 그의 죄 값이 충분히 치러졌다는 표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살리시고, 아담과 그의 연대생 안에 있는 자들도 죄와 죽음의 사슬로부터 풀려나서 타락 이전에 하나님과 누렸던 관계성을 회복하고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니 인생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이땅에 오셔서 그의 목숨을 죄 값으로 바친다는 개념 자체가 400년 동안이나 타국에서 노예생활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시청각적인 모형을 통하여 미리서 가르치시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제사제도이다. 이 제사제도가 본격적으로 제도로서 정착한 것은 모세 때부터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식을 이 제도를 통하여 예습을 시키신 것이다. 제사에는 제단과 제물과 제사장이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제도를 친히 게시하여 주시고, 법으로 정하여 엄격하게 시행하도록 하셨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열거한 내용이 바로 제사제도에 대한 것이다.
첫째로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는 성소에서 이루어졌다. 성소, “믹다쉬”라는 말은 “카다쉬”, 곧 “거룩하다”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거룩한 곳, 성소로 번역하고 있다. 장막이라고도 한다. 제사는 아무 곳에서 드려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에서 드려야 했다. 성소는 놋받침 위에 세운 기둥을 세우고, 기둥을 따라 포장 울타리를 쳐서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출 38: 9-20). 성막 뜰에는 물두멍과 번제단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성막이 지어졌다. 성막은 은으로 만든 밑받침 위에 아카시아 나무로 널빤지를 만들어 밑바닥을 깔았다. 그리고 널빤지 위에 성소와 지성소를 만들었다. 성소에는 등대와 향단과 진설병을 올려놓은 상이 있었다.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는 휘장으로 막을 쳐서 서로 오갈 수 없게 만들었다.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두었는데 그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을 새긴 두 개의 돌판과 만나를 담은 항아리, 그리고 싹인 났던 아론의 지팡이를 넣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성소와 지성소를 휘장으로 분리시켜 놓았는데 이는 하늘과 땅,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과 죄인들이 거하는 곳이 죄로 말미암아 분리되고 막혀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오로지 일년에 대 속죄일에 단 한 번 속죄 양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요한은 예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요 1:14). “계신다”는 말은 “장막을 펴다”()는 의미이다. 예수께서는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첫 기적을 행하신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성전을 청소하시며, 그 성전이 바로 자기의 몸이라고 선언하셨다.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다 죄인이라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접근할 수 없다. 인간들 스스로가 죄를 짓고 하나님의 존전을 피했다.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이 휘장이 거두어지고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성전의 이 휘장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 후 성전 자체가 다 파괴되고 진멸되었다. 실형 인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모형은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둘째로 제사에는 재물이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흠 없고 점 없는 깨끗한 어린 양이나 염소를 속죄 제물로 바치도록 하셨다. 죄인들은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자기의 죄를 고백하여 죄를 그 짐승에게 전가했다 (transfer). 전가라는 말은 옮기다, 덮어 씌우다는 의미이다. 나의 죄를 그 양에게 덮어씌우고 양을 잡았다. 그리하여 나의 죄를 뒤집어 쓴 그의 양이 나를 대신하여 죽음으로 나의 죄 값을 치르게 한 것이다. 속죄가 이루어 진 것이다. 재물은 양과 염소를 드렸고, 곡식도 드렸다. 죄와 관련된 제사에는 반드시 짐승의 피가 필요했고, 곡식 제사는 화목제나 감사제에 쓰였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은 새 아담, 그리스도로 지칭하는 하나님의 종이 우리 죄인들을 위한 속죄물로 자신을 드리는 대속 사역과 그 의미를 적나나하게 묘사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친히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자기 목숨을 많은 이들을 위한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왔다.”(막 10:45)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예수께서는 식사 후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마시라고 권하셨다. “또 잔을 들고 감사기도 하신 후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 모두 이것을 마셔라. 이것은 죄 용서를 얻도록 많을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마 26:27-28; 막 14:24).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주시는 포도주가 “언약의 피”라는 것이니다. 이 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의 죄가 용서함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언약적 연대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속죄의 원리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피는 언약의 피가 되는 것이며, 이 최후의 만찬은 새 언약의 언약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담과 그의 언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위한 대속 제물이었던 것ㅇ다.
셋째는 제사장이 필요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아무나 나갈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선택한 자를 일정한 의식 절차를 통하여 제사장으로 세우시고 그가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고, 그와 교통하셨다. 제사장은 모세의 형, 아론과 그의 자식들이 맡았다. 그러나 아무리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지성소나 언약궤를 다루었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씩 속죄양을 선택하여 그 머리에 백성의 죄를 고백하여 그들의 죄를 양에게 전가시키고, 그 양을 잡아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의 죄를 대신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이같은 대제사장의 제사에 대하여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짓지 않은, 곧 창조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완전한 장막에 들어가셨다. 그분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로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히 9:11-12)
그리하여 새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신이 성전이시고, 속죄물이시고, 또한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구약시대의 제사제도에는 한 사람이 이러한 성전과 제물과 제사장이라는 세 역할을 다 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새 아담, 그리스도는 이 세 가지 역할을 다 완벽하게 행하신 것이다. 새 아담은 제사장 레위 가문에 속한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히브리서는 새 아담, 그리스도를 영원한 멜기세댁의 계얄을 따른 제사장이라고 가르친다(히 5:5-6). 여기서 멜기세댁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영원한 제사장이고 가르친다.
“이 멜기세댁은 살렘 왕이며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축복한 자이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렸으니, 그의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고, 다음으로 살렘 왕, 즉 평강의     왕이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으며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히 7:1-3)
새 아담, 그리스도의 제사장 되심은 아담의 모든 죄 값을 치러 영원한 속죄를 이루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평안한 관계, 곧 영원하고 거룩한 교제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우리 성도들은 옛 아담, 옛 언약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제 새 아담, 새 언약에 속한 사람이다.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사람들이 되었다. 새 아담, 그리스도 예수님의 언약적 연대성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 또한 우리는 성령이신 예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께서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4:16). 성전되신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시며,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셨는데 예수께서는 우리 안에 그의 성전을 지으시고 우리에 안에 거하시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복음서, 특히 요한은 “우리가 그 안에, 그가 우리 안에”거하라는 명령을 계속 반복하여 말씀하신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그릴 합당한 예배라고 하였다(롬 12:1). 베드로는 “너희고 산돌같이 영적인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인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라”(벧전 2:5). 또한 2:8 절에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고 왕같은 제사징들이고, 거룩한 나라이고, 그분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그 분의 놀라운 빛에 들어게 하신 분의 덕을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바로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제사장이고, 제물이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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