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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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야에서의 천국잔치가 끝나고 예수께 더 이상 기대할 것을 없음을 알게 된 무리가 다 물러간 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가려느냐?”고 물었을 때, 베드로는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주님은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는 주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알았습니다.”(요 6:68-69)라고 대답한다. 요한복음 6장의 71절이나 되는 긴 성경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한 말씀이 바로 베드로의 예수님께 대한 대답이자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 예수께서 주신 식사를 마친 이들은 이미 자리를 뜬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 예수께서는 힘들게 그를 찾아온 이 무리를 향하여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을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고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26)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이 무리들이 표적을 보고 왔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빵을 먹은 것이 무엇에 대한 표적인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천지 창조의 하나님이시오,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 곧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표적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온 목적이 육신의 빵보다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찾아 왔어야 옳다. 그러나 그들은 빵을 먹고 배가 불러서 온 것이다. 말하자면 빵을 기대하고 수고하여 찾아 온 것이다. 예수께서 이들에게 하신 말씀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는 것이었다. 본문은 바로 영생에 이르는 양식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다.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 말씀의 Key Word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살리신다는 것이고, 살려서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40절에 보면 “내 아버지의 뜻이 과연 이것이니,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거꾸로 말하면 현재 모든 인간은 죽어 있고, 또한 영원히 살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33).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들을 살리고, 영생을 주어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겠다는 것이다 (44).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완전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56).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이 지금은 비록 그의 육신은 살아 있지만 영혼은 죽어 있어서 영원한 생명이 없는 존재이나 하나님께서 우리 죽은 인간들을 살려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신비하고 온전한 관계를 살리고 회복하고자 하시는 것이다(15:4-5; 21-22). 그래서 “생명” “영생‘이라는 말이 계속 거듭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이루시는가? 그의 아들을 하나님의 빵, 곧 생명의 빵으로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이것이니, 그분께서 내게 주신 자 가운데서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것이다.”(39)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육신과 영혼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다. 따라서 사람이 살려면 육신의 양식도 먹어야 하고, 영혼의 양식도 먹어야 한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죽음의 열매를 따먹었다. 그리하여 그 영혼이 생명을 잃고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사탄이 준 죽음의 열매를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빵” 곧 생명의 양식을 먹이시려고 그의 야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본문에 예수께서는 이 하나님의 빵을 다양한 언어로 지칭하신다.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는 양식”(27), “참 빵”(32), “하나님의 빵”(33, 48), “생명의 빵(36), ”하늘에서 내려온 빵“(41, 50, 58) 등으로 일컬으신다. 이 하나님의 양식은 사람이 영생에 이르도록 남게 할 것이다(27). 세상에 생명을 줄 것이다(33). 굶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게 할 것이다(35). 먹는 자는 죽지 않는다(40). 영원히 살 것이다(51, 58). 먹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 것이다(54) 등으로 칭한다.
그렇다면 이 하늘의 빵을 어떻게 사람들은 구할 수 있을까? 유대인들의 생각은 간단하다. 그들은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을 하던 때에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여주었던 모세를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만일에 예수께서 그들의 왕이 된다면 그들에게 유익되는 일에 대한 갖가지 상상을 했을 것이다. 우선 그들이 이미 체험한 바와 같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일하지 않고도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숨바꼭질을 하듯이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다. 이러한 무리들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여라.”(27)고 말씀하신다. 헬라어 성경에는 “썩는 양식”이라는 표현보다는 “την βρω~σιν τη`ν α’πολλυμε、νην”이라는 말은 다음에 이어지는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있는 양식”이라는 대구로서 “없어지다”(perish) 혹은 “사라지다”(disappear)는 의미로 “없어질 양식” 곧 영생하지 못하고 잠간 있다가 사라지게 하는 양식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말씀을 음미해보면 분명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양식이 있다. 썩어 없어질 육신의 양식이 있고, 영생하도록 남아 있을 영혼의 양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를 잡아 왕을 삼으려는 이 무리들은 분명 썩을 육신의 양식을 구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을 구하기 위하여 이렇게 머리를 쓰고 뛰어다니며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육신의 양식 이외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 영생하게 하는 양식을 구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40년 동안이나 만나를 먹이신 목적에 대하여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신 8:3)고 말씀하신다. 예수님도 그가 복음사역을 시작하실 때, 40일간을 금식하신 그에게 돌덩이로 빵을 만들라고 유혹했을 때, 바로 이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다(마 4:4). 성경은 육신의 양식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영생의 양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추구하며 일하는 목적이 오로지 육신의 양식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영생에 이르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대답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8)라고 묻는다. 영혼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고 대답하셨다. 계속하여 무리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을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모세는 자기 조상들에게 빵을 주어 먹게 하였으니 예수님도 모세처럼 자기들에게 빵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그의 조상들에게 빵을 주신 분이 모세가 아니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 빵을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이시다.”(32)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계속하여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33)라고 말씀하신다. 그의 조상들이 먹었던 빵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자신이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가 주시고자 하는 빵은 땅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며, 먹고 없어질 것이 아니고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무리들은 “주님, 이 빵을 항상 저희에게 주소서”라고 청하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때에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니, 내게 오는 사람은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며, 또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빵이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가? 또한 예수님이 자신이 하늘로부터 왔다고 밀하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하여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무슨 일인가? 이 유대인들은 이해가 안 되는 어쩌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불경스러운 말이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내가 곧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니,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다.”(51)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는 데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다”(53)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은 그의 살이 참된 양식이며, 그의 피가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신다. 나아가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56)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들은 무리들은 다 떠나버렸다.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 정말 그의 살과 피를 먹으라는 말씀으로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요한복음 1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엇고, 그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그가 하나님이시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하늘의 빵을 달라고 하는 자들에게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말씀은 바로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 예수님의 육신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말씀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먹으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인해서 사는 것 같이 나를 믿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해서 살 것이다.”(57)고 말씀하신다.
결국 생명의 빵, 하나님의 빵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사람들은 육신의 빵을 먹기 위해서 땀 흘려 일하는 것처럼, 영혼의 양식을 위하여 땀 흘리고 일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일에 땀을 흘려야 한다. 생명의 양식을 먹고, 마실 때 우리 신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고 영생하는 것이다. 말씀만이 썩지 않을 참 양식이요 사람을 살리는 영생의 양식이다. 예수께서는 다시 말씀하신다.
“살리는 것은 영이고, 육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고 생명이다.”(63). 베드로는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시는 일에 동참하여 예수님의 일을 같이 한 사람이다. 그러나 오병이어나 조상들이 먹었던 광야의 만나가 결코 영생의 양식이 아님을 알았다. 반면에 예수님의 말씀이 영생의 양식임을 알았으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알았다고 했다. 알고 믿은 것이 아니라 믿고 알았다고 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믿기에는 예수께서 너무 크고 깊고 높고 넓으신 분이라 우리 일생을 다 쏟아 부어도 예수님을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먼저 믿으면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예수께서 세상에서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양식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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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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