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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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추수감사절이다. 농사짓고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께 드리고 감사하는 날이다. 우리 인생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햇볕과 비를 주시고, 모든 농작물이 자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다. 농사 안 짓는 사람도 그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감사해야 한다. 아무리 돈이 많고 금은보화를 쌓아 놓아도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내리지 않으시면 이런 보화는 다 무용지물이다. 한국 사람들은 매년 수 없이 많은 농산물을 외국에서 수입해 먹는다. 수입해서라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며, 영혼의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많이 하지만 추수감사절에는 특별히 우리에게 이 몸을 주시고, 이 몸을 위한 육신의 양식을 주시며, 우리의 몸을 항상 돌보시고,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며 살게 하신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하는 축제이다. 오늘 성경 본문은 “여호와께 감사하여라. 그 분은 선하시며 그분의 인애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말하며,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하라는 권면의 제창으로 이어진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이스라엘의 구원, 그리고 모든 육체에게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이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생명을 죽이는 것은 악이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선이라는 것이 일관된 성경의 가르침이다. 또한 인자란 하나님의 변함없는 꾸준한 사랑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인간은 변하고, 배반하고, 뒤돌아서지만 하나님은 그의 사랑이 변함없으시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목숨을 내놓고 맹세하고 언약을 맺어도 뒤 돌아서면 마음이 변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다. 중간에 그만 두는 것이 없다. 한번 사랑하면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굴곡이 없다. 사랑의 강도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고, 더 높아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했다가 미워했다가 오락가락하는 사랑이 아니다. 꾸준히 변함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상대방의 상태에 따라 그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좌우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멀리 할수록 더 적극적이고 더 진실되게 다가가는 사랑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해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그들을 기다리시고, 더 가까이 다가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은 “헤세드”라는 말로 표현했다. 잠시 후면 유다가 자신을 배반하여 팔 줄을  줄 뻔히 아시지만 예수께서는 그의 살을 떼어 그의 입에 넣어주시는 사랑,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바로 “헤세드”이다. 십자가를 지기 전 자기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찾아가 생선을 구워 조반을 먹이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인애,” 곧 “헤세드”이다.
추수감사절이 우리의 영혼의 구원을 감사하는 절기라기보다는 우리 육신의 필요을 충만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사랑을 특별히 감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보다 먼자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시고, 오늘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죽음의 지뢰밭이다. 한번 헛발을 디뎠다가는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멸망의 구덩이가 여기저기 수없이 널려 있다. 시편 57:4에 보면 “이 생명이 사자들 가운데 있으며, 사람이 불사르는 자 중에 내가 누웠으니, 그들의 이는 창과 살이고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다.”고 말한다. 우리의 인생은 높이 달린 외줄을 타는 곡예사 같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눈먼 강아지와 같은 것이 인생이다. 날이면 날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비참하게 죽은 인생들을 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도 기적이지만 그가 희생자라는 것도 기적이다. 왜 하필이면 너였냐?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내 생명을 지켜 주시지 않으면 내가 존재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내가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의 주 되신 하나님께서 나의 발걸음을 지켜 주시고, 오늘도 생명을 누리고 살게 해주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직도 이 생명을 거두지 않으시고 붙여주셔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을 보고 즐기며 살고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한 말처럼 우리를 그의 “생명 보자기”에 싸서 보호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삼상 25:29).
둘째로 우리는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먹어야 산다. 히나님께서는 우리가 먹어야 살도록 만드셨다. 그래서 사람은 먹기 위해서 일하고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사람은 영의 양식도 먹어야 하고, 육의 양식도 먹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분리할 수 없다. 분리하는 날에는 죽는 날이다. 그러나 추수 감사절은 우리에게 육신의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산상 수훈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면서 걱정하지 마라”고 가르치시고 어디에 누울 것인가 걱정하디 마라(마 6:25-31)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보다 더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공급해주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와 같으신 하나님의 이 사랑을 감사해야 한다. 나와 같은 쓸모없는 인간에게도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잠자리를 주신 하나님을 우리는 매일 기본적으로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할 것이 아니고 이미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계속 주실 것을 바라고 간구해야 한다.
셋째는 유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유업은 자식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신을 만드시고 가정을 주셨다. 그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복을 주셨다. 자식을 낳고 기르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보통 자식을 육신의 열매라고 말한다. 사람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한다. 그것이 인생을 사는 열매이다. 자식은 이 한 몸이 이 땅에서 살고 간 흔적이고 남길 유산이다. 그래서 자식을 얻는 것이 모든 인생이 이 땅에 와서 사는 도리이다. 자식을 갖더라도 많이 가지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시편 127편은 자식들을 전통의 화살에 비유하며, 전통에 화살이 가득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한다.
자식들은 여호와의 주신 유업이라고 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물려주신 유산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우리의 이 모든 육신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 우리는 이것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는 것이다. 태의 열매는 하나님의 상급이라고 했는데, 상급이라고 번역하는 히브리어 “샤칼”이라는 말은 “상급” 이나 “보상”이라는 말도 있지만 “임금”(wage) 혹은 “삯”이라는 말도 있다. 자식은 다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생명이다.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태속에 그의 생명의 씨를 심으시고, 그 생명을 자라게 하시며, 그 생명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낳고 기르라고 맡기셨다. 그래서 우리가 자식을 낳고 기르는 가운데  수고하고  땀 흘려 양육한 그 대가로 하나님께서 그 자식을 우리에게 보상, 상급, 혹은 임금으로 주셨다는 것이다.  그들은 장성했을 때 성문에서 힘있는 목소리를 낼 것이고, 전쟁에 나가서도 용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용사의 화살통에 담긴 화살로 비유하고 있다. 그 화살은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추수 감사절은 특별히 우리에게 생명과 양식과 자식을 주신 하나님, 다시 말하면 영혼 보다는 육신의 필요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햇볕과 비를 주시어 먹고 마실 것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가정을 세워 자식을 낳아 유업을 남길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이것을 기본적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가 없는 인간은 병든 인간이다. 할 수 있다면 뭐든지 감사합해야 한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부모님께 감사하고, 자식들에게 감사하고,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 온통 감사가 넘치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감사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감사할 수 없는 것을 감사하고,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는 것이 감사이다. 우리에게는 감사할 대상이 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인애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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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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