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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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머스 모어(Thomas More,1478-1535)하면 <유토피아>의 작가이고 에라스무스의 친구로 기억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영화 <천일의 앤>에 등장하는 조역으로 기억하는 이도 있을 터. 사무엘 존슨 (Samuel Johnson,1709-1784)은 그를 일러 “지금까지 영국이 낳은 가장 고결한 인물”이라 했다는데.
법관의 아들로 태어난 모어는 아버지의 소원을 따라 자신도 법관이 된다. 명철한 두뇌와 인간적 매력이 두루 요직을 거치게 한다. 1529년 대법관에 임명되는데, 귀족도 성직자도 아닌 평민으로서는 최초의 일. 에라스무스의 친구답게 <유토피아> 와 <리처드 3세의 생애>를 저술하기도. 1504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모어를 두고, 에라스무스가 말했다. “그의 두뇌가 세속적 야심에 좌우되지 않으면 좋을 터인데”
모어는 국왕 헨리 8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홉 살 난 국왕이 모어를 만나자 곧 친구로 사귄 것이다. 자주 케더린 왕비와 세 사람이 식탁을 둘러앉는 가하면, 왕이 몸소 첼시에 있는 모어의 집에 들러서는 밤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들판을 거닐며 서로 찬사를 주고받는 모습은 영화들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 그러니까 1529년 왕이 그를 대법관에 임명했을 때에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지 않는가. 바른 소리꾼 에라스무스 조차 “나는 마음으로 영국에 축복의 말을 보낸다. 그 보다 더 덕이 있는 재판관이 임명된 적은 없었을 터니까”했다나.  
그럼에도 그가 대법관이 된 후에, 자그마치 여덟 사람이 이단자로 처형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사가들의 말을 따르면 전임자 시절에는 단 한 사람도 이단자로 처형되는 일은 없었다지 않는가. 오늘의 의식으로 판단할 수만은 없는 사정이 있다면서 변명하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은 아니다. 모어라 할지라도 완벽한 인간일 수는 없었으리라는 동정론에 멈출 수밖에.
헨리 8세가 왕비와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하겠다고 의회에 떼를 쓸 때, 모어는 왕위계승권이 국왕이 바라는 대로 받아들여지도록 의회가 법을 개정하는 데는 찬성하지만, 국왕이 로마교황의 최고 권위를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은 물리쳤다. 오늘날이라면 논의의 대상도 되지 못할 치졸한 의안이지만 모어에 겐 중요한 양심의 문제였다. 아마도 화가 난 불린이 국왕을 꼬드겼을 터이지만, 아무튼 1532년에 헨리 8세는 모어를 대법관 직에서 물러나게 했고, 1534년에는 런던탑에 감금, 이듬해에 처형했다.  
다들 말하고 있는 모어의 고결한 인격은 그의 생애 마지막 두 해, 특히 최후의 순간에서야 온전하게 영근다. 인간은 스스로 도덕적 결단을 할 수 있고 양심의 명령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모아적인 인간상이 그의 언동에서 배어난 것이리라. 그의 결단은 공리적이거나 정치적이지 않았다. 자신의 결단을 따라 자신의 의지를 통제하지만, 압력에 손상되는 일 없이, 자신과의 조화를 유지하여 온전한 통합을 이룬 것이다.
습기 찬 감방은 을씨년스럽고 추웠다. 들락거리는 쥐들이 그를 몸서리치게 했다. 그러나 자신의 결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라는 충고는 정중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거절한다. 서책과 필기구조차 빼앗기고, 아내에게는 종잇조각에다 숯 조각으로 편지를 쓴다. 창문을 닫아걸어 나날을 어둠속에서 보냈다. 그러나 모어는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여 간수들에 대해서도 부드럽게 위트로 대할지언정 증오나 노여움을 쌓는 일은 없었다. 아내와 가족을 불행으로 몰았다는 사실은 문책 받아야할 지도 모르지만.
1535년 7월 6일 처형의 날, 왕은, 귀족의 긍지를 위해, 교수형 대신 참수형을 인정한다. 처형대 계단 앞까지 걸어간 모어가 형리들에게 말한다. “단상까지 만은 무사히 올라가게 안내 해주지 않겠소? 내려 올 때는 혼자 내려 올 터인즉” 달리 유례를 찾을 수 없을 형장에서의 모아. 1935년에는 성인으로 추앙받게 된다.   
정치가로서 두드러진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 왜? 색다른 자료를 소개하지도 새로운 해석을 내어 놓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진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바로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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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모어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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