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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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시대를 보면 산업발전으로 인한 급속한 발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신문화의 성숙은 현저하게 거기에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회 병리 현상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특히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적 사고의 팽배로 인하여 이사회는 한층 더 인정이 사라진 황폐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은밀하게 베푸는 자들이 있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연세 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김형석님의 인생의 이야기이다. 그는 30대 중반에 연세대학교에 부임했으나 항상 경제생활에 쪼들렸다고 한다. 학교 교육을 받아야 할 아이들 여섯과 여기에 6.25 전쟁 때 북에서 온 모친과 세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 전에 준비했던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전세방도 구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그의 내외는 수입에 전념해야 했다. 두세 군데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서기도 했다. 그가 그의 아내에게 두 곳에서 강연 부탁이 왔는데 어디로 갈까 라고 물으면 그의 아내는 으레 돈 많이 주는 곳을 선택하라고 했고 그도 그랬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긴 세월을 살았다. 한번은 주초에 대구에서 손님이 왔다. 1년에 한 번 있는 중고등학교 교사수련회가 있는데 600~700명의 교사들을 위해 강연을 해달라는 청이었다. 그는 연세대학교 출신의 교감 선생이었다. 그는 토요일 오후에는 삼성그룹을 위한 선약이 있어 못가겠다고 거절했다. 그 당시에 대구 왕복은 온종일 걸리는 일이었고, 사례금은 삼성보다 적었다. 교통 차편을 제공해주는 삼성을 택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거절을 들은 제자는 할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야 되겠다는 충격적인 실망에 빠진 것 같았다. 어떤 죄책감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같은 교육계에 있으면서 대구의 교장회의 결정을 너무 무책임하게 거절한 것 같았다. 그래서 삼성의 양해를 얻고 대구에 다녀왔다. 그렇게 대구에서 돌아온 토요일 저녁에 그는 그의 인생의 커다란 변화를 약속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어리석은 인생관을 극복하고 보람 있는 일을 위해 사는 인생을 찾아 누리자는 결심이었다. 돈을 위해 일생을 다 보내면 내 인생을 어떻게 되겠는가? 보람 있는 일을 하면 돈은 뒤따를 것이라는 신념을 갖기로 했다. 그 선택은 옳았다. 일을 사랑하고 일의 가치를 따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사는 보람을 발견했고, 수입이 늘어나는 것도 체험할 수 있었다. 인생관과 가치관의 차원이 한 단계 높아진 것이다.
그렇게 몇 십년을 살면서 여든을 넘긴 연세가 되었다. 자녀들도 제 살림을 꾸려가고 그는 계속된 일의 대가로 노후에도 변함없이 자립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그도 모르게 경제관의 변화가 일어났다. 일의 대가로 생긴 수입으로 검소한 생활을 하고 여유가 생기거나 그외 주어진 수입이 있으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과 사람을 위해 크게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돈을 쓰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쓰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거액의 돈을 사회에 베풀기도 하는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을 위해 내 돈을 쓰면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주면서 사는 사람이 받으면서 사는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경험을 하는 삶은 누군가에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데. 그 감사의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라고 했다.  
이처럼 남을 은밀하게 돕고 봉사하는 김 교수님은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였다. 이에 소시 때부터 죽음에 관한 생각과 걱정을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크리스마스 때 기독교에 문을 두드렸는데 절망적인 건강 상황이 원인이었다. 같은 해 숭실전문학교에서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신앙부흥회(장로교 윤인구 목사, 감리교 김창준 목사)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때 처음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건강을 허락해 주시면 저는 건강이 계속되는 동안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아버지께서 맡겨주시는 일을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약속의 기도를 드렸는데 그 철없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기억해 주셨다고 한다. 그 후 일본 조치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연세대 철학과 교수, 시카고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연구 교수를 역임했다. 1960~70년대에는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예수 어떻게 믿을 것인가’ ‘백년을 살다보니’ 등을 집필하였고 방송과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김형석 교수처럼 돈과 경제 문제에 있어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한다. 돈보다 귀한 것은 형제 사랑이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기 때문이다(행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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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멋진 인생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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