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행복론 - 101
2019/04/05 11:43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영적 체험
1.jpg
신앙의 개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영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을 영적으로 만날 수가 있다. 주님은 성인이나 유명 성직자에게만 임재하시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병자에게도, 소외된 자에게도 찾아오신다. 평범한 자에게도 찾아오신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23:10)
빛나고 뾰족한 화살이 나오기 위해서는 철광석을 불에 녹이고, 단단한 흙으로 된 틀에 넣어 모양을 만들고, 쇠망치로 수백 차례 두들기고, 페이퍼로 연마하고, 기름을 묻혀 헝겊으로 닦는 등의 과정을 거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쇠는 단단해지고 그 기능에 걸맞는 형태로 단련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을 훈련시키실 때에도 이와 같은 연단의 과정을 거치게 하셨다. 주님은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내보내시며 복음을 전파하는 실무를 겪게 하셨고, 기도와 사랑의 본을 보이셨으며, 몸소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통을 당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16: 24), 여기서 “자기 십자가”가 고난당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십자가에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연단의 과정도 포함된다. 바울도 여러 번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죽을 고비를 맞았지만, 그 과정을 잘 견디어냈다. 그가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가는 과정도 연단의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큰 고비 중의 하나는 배를 타고 가던 중 유라굴로 광풍을 맞은 것이었다.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다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사도행전』27: 14-19). 필자는 이 구절에서 사공들이 배 안의 짐과 기구들을 바다에 버리는 행위에 주목하였다. 배를 가볍게 해야 배 안으로 들어오는 물의 무게를 줄여 배가 가라앉지 않을 거라는 이치 같은데, 사람도 욕심을 비울 때 영적으로 건강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한때 대학 정교수의 꿈을 꾸고 수천 권의 책을 사 모으고 지식을 쌓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독자들로부터의 인기를 얻기 위하여 성에 관한 책들도 틈틈이 읽어나갔다. 그러나 그러한 명예욕이나 욕심은 ‘유라굴로 광풍’을 맞은 뒤 비우게 되었다. 책도 약 2500여 권을 도서관에 기증하거나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서가가 정리되면서 내가 쌓아야 할 인간미가 무엇인가를 모색하게 되었다. 욕심을 비우니 새로운 영감이 새벽마다 차올랐다. 그것은 나에게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즐거운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마음을 비우고 영적인 양식을 채우는 데 골몰하게 된 것은 유라굴로 광풍을 견뎌내고 터득한 연단의 이치였다. 나는 이러한 이치를 주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요, 영적 체험이라고 믿는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 체험을 담대하게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복음이 증거되는 기회가 되었다. 바울은 대제사장 아나니아 앞에서도, 벨릭스 총독 앞에서도,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자신에게 일어난 영적 체험을 담대히 증거하였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있던 공회에서도 부활을 말하여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사도행전』23:7)길 정도였다. 바리새인들은 평소에 부활과 천사와 영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사두개인은 그것이 없다 하였던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시고 부활하심과 성령이 오심과 다시 오실 것을 증거하여야 했는데,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이를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유대교 대표와 군주와 총독 앞에서 담대히 말할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사도행전』23: 3)라는 예언대로 A.D. 66년에 민란의 와중에서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도적들의 손에 의해 죽고 만다. 주님은 바울을 연단시켜 죄수의 신분으로 당시의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을 상대하게 하신 것이다.
기독교는 고난과 박해를 당하면서도 주님이 연단시킨 종들을 통하여 변화해 왔다. 유대교인들을 상대하면서 기독교 교리를 확립하였고,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하였으며, 부패한 카톨릭과 대립하여 종교 개혁이 일어났고, 남녀간·인종간 갈등도 청교도 정신과 함께 극복되었다. 그것은 영적 체험을 가진 수많은 주님의 종들을 통한 변화요, 개혁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지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님이 어떻게 임재하시는가를 주지하는 것이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pnnews@empas.com
교회연합신문(www.ecumenicalpress.co.kr) -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  발행인 : 강춘오  |  설립일:1991년 11월 16일
    | 사업자:206-19-64905  | 03127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16길 73-10  |  대표전화 : 02-747-1490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All right reserved.
    교회연합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