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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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오직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역사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자를 아내로 삼자 모세의 형과 여동생이 모세를 비난하며 하는 말이다. 이들의 비난은 단순한 가족간의 문제가 이상의 깊은 신학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후 220여일이 지난 후 비로소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백성들이 만나만 먹으니 기력이 약해졌다고 울면서, 이집트에서 값없이 먹던 각종 생선과 채소를 생각하고, 고기를 달라고 울었다. 그들은 400년 동안의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된 감격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이 이들에게는 사라졌다. 이들에게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당장 배가 고파 죽을 지경도 아니고 다만 보양식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다. 과거의 노예생활을 그리워하며 입맛을 다시고 울며 있는 것이다. 이들은 노예의 근성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었지만 그들의 정신상태는 여전히 노예나 다름없었다. 이들이 이대로 가나안에 들어간다면 젖과 꿀에 파묻히고 원수들에게 사로잡혀 다시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적나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일후 바로 가나안 정탐 사건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에게는 철저한 자유민으로서의 정신 교육과 신앙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민 13-14). 그러나 모세는 더 이상 이들을 혼자 지도할 수 없다고 하나님께 지도자로서의 사임을 목숨을 걸고 요청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70인의 장로들에게 모세에게 주셨던 그의 영을 모세에게도 주셔서 선지자로 세워 모세를 돕도록 하셨다. 그리고 모든 그의 백성들이 선지자가 되기를 바라는 소원을 모세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다(민 11:24-30).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선포하며, 해석하고, 가르치며 훈련시키는 자이다. 이스라엘이 60만이며, 이들에게는 이미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이십부장, 그리고 십부장의 조직이 있기 때문에 70명의 천부장을 선지자로 세우면 70만명은 아주 일사분란하게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광야훈련을 위한 조직이 정비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에 아론과 미리암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들도 선지자적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선지자로서 모세를 책망한 것이다. 영적 위계질서가 붕궤되는 위기를 만난 것이다. 모세는 황당했겠지만 그는 지면의 모든 어떤 사람보다 더 온유하였다고 했다. 이 말을 거꾸로 이해하면 이들이야 말로 지면에 어떤 사람들보다 더 교만한 사람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모세는 이들의 망동을 잘 참았고,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미리암을 회막으로 불러 그들이 모세와 어떻게 다른 가를 설명해주셨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모세 이외의 선지자의 존재를 인정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본론을 말씀하시기 전에 이들에게 그의 말씀을 잘 들으라고 주의 말씀을 주신다. 그의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이다. “만일에 너희 가운데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으면...”이라는 전제로 말씀하신다. 마치 이스라엘 가운데 선지자가 스스로 나타날 수 있음을 가정하는 말이다. 그러나 자칭 선지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여호와의 선지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여호와께서 세우셔서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선지자는 언제, 어디서나 있을 수 있다. 이 말은 민 11:29의 모세의 말과 맥이 통하는 말씀이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에게 환상으로 나를 알리기도 하고, 내가 꿈으로 그에게 말하기도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계시의 수단으로 환상, 곧 비전(vision)과  꿈을 인정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주신 계시와 이 선지자에게 주신 환상과 꿈을 비교하시며 모세에게 주신 계시는 “명백하다” “은밀하다”는 어휘를 쓰시는 것을 보면, 선지자들의 환상이나 꿈이라는 것이 명백하지 못하고 모호하여 그 깊은 뜻을 확실하게 알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은밀하다”는 말은 히브리어 “히다”()라는 말로 “수수께끼 같은”(riddel) 혹은 “모호하다”(ambigious)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환상과 꿈의 계시로서의한계성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다르다는 것이다. 첫째로 모세는 그 성품이 온유할 뿐만 아니라 충성스럽다는 것이다(민 12:3,7). 모세의 충성심은 아론과 미리암처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대적하며 오락가락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온 집에” 충성된 자라는 것이다. 여기서 집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모든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충성스럽다는 말은 “신실하다”(faithful), 혹은 “믿을만하다”(trustworthy)는 의미이다. 모세를 가리켜 하나님께서는 “내 종 모세”라고 칭하시는 데, 이는 성경에서 아브라함, 갈렙(민 14:24), 이사야 (사 42-53) 등 극히 제한된, 특별한 자에게 붙여진 영광스러운 명칭이다. 따라서 본성적으로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아론과 미리암과는 근본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입과 입을 마주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입과 입을 마주하여 말했다는 것은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가 얼마나 인격적이고 서로 깊은 마음 속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밀한 관계인가를 보여주는 말이다. 전에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보여 달라고 간청하는 모세에게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는 살 자가 없다고 대답하셨다(출 33:20). 그러나 출 33:11에는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이 여호와께서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했다. 본문에서는 이 모세를 “여호와의 형상을 보는 자”라고 말씀하신다(민 12:8). 현재형이다. 과거에 하나님의 형상을 봤다가 아니라 현재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명기 34:10에서는 여호와께서 열굴을 마주하여 그를 아셨다고 했다. 인간들 사이에 가장 가까운 관계를 표현하는 어휘 “안다”(야다, )를 쓰고 있다. 모세와 하나님 사이가 부부 이상의  친밀성이 있음을 드러내는 말이다. 이러한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고, 입과 입을 마주하여 말씀하신다고 하신다.
셋째는 하나님과 모세와의 관계가 이처럼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명백하게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셨다는 것이다. “은밀하다”고 번역하고 있는 히브리어 “히다”()라는 말은 “수수께끼”(riddle)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여 마치 구름 속을 헤매며 수수께끼를 풀 듯이 의문과 논란의 여지를 남기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선지자라고 할지라도 모세는 아론과 미리암과 같은 사람들과 그 근본이 다르다. 이들은 모세가 대언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충실하게 전하고 가르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너희가 왜 내 종 모세 비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며 이들의 방자함을 책망하시고, 결국은 미리암에게 문둥병을 발하게 하여 진 밖에 가두고 그가 낫기까지 온 회중이 가나안으로의 진군을 멈쳤다. 하나님께서 엄벌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동역자로 70명의 장로들에게 모세에게 주셨던 똑 같은 성령을 주셔서 예언하는 선지자로 세우셔서, 과거도 잊고, 미래의 소망도 버린 채 오로지 고기가 먹고 싶어서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추억하고 흠모하고 울고 있는 이 백성들의 정신 상태를 고치려고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와 같을 수는 없다. 이들이 모세를 비난하는 것은 자기들도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모세 앞에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선지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 꿈을 구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하지 못하여, 정확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정경론에 대한 해답을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택하여 함께 생활하며, 특별한 훈련을 시키셨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신 후, 그들을 새 언약의 선지자로 세우시며 그가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고 명하셨다. 그런데 오순절에는 성령이 사도들에게만 내리신 것이 아니다. 사도들과 함께 있었던 다른 제자들도 있었다. 이들도 사도들과 같이 예언하며선지자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제자들은 다 선지자이다. 그렇다고 마치 아론과 미리암이 같은 선지자라고 할지라도 모세와는 엄격히 구별이 되듯이,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이 다 사도와 같을 수는 없다. 사도들이 전하는고 남긴 말씀만이 성경아고, 정경이 되어야 할 이유이다. 물론 사도가 아닌 사람도 성경 저자가 있지만 그들도 예수님 생시에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과 얼굴과 얼굴, 입과 입을 마주했으며, 예수님의 형상을 본 특별한 자들이다.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스라엘의 70명의 장로들과 같은 선지자적 직분과 사명을 가진 사람들로서 하나님께서 환상이나 꿈으로 보여주신 계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하지도 않고 은밀한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받은 계시는 성경을 통한 간접적인 계시로서 분명히 사도들이 받은 말씀과는 엄격하게 구별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세나 사도들이 전해준 말씀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 분명하게 해석해주고, 지키도록 가르치는 일을 하면 된다. 우리는 하나님과 입과 입을 대면한 적도 없고, 예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며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그의 음성을 들어본 적도 없다. 이러한 자들이 사도들의 권위를 대항하며, 그들이 본 환상과 꿈을 통하여 희미하게 보고 들은 것을 성경적 계시와 동일시하고, 자신을 사도들과 동등되게 높이는 것은 무지하고 교만한 짓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에게 진노하시고 나병으로 치셨다. 미리암의 살이 반이나 썩어 모태에서 죽어 나온 자 같이 되었다고 했다(민 12:12). 비록 모세의 동생이라 할지라고 하나님께서는 엄격하게 다스리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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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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