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역사적 기독교는 부활절 이전 7주간의 매 주일날을 뺀 40일간을 사순절로 정하고 기도와 금식과 절제로 지켜왔다. 그리고 그 마지막 한 주간을 고난 주간으로 보낸다. 이는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명상하며 경건과 함께 결제로 그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기 위함이다.
어떤이들은 이것을 중세 가톨릭교회가 제정한 의식이라고 주장하며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역사를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부활절을 앞두고 경건과 절제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명상하는 일은 가톨릭교회가 확립되기 이전 초대교회에서부터 있어왔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으로 보고 가장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를 지나면서 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신비화 하여 그 의미를 왜곡하고 미신화 하는 바람에 종교개혁 시대에 그 중요성이 약화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 고난에 의해 탄생하였으므로 그 고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는다. 첫째,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비밀을 맡은 기관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아 흘린 “자기 피로 사신 것”(행 20:28)이고,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온 것이다. 또 창세기 2장의 첫 아담의 신부가 아담의 몸에서 나온 것으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온 물과 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지 아니한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교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이 교회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교회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현대교회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며, 또 우리가 이 시대의 삶 속에서 그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 주간은 하나의 통과의례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점검하는 기간으로 삼는 것이 고난 주간의 정신에 부합하는 일이다.
이번 고난주간도 온 교회가 그런 정신으로 맞아 세속에 물들지 않게 경건한 영성적 삶을 살아야겠다. 그래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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