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k-a.jpg
아일랜드의 극작가 겸 소설가 버나드쇼는 192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때 한림원은 이렇게 발표했다. ‘그의 작품에는 이상주의자와 인도주의 정신이 깃들어 있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독특한 풍자가 곳곳에 숨어 있다.’
깡마른 체구로 더욱 커 보이는 키, 도사같이 긴 턱수염,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멋진 지팡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정말 멋지다’는 감탄사를 불러내게 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번쩍이는 기지와 시원한 독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사다리에서 떨어진 후 후유증으로 94세의 일기를 마치면서 남긴 마지막 말은 ‘우물쭈물 하다가 내가 이럴 줄 알았다’였다. 이 말은 그의 묘비명에 새겨져 있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여운을 남기게 한다. 왜 그랬을까!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볼 수 있는 저명한 작가가 아니었던가?
그는 생존시 명예도 얻고 돈도 모았을 것이다. 하지만 임종을 맞이하여 그의 살아온 삶을 회고할 때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다 하지 못하고  마침내 그의 생의 마침표를 찍어야 했기에 후회가 되어서 이런 말을 남겼을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삶과 죽음’일 것이다. 젊었을 때는 어떻게 살 것인지,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영원히 이 세상을 살 것처럼 여유를 가지고 천년만년 이 세상에 살 것 같이 느긋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날마다 돈만을 찾고 있다. 미국 명문대 출신 800명을 조사한 결과 돈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우선시하는 사람들보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두 배나 더 높다고 하는 통계와 돈에 집착할 수록 경계심과 비교의식이 커지고 더 이기적이며 우울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기업합병으로 미국 월스트리트의 신화적 존재가 되었던 이반 보에스키는 세계 400대 부자 명단에 처음 올랐을 때 기쁘기는커녕 자신의 명단이 너무 아래쪽에 있어 몹시 우울했다고 한다. 전문 기업사냥꾼이었던 그는 결국 부정행위로 징역 20년의 판결을 받았는데 이는 돈에 사로잡힌 탐욕의 결과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생을 살면서 돈이 얼마나 많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하루를 살아가는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으면 족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가오지도 않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충족하기 위해 오늘이라는 인생의 귀한 시간을 보람된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버는데 허비하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런데 돈은 생계가 보장되는 단계만 지나면 행복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돈이 없어 한 끼의 밥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은 열심히 돈을 벌어야 더 이상 염려 근심을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제 필자는 ‘나와 너’ 만남의 철학자 부버의 다섯까지 제안을 소개한다. 첫째는 나폴레옹이 되지 말 것을 권한다. 나폴레옹은 모든 존재를 하나의 가치, 즉 나의 목적에 따라 계산하고 이용 대상으로 간주하는 인물을 상징한다. 목적 지향적 관계와 자기 자신마저도 ’그것‘으로 취급하는 인물의 상징이 나폴레옹 이다. 부버가 생각하기에 우리 모두가 작은 나폴레옹인 셈이다.
둘째로 소유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의 것, 나의 물건, 나의 창작물과 같은 소유 지향적인 태도는 너마져도 소유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자기 관점과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소유물에 대한 집착이 가져오는 갈등, 타자를 자기와 동일시 하여 고유의 ’너‘를 말살하는 것, 나의 것과 너의 것을 일상적으로 구분하는 것 등이 부버가 말하는 소유의 범주에 포함된다.
셋째는 제멋대로 살지 말라고 충고한다. 제멋대로 사는 사람은 외부 세계에 열광하고, 그것을 이용하는데 에너지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며 그런 이유로 진정한 만남을 갖지 못한다. 즉, 자기중심적인 사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 향락적인 사람, 자족형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너의 목소리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만남도 없다.
넷째는 지성이 아닌 정신으로 존재하라고 촉구한다. 부버는 지성을 목적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 자신의 관념을 만들고 자신의 성을 구축하는 부정적 능력, 자기감정의 놀이 속에서 사는 능력으로 파악한다. 이에 반해 정신은 지성을 넘어서 ‘너를 말하고 응답하는 능력’으로 상위의 개념이다. 우리가 내적 즐거움을 가지려면 지식이나 테크닉이 아니라 하나의 영혼이자 하나의 정신으로서 다른 영혼과 다른 정신을 만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대화와 공존으로서의 삶으로서 부버는 나-너의 이념에 기초한 소규모 생활 공동체를 제안했다. 이는 권력 질서에 의해 움직이는 공동체가 아니라 평등과 상호 헌신 및 연대가 실현된 사회이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우물쭈물 하다가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