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외할머니는 참 불쌍하신 분입니다. 아들이 없었으니 돌아가실 때 저의 아버지가 장례를 치러 드렸습니다. 그때는 가족이 교회를 안 다녔을 때니까 아버지가 묘를 만들어 드리고 묘 앞에 제사상을 차려드리고 절을 하던 기억이 납니다. 저 역시 그때는 교회를 안 다녔을 때니까요. 그런데 외할머니는 아들이 없으니까 딸들에게 제삿날도 기억되지 않고 잊혀 갔습니다.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서 저도 외할머니 장례를 치러드렸던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시간이 나면 외할머니 묘를 한 번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으며 꽃다발이라도 하나 들고 가서 헌화 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드는 것은 손녀딸을 지극히 보살피고 사랑하는 집사람의 모습이 옛날 저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외할머니의 모습으로 제 안에 반사되고 투영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외할머니의 사랑이 저의 무의식에 저장 되어서 이해심과 포용력도 있고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심성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는 외할머니의 사랑과 격려가 오늘날 저로 하여금 사랑과 섬김의 목회를 할 수 있게 되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요즘 저는 나이를 먹으면서 자꾸 옛날 일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물론 저는 어린 시절의 나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들을 끄집어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의 이러한 심리현상이 감정의 순화와 정서의 건강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심리학 용어 중에 ‘므두셀라 증후군’과 ‘희생자(순교자)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므두셀라 증후군은 과거의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기려는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아 인류 중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인데 그는 살면서 과거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들을 많이 떠올리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만을 떠올리려고 하는 그런 심리현상을 므두셀라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희생자 증후군은 자꾸 과거의 나쁜 기억만 떠올리며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심리를 말합니다. 왜 내가 이런 부모 밑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살고 고생만 했는가 하고, 항상 피해의식에 갇혀서 슬픈 생각만 하고 자기연민에 빠집니다. 그런데 무드셀라 증후군은 반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릴 지브란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추억이란 희망의 길에서 만나는 돌멩이와 같다. 추억이 있기에 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를 회상할 때 상처와 아픔이 아닌 사랑과 용서, 행복과 위로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러한 기억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쉼을 주는 안식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