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광장

최 경 호

광화문 광장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텅 빈 광장 빈 하늘로 비둘기 몇 마리
한 번도 중심으로 날아 본 적 없는 우리는
태극기 흔들고 촛불이나 들까
남은 건 몸둥이 하나 그마저 거부되는 시대
섹스저넬리언 혹은 세 번티즈*
인사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했습니다
당신과 난 쫓겨난 거리의 반려동물
사람 있는 광장에서 서정시라도 읊어보려 했는데
인사나 하고 가려도 사람이 없어
그냥 광장을 돌아 어디로 가야 했습니다
순전히 광장은 너희들 거리
너희들 이름으로 고발해라 퍼붓는 소나기
*sexagenarian or seventies, 60대 혹은 70대

시 한 편을 만난다. 짙은 암유(暗喩)를 뚫고 다가오는 전문의 무게감 있는 감동이 시를 읽는 이유를 알게된다. 난삽한 거리 혹은 혼잡한 인파를 등 돌리고 경쾌하게 우회로로 도착한 시원(始原)이다. 제목 광장이 주는 대중에게 익숙한 통속적 의미를 이미 던져버린 시에서 전달되는 미적 가치와 진실이 요란하지 않고 격조 높은 예술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광화문 광장은 시민의 마당, 광장은 늘 인파로 가득차고 함성과 깃발이  누구를 위하여 펄럭이고 있었는지, 소란스러워도 혼자다. 아이러니하게도 텅 비어있다. 누군가에게는 광화문은 거부되고 있음을 감지한다. 정숙(靜寂)이다. 다시 우회로로 돌아가야 하는 시인의 이름을 잃은 한 나그네 혹은 애지중지 애무하다 쫓겨난 거리의 반려동물이다. 컹컹 짖어도 울림이 없는 넓은 광장, 세 번티즈에게 눈길을 교감하는 일은 없다. 광장은 누구의 거리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바람이 어디로가 몇 백 바퀴 돌아들고 청계천이 한강을 흘러 돌아 회귀하는 날, 누군가의 유순한 신발과 섹스저넬리안의 백발과 푸른 깃발이 함열하게 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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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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