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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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저녁, 서울에서 중요한 약속이 있었는데 차가 막히지 않아 좀 일찍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잠시 남산을 찾았습니다. 남산에 들어서는 순간, 가을단풍의 절경에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지난 주 무등산 산행을 하지 못한 하나님의 보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남산 산행을 하는 사람들 모두도 가을 단풍 절경에 취해 있었습니다. 제가 이따금씩 남산에 올라가면 많은 사람이 저를 알아보는데 이번에는 두어 명만이 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주변 사람과 시선을 맞추지 않고 가을애상에 잠겨 가을절경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죠. 저 역시도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이쪽저쪽 무르익은 형형색색의 단풍을 바라보고 느끼며 걸었습니다. 곱게 익은 단풍의 모습이 문득 나뭇잎들의 열정과 눈물이 물든 핏방울의 결정체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버티다 못해 낙하하는 나뭇잎들은 마지막 아우성을 치며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잎새 속에 저의 얼굴이 보이는 듯 하였습니다. 아니, 저의 살아온 삶들이 그 단풍 잎새 속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성벽을 따라 남산 타워 쪽을 향해 계단을 올라가는데 왼쪽에 작은 갈대밭이 있었습니다. 지형적으로 보면 갈대밭은 더 이상 확장할 수가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심한 바람을 맞았는지 벌써부터 대부분의 갈대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롭게 보였습니다. “, 사람만 고달픈 삶을 사는 것이 아니구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다 상처 받으며 겨울을 맞고 있구나. 그리고 겨울이 오면 모두가 앙상한 공허만을 남기고 말 거야.”

 

제 인생도 돌이켜보니 꽤 오랜 시간을 걸어왔던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걸어갈 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보다 더 짧음을 느꼈습니다. 남산의 가을 길을 걷는 것이 이렇게 좋은데, ”나는 내년에도 다시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이런 생각을 하며 남산 정상에 도착하자 벌써 약속 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저는 마음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계속 걷고 싶었습니다. 정말 배가 고파서 못 걸을 때까지 밤이 맞도록 걷고 또 걷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그런 꿈을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더 이상 다리가 아파서 걸을 수 없을 만큼 끝없이 걷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정진홍님은 47일 동안 900킬로를 걸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그 환상적인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말입니다. 그러나 저 같은 형편에서 어떻게 47일 동안이나 걷는 여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단 하루라도 새벽부터 저녁까지 깊은 산길을 걷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녁 식사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산을 내려오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하였습니다. 남산 길을 걷는 것과는 다른 길, 전혀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까지도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남들이 걷지 않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온 것입니다. 정진홍님도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 걸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믿음의 길, 사명의 길은 더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함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혼자 걸어가는 것이죠. 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만 주시는 특별한 믿음과 사명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자신도 결국 혼자 걸어갈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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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맞을 때마다 나무도 단풍도 제 자신도 늙어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절감합니다. 그러나 늙어감이란 삶의 한 과정일 뿐, 그 과정 속에 우리 모두는 혼자 걸어가야 합니다. 보통 때는 함께 걸어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홀로 걸어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남이 가는 평범한 길을 가지 않고 남이 가지 않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려 합니다. 전혀 새로운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그 길은 혼자서만 가는 길입니다. 혼자 가기 때문에 외롭고 고독한 길이죠. 그리고 그 길은 올라갈수록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은 혼자이고, 주님과만 걷습니다.

 

그래서 사명자는 고독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교회 뒷산을 갈 때도 혼자 가는 길을 연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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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목양칼럼] 혼자 가는 길을 연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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