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기독교 복음의 정통성과 교회의 통일성
2019/11/15 14:0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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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교회의 이단 논쟁은 교회의 ‘통일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
‘분리파(이단)’들의 목표는 교회의 도덕과 신앙의 개혁이었다

1. 기독교 정통주의 확립과 '통일성'
우리는 흔히 기독교 정통주의나 정통성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여기에서 '정통'(Orthodoxy)이란 말은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려는 위협(이단)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지키려는 데서 생긴 말이다. '이단'(Heresy)은 정통을 잘못 해석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초기에 나타난 이단은 노스틱주의(Gnosticism)이다. 노스틱주의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을 부인한 것이다. 노스틱주의자들은 언제나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비밀(靈知)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비밀은 당시에 택함받은 노스틱주의자들에게만 전해주었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창설했으나 물질적으로 눈이 어두운 유대인들에게는 숨겨두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런 주장을 하는 노스틱주의를 배척했다.
만일 노스틱주의가 승리하였더라면 기독교의 복음은 선택받은 몇몇 사람에게 주는 복음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사람이 아니고, 많은 '비의종교'(秘義宗敎)의 신(神)들 중의 하나가 되고, 교회공동체는 세상을 부정하는 금욕적 단체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이 강력한 이단을 내어쫓기 위해 일어섰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통적 입장을 공고히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이 곧 신앙의 교리(敎理)적 확립이다. 교리는 외부의 공격을 막는 데는 방패(防牌)가 되고, 상대를 공격하는 데는 창(槍)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교회에는 아리우스주의라는 강력한 이단이 있었다. 아리우스주의는 그리스도가 창조주와 같은 본질(Homo ousios)을 가진 완전한 신(神)이 아니고, 창조주의 신성과 비슷한 본질(Homo iousios)을 가진 일종의 피조물이라는 것이었다. 노스틱주의를 배척한 사람들도 아리우스주의에는 귀를 기울렸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도교회는 로마의 박해 아래 있었으므로 전체 교회가 한 자리에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313년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사회의 하나의 '합법적 종교'로 공인을 받아 325년 황제의 승인아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한 공의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기독교 정통주의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부터 680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까지 수 세기동안 이어진 에큐메니칼 논쟁을 거치면서 확립된 것이다. 그것이 곧 삼위일체 교리이다. 그런 과정에서 정통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가톨릭'(catholic)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가톨릭이란 말은 '보편적'이란 뜻이다. 이 보편적 교회가 지향한 가장 중요한 가치는 '통일성'(統一性)이다. 이 통일성을 견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단 논쟁이 발생된 것이다.  

2. 중세교회의 이단 논쟁
중세 교회는 가톨릭의 가르침, 즉 정통주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이단으로 규정했다. 이들을 교회사에서는 '분리파'(分離派)라고 한다. 분리파 운동은 학자들이나 제후들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민중에게서 시작되었다. 이들 분리파들의 목표는 교회의 도덕과 신앙의 개혁이었다. 그들은 교회가 가르치지 않는 복음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들은 교회 예배의 형식주의, 사제들의 세속성과 탐욕을 규탄하다가, 아예 사제들의 지도와 감독에서 떠나버렸다. 이에 가톨릭은 교회의 통일성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문제는 가톨릭측에서 볼 때, 분리파들이 복음서들과 서신서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이 해석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체계를 수립한 뒤, 가톨릭 성직위계제도(사제, 주교, 대주교, 추기경, 교황으로 구성된 교회의 직제)를 성경적이 아니라고 비판한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분리파들은 일반적으로 유아 세례의 정당성을 부정했고, 십자가와 성모마리아 그 밖의 상(像)들을 숭배하는 행위를 우상 숭배로 간주했다.
이에 가톨릭은 이들을 "포도원을 망쳐놓는 솔로몬의 여우들", "저주의 살로 타격을 가하는 전갈", "해충을 지닌 채 땅에 숨는 요엘의 메두기떼", "바벨론의 금잔에 담긴 뱀의 독을 내미는 귀신들"이라고 불렀다. 중세 교회의 분리파 목록에는 카타리파, 파타리아파, 베긴파, 왈도파, 겸손파, 사도파, 파울루스파, 보고밀파, 아모리파, 알비파 등 1백여 개의 명단이 나온다. 이들은 모두 이단으로 규정됐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살펴본다.

3. 왈도파와 알비파 이단
 (1) 왈도파(Waldenses)
12,3세기 남부 프랑스에 널리 퍼져있던 왈도파는 가톨릭교회의 인준을 받기 위해 1179년 제3차 라테란 종교회의에 적어도 두명의 회원을 보내 교황 알렉산더 3세(Alexander Ⅲ)에게 자신들의 모임을 선교단체로 승인해 계속 전도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들이 무식하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다. 그들은 모두 신학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평신도 전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 후 1184년 교황 루치오 3세(Lucius Ⅲ)는 그들을 이단으로 파문했다. 이후 왈도파는 무자비한 탄압으로 핍박의 대상이 되어 끔직한 학살을 당하였다.
왈도파의 창시자는 흔히 프랑스인 피에르 왈도(Pierre Waldo, 1140-1217)로 알려져 있다. 그는 리용에 살았던 부유한 장사꾼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으나 어느날 파티에 참석하는 동안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보고 자신의 영혼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전재산의 관리권을 아내에게 맡기고 자신은 가난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가난을 실천하고 성경말씀을 연구하고 복음을 설교하는 그에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리용의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불리웠다.
왈 도파는 교리와 신앙상에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조금도 위반할 생각이 없었다. 떡과 잔을 사제들이 축성하면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믿었고, 유아 세례를 실시했다. 그리고 오직 일심으로 성경에서 가르친대로 사도적 삶을 실천하고 성경을 연구하는 것을 대의로 삼았다. 그들은 또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그것을 배포했다. 그러나 1380년 대립교황 클레멘트 7세(Clemens Ⅶ)가 “이단자들을 척결하라”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왈도파에 대한 대학살극이 벌어졌다. 체포된 왈도파는 모두 화형을 당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대부분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그 들은 세 가지 원리를 따랐다. 첫째는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더 순종하는 것이고, 둘째는 성경말씀을 그들의 지식의 근본으로 삼았으며, 셋째는 복음전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로마교회의 연옥 교리, 죽은 자를 위한 미사, 면죄부, 성자 숭배, 성상 사용 등을 거부했다. 다만 그들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실천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성경에만 절대적 권위를 두고 믿음, 윤리, 예배, 교리에 대한 문제에서 오로지 성경만을 따랐다. 그들은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도 전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평신도들의 권리이며 의무라고 믿었다.
(2) 알비파(Albigenses)
중세의 십자군은 성지를 점령한 이슬람만 공격한 것이 아니다. 1208년에는 교황 인노켄티우스가 프랑스 남부를 지배하던 레몽 백작이 ‘카타리파’라는 이단을 진압하는 정책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십자군을 일으켜 프랑스 남부 도시 ‘베지에’를 함락시켰는데,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처단하라.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는 교황 특사의 명령에 따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2만여명의 주민을 모두 살해했다. 교회에 모여서 살려달라고 기도하던 7000여명도 죽였다.
이들은 알비파라고도 불리우는데, 그들이 프랑스 남부 알비 시(市)를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알비파는 1244년 그들의 마지막 피난처였던 몽세귀 요새가 함락되고 모두 화형 당하거나 귀와 코와 입술이 잘렸다. 그들은 모두 복음에 충실하려는 기독교인들이었다. '알비 십자군'이라고 불린 교황군은 약 200만명의 주민을 학살했다. 알비 십자군은 1229년에 종결되었다.
그러면 당시의 교권주의자들과 십자군에 의해 처참히 학살당한 '왈도파'나 ‘알비파’가 진짜 이단이었는가? 그들은 신도들에게 자기네 언어로 성경을 가르치고,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에게 복종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할 것을 강조하고, 평신도들도 설교할 수 있고, 여자들도 전도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권한은 로마교회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함께 하시는 영적 능력에 있다고 설교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이단으로 정죄받아 종신형이나 화형에 처해지고, 사지를 찢어 죽이거나, 끓는 기름가마에 넣고 튀겨 죽였으며, 산채로 가죽을 벗겨 성벽에 매달았다. 이런 무자비하고 잔혹한 생명 유린에 중세의 가톨릭교회는 서슴치 않고 가담했다.
<강춘오 목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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