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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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박상철 선교사님이 필자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박 선교사는 한국의 시니어선교사 훈련원을 마치고 평신도 선교사로서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분이시다. 평신도로 남미의 페루와 브라질에서 사역한지가 30여년이 넘는다고 했다.
박 선교사가 필자의 사무실을 찾는 이유는 선교지에서 한국어를 가르침을 통해서 선교의 접촉점을 만들어 지속적인 인재를 육성해 보고자 한 선교전략 이었다. 마침 필자는 세계로원격평생교육원을 통해서 한국어교원 3급 교육을 감당하고 있다. 금년에도 몇십명이 이미 이 과정을 마치고 이수증과 함께 선교지에서 활발하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
박 선교사에 의하면 브라질에서의 한류는 놀라운 속도로 청소년들을 움직이고 있다고 하였다. 특히 BTS를 비롯한 아이돌의 인기는 절정기라고 하였다. 이에 편승해서 한인들과 한국어에 대해서 관심이 증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브라질은 어떤 나라인가? 필자는 브라질 하면 축구 스타 펠레 정도만 알고 몇 년 전에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로만 인식된다. 사실 브라질은 가톨릭의 나라이다. 자료 검색에 의하면 브라질은 149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유럽인 최초로 아메리카에 도달한 후, 이미 발견된 아메리카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브라질도 식민지화의 위협에 노출됐다. 1500년에 포르투갈의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브라질을 발견한 이후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다른 남북 아메리카 대륙과 다른 역사를 걷게 되었다.
초기 브라질에서는 기독교도로 개종한 이들에 의해 파우 브라질의 수출이 주요 산업이 되었으며, 이 때문에 처음에 베라크루즈 섬으로 불렸던 브라질은 16세기에 들어서 브라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549년에 프랑스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초대 브라질 총독으로 토메 데 수자가 사우바도르에 부임했다.
이후 18세기에는 미나스제라이스에서 금광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골드 러시가 일어나, 브라질의 중심이 북동부에서 남서부로 이동하여 1763년 리우데자네이루가 식민지의 수도가 되었다. 금광은 18세기 동안에 무려 30만명의 포르투갈인들이 브라질로 이주하였고, 금광을 개발하기 위해 더 많은 흑인 노예가 유입되었다. 한편 미나스의 중심지가 되었던 오루프레투(Ouro Preto)에서는 독창적인 바로크 문화가 번창했다.
커피, 농장에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노예제 폐지 후 이민자의 유입 속도가 더욱 빨라져, 1908년에는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일본인 이민자들이 유입되었다. 1919년에 열린 파리강화 회의에서 일본이 제출한 인종차별 철폐 방안에 찬성하는 등 인종차별 철폐에 적극적이었다.
이제 시대를 건너서 현대사에 나타난 브라질을 보자. 2003년 노동자당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취임 이후 세계 경제의 호조를 바탕으로 경제를 회복하였다. 룰라는 두 번의 연임을 했고, 2010년 10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인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 국무부 장관이 당선됐다. 지우마 호세프는 2011년 1월 1일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2014년 대선 때 재선의 성공하였으나, 2016년 5월 12일에 대통령의 직무 활동이 정지되었으며, 동년 8월 31일에 탄핵되었다. 이후 미셰우 테메르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좌파 정권에서 우파 정권으로 교체되었으나, 2018년 선거에서 결선 투표 끝에 노동자당의 페르난두 아다지가 사회자유당의 자이르 보우소나루에게 패배하여 낙선을 하였고 이로써 브라질의 도널드 트럼프라고 불리는 극우 후보인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당선이 되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우리 한인들이 브라질에 이민을 하게 된 계기는 박정희 대통령의 남미 개척 정책과 관련이 있다. 1963년 2월12일 103명이 산투스항에 도착하면서 이민이 시작되었다. 처음은 농업 이민 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의류상으로 업종을 바꾸었다. 그리고 상파울루 의류 시장의 양대 산맥인 봉 레티로와 오리엔트에서 3,000여개의 의류 도매업을 경영하는 한인 디아스포라 그룹이 되었다.
박 선교사님의 자녀도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의류사업을 통해서 아버님의 사역을 돕는다고 하였다. 특히 며느리는 카자흐스탄에서 브라질로 유학을 와서 자신의 아들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된 디아스포라의 국제화를 이룬 가정이었다. 박선교사의 사역을 축복하면서 즐거운 미팅을 가졌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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