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그리스도교 분파 이야기/강 춘 오 목사(발행인)-21
2019/12/06 15:1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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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받은 신자들로 구성된 개교회주의로 운영되는 교회
‘세례’가 아니라 ‘침례’를 주장… ‘유아세례’와 ‘사도신경’도 거부



침례교회
(Baptist Church)

침례교회란 무엇인가?
침례교회란 말은 가톨릭이라는 전통적 보편적 역사적 교회가 물을 머리에 뿌리는 ‘세례’(란티조)를 기본 성례로 채택한 데 비해, 물에 온 몸을 잠그는 ‘침례’(뱁티조)를 주장한 데서 나온 교파이다. 그 역사적 기원은 영국국교회의 통치를 벗어나려 했던 “자유교회운동”에서 그 뿌리를 찾고 있다.
침례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서 유일한 권위를 성경에 둔다. 그래서 침례교인들은 ‘성경의 사람들’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특히 초대교회를 이어가기 위해 성경을 부지런히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강조한다. 그래서 침례교회를 ‘환원주의’(還元主義)라고도 한다. 환원주의란 성경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뜻한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이러한 침례교회의 주장은 침례교회의 자유와 연관되어 있다. 침례교회사의 발전은 침례교인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영혼 자유, 성경 자유, 교회 자유, 종교 자유가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자유는 각각 전신자(만인) 제사장주의, 성경 해석의 자유, 지역교회의 자치, 교회와 국가의 분리로 나타난다.
첫째, ‘영혼 자유’(Soul freedom)는 신자 개인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개인 각자의 영혼의 역량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 영혼 역량의 자유에 따르는 책임으로 모든 침례교인은 제사장 직분을 갖는다는 것이다.
둘째, ‘성경 자유’(Bible freedom)는 신자 개인에게 성경 해석의 자유가 있다는 주장이다. 침례교회는 교권에 따른 성경해석보다 성령의 조명에 의한 개개인의 자유로운 보편주의적 성경해석을 인정한다.
셋째, ‘교회 자유’(Church freedom)는 지역교회가 개교회로서 예배와 교육과 선교와 봉사 등에 대해 자치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침례교회는 장로교나 감리교 등과 달리 개교회를 지배하는 상회(上會)로서의 노회나 지방회나 총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구원받은 신자들로 구성된 회중정치로 교회를 운영한다.
넷째, ‘종교 자유’(Religious freedom)는 교회와 국가는 분리된다는 것이다. 즉 교회는 예수 믿는 신자들의 영적인 공동체로서 세속권력과 결탁된 국가교회를 배격한다. 따라서 교회는 국가의 재정이나 권력에 의존해서 선교 사업을 수행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16세기 제세례파운동과 침례교회
침례교회는 ‘침례’의 기원을 침례요한에서부터 찾는다. 예수는 요단강에서 요한에게서 침례를 받았다. 그래서 마태복음 28장 19절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셰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에서 ‘세례’를 ‘침례’로 읽는다. 그런데 그 침례를 가톨릭교회가 세례로 바꾸었다는 주장이다. 그 주장은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재세례파의 주장과 일치한다. 그러면 재세례파의 주장은 무엇인가?
첫째, 재세례파는 엄격한 정교분리(政敎分離)를 주장했다. 국가와 종교는 철저히 분리되어야 하며, 어느 쪽이 다른 쪽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든 교회가 국(國)교회이거나 시(市)교회로 운영되던 중세에는 이 주장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이로 인해 재세례파는 많은 희생을 낳았다.
둘째, 재세례파는 순수하게 신자(信子)의 결단에 의한 신앙과 실천을 주장했다. 왕이나 제후나 국가 법률에 의한 강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재세례파는 만인 제사장주의를 주장했다. 그들은 교권적인 성직 제도를 부정했으며, 모든 신자가 자신의 믿음에 따라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한다고 믿었다.
넷째, 재세례파는 평화주의를 주장했다. 보편적 기독교가 ‘정당한 전쟁’을 인정하는 것과는 달리, 재세례파는 정당한 전쟁을 부정하고 신약성경의 평화에 대한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믿는 자(신자)의 침례’를 주장했다. 오늘날 침례교회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하다. 이로 보건대 침례교회는 재세례파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침례교회도 평화를 주장하지만, 정당한 전쟁을 인정하며 병역 의무를 인정한다. 그러나 침례교회는 재세례파 교회와 직접적인 관련은 갖고 있지 않다.

침례교회의 역사
역사상 최초의 침례교회는 암스테르담에서 세워졌다. 이들은 모두 영국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영국인들이었다. 이들은 1611년 토마스 헬위스(Thomas Helwys)와 존 모튼(John Murton)의 지도 아래 영국으로 돌아와 비국교도 운동을 계속해 침례교회를 세웠다. 이를 ‘일반침례교회’라 부른다.
비국교도 운동의 선구자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은 1581년 영국국교회(성공회)에서 나와서 비국교도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이어 존 스마이스(John Smyth)는 1602년 국교회 감독제는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하는 설교를 하고 1606년에 회중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이 교회의 일부가 미국의 메사추세츠로 이주하여 그 유명한 필그림교회가 된 것이다.
비국교도란 16~17세기 영국국교회에 저항한 영국의 신교도(新敎徒)를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영국국교회의 개혁은 참된 개혁이 아니라고 여기고 영국국교회와 별도로 지역교회의 목사를 감독(주교)의 임명이 아니라 회중에 의해 선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국교회는 이들을 ‘분리주의자들’라고 비난했다.
또 1616년 비국교도 중에서 침례방식의 회복을 바라는 신자들이 독자적인 교회를 세웠는데, 이 교회는 헨리 제이콥(Henry Jacob)이 목회했다. 이 교회의 17명의 신자들이 1633년 침례를 받았다. 이들 중 일부가 런던의 사우스워크에 최초의 ‘특수침례교회’를 세웠다. 특수침례교회란 일반침례교회의 ‘관수례’ 대신 ‘침수례’를 행하는 것이다. 관수례란 물을 물주전자 등에 담아서 머리 위에 붓는 행위이고, 침수례란 온 몸을 물속에 잠그는 행위를 말한다. 오늘날 침례교회는 모두 침수례를 행한다.

침례교회의 이상과 주장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설하셨고 친히 머리가 되시며 그 입법자이다.
•교회의 교리와 생활에 대한 유일하고 권위 있는 표준은 성경뿐이다.
•교회의 의식은 침례와 주의 만찬으로서, 주의 만찬은 상징적 기념일뿐 구원의 조건은 아니다.
•교회의 직분은 목사와 집사로서 이들은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다.
•교회의 정체는 민주 정치로서 행정만 할뿐 입법은 하지 않는다.
•교회의 회원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들의 모임으로 구성된다.
•교회 회원의 의무는 신앙고백으로 침례를 받고 신약성경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모든 교회는 행정적으로 독립적이나 복음 전도 사업은 협동한다.
•교회와 국가는 상호 분리되어 있다.
•신앙의 자유는 절대적이다.
이상에서 침례교회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의 직제는 ‘목사’와 ‘집사’뿐이고, 성찬은 주의 죽으심과 장사됨과 그리고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기념설’이다. 침례는 믿는 자의 고백에 의한 것임으로 자신의 고백이 없는 ‘유아 세례’는 부정된다. 또한 침례교회는 신조보다 성경을 더 높은 권위에 둠으로 대체로 사도신경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정교 분리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며, 개교회주의를 주창한다는 점이다.

세계교회 속의 침례교회
침례교회는 세계 신교(新敎) 가운데 대체로 빠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과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 퍼져있다.
21세기 오늘날 ‘침례교세계연맹’(Baptist World Alliance)에는 약 5천만 명의 침례교인이 가입해 있다. 그런데 이 조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침례교인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에 약 1억5천만 명 이상에 이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침례교세계연맹(BWA)에 소속된 각 국의 침례교단 가운데 WCC에 회원교단으로 참여하고 있는 교단도 많이 있다. 그러나 한국침례교회는 WCC에 가입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1889년 캐나다 출신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이 내한하여 선교가 시작되어 ‘대한기독교회’(1906-1920)와 ‘동아기독교회’(1921~1932),‘동아기독대’(1933-1939)와 ‘동아기독교‘(1933-1948), ‘대한기독교침례회’(1949~1951), ‘대한기독교침례회 연맹’(1952~1968), 그리고 분열 시대를 거쳐, ‘한국침례회 연맹’(1968~ 1975)에서  1976년 오늘의 ‘기독교한국침례회’로 명칭을 바꾸어 한국교회의 주요교단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한편, 1954년 미국 남침례교회에서 ‘성서침례교회’가 탄생했다. 성서침례교회는 미국교회에 침투된 자유주의 사상을 비판하고, 보다 보수적인 신학노선을 추구했다. 그들은 세대주의, 축자영감사설, 성경의 무오성, 은사종료설, 전천민설을 지지하며, 현대 오순절교회의 은사주의(방언, 신유, 입신, 투시, 영서 등)와 에큐메니칼 교회일치운동을 부정하고, “한번 구원받은 성도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음을 믿는다”는 교리를 갖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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