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 이단연구의 난맥상
2019/12/20 15:29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한국교회 이단 연구 그 길을 잘못 가고 있다
이단 감별사들 모두 이단 정죄돼… 자기네끼리 이단 정죄도


한국교회는 이단 논쟁에 있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우리네 속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한국교회사에서 문선명의 통일교와 박태선의 전도관이란 이단 운동이 한국교회를 심각하게 위협했기 때문에 “이단”하면 무조건 문선명이나 박태선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한국교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단시비도 거의 모두 통일교나 전도관과 관련되어 있는 집단 외에는, 저들의 신앙이 과연 이단인가 의심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다보니 한쪽에선 이단이라 하는데, 또 다른 쪽에선 이단 아니라는 주장이 계속돼 시비가 끊일 날이 없는 것이다.

잘못 적용되고 있는 판별 잣대
한 장로교 단체에서 이단 사이비 세미나를 가졌다. 이날 한 초청강사는 ‘이단의 확인법’이란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그 내용 가운데 이단은 ▲사도신경과 신앙고백 여부로 판별할 수 있다는 구절을 맨 앞에 두었다. 또 지난 1980년대 초에는 예장통합측 총회가 교계에서 말썽이 일고 있던 한 인사에 대해 그가 ▲유아세례를 성경적이 아니라며 부인하기 때문에 이단이라며 정죄한 일이 있다. 이것은  한국기독교가 얼마나 ‘장로교’ 중심적인지를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으면 이단이고, 유아 세례를 반대해도 이단이 되는 교회는 세계교회 가운데 한국교회 외에는 어디에도 없다.
한국기독교는 장로교가 70%를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장로교 교리가 모든 정통교회의 기본이 되고 있는 셈이다.
세계기독교 가운데 환원주의(還元主義) 교회들은 일체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는다. 그리고 침례를 하는 교회들은 유아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침례교회를 비롯한 그리스도교회 등 세계 기독교 신교(新敎)의 약 3분의 1은 사도신경도 유아 세례도 부정한다. 그리고 오순절교회 등은 사도신경은 인정하나 유아 세례는 인정하지 않는다.
중세 종교개혁에 참여한 프로테스탄트교회 가운데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개혁주의교회(改革主義敎會)이고, 다른 하나는 환원주의교회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교리나 전통을 고쳐 성경적 교회로 바로 세운 것은 개혁교회이고, 590년 로마 대주교 그레고리 1세가 가톨릭교회 교황이 된 이후부터 16세기 종교개혁의 불길이 일어난 때까지의 로마 가톨릭의 역사와 전통을 부정하고 초대교회로 되돌아 가 그 정통성을 이었다고 주장하는 교회는 환원주의교회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이단감별사들이 사도신경의 고백 여부나,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 것을 이단 판별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은 무지(無知)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성경적 기독교의 참된 진리를 세우거나 변증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두 말할 필요없이 ‘정통성’(正統性)이 중요하다. 그리스도 교회의 정통성은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에 있다. 그러나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는 ‘다양성’(多樣性) 또한 무시해선 안된다. 그래서 개혁교회의 대표적 교회인 장로교 정치 원리 제1조와 제2조는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제1조 양심의 자유는 양심을 주재하는 이는 하나님 뿐이시다. 하나님이 각인에 양심의 자유를 주어… “누구든지 신앙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그 양심대로 할 권리가 있으니 아무도 남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양심의 자유에 바탕한 다양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그동안 남의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들이 있다. 속칭 ‘이단감별사’들이다. 한국교회는 이들 이단감별사들로 인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춤을 추어 왔다. 이단감별사들은 자기가 가진 ‘멋대로’의 신학적 잣대로 이곳저곳에 들여대 보고 자기의 잣대에 모자라면 ‘사이비’요, 넘치면 ‘이단’이라고 규정했다. 자신의 잣대에 잘못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배운 신학적 지식과 신앙적 경험을 ‘불굴의 확신’으로 절대시 하여 타인의 성경이해와 신앙체험은 일체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거기에다가 개인적 이해에 얽힌 감정까지 개입시켜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거나 자신의 목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누구든 ‘이단’ 또는 ‘이단옹호자’로 매도해 버린다. 심지어 객관적 보도에 근거를 두고 있는 언론까지도 ‘이단옹호언론’이라고 규정해 교계언론의 자유로운 취재를 방해한다. 이들의 행태를 가만히 들여다 보노라면 일종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듯이 보인다. 여기에 그들이 속한 교단들이 한몫 거든다. 그러더니 이제는 공격 목표가 사라지자 이단 감별사들 자신들끼리 이단시비가 벌어지고 있다.

이단 감별사들끼리 이단 정죄
이단 감별사라고 불리는 인사들 중 몇몇은 이미 작고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이단 감별에서 손을 떼기도 했지만, 아직도 현장에서 이단 감별을 하는 자들이 여럿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들의 행태가 참으로 요상하다. 한때 잘나가던 이단 감별사들이 모두 ‘이단’으로 정죄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 이단 감별사로 활동해 온 통합측의 한 인사는 한기총으로부터 ‘극악한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합동측의 한 인사는 ‘미주 세이연’이란 이단연구기관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었으며, 예장합신총회를 업고 활동하던 한 인사와 감리교 출신 한 인사는 주요교단들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이는 그동안 ‘진짜 이단’이 ‘가짜 이단’들을 만들어 온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될만 하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볼 때, 어떤 신학적 잣대로 상대를 보느냐에 따라 서로를 이단시 하게 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그리스정교회와 개혁교회를 이단시하고, 그리스정교회는 개혁교회를 이단시 한다. 솔직히 현대교회에 있어서 칼빈주의 개혁교회만큼 성경적인 교회가 어디에 있는가? 그럼에도 로마교회도, 그리스교회도 장로교를 이단시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요, 적반하장이다. 이는 상대가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서 나와 무엇이 같은가를 찾지 않고, 나와 무엇이 다른가만을 찾다보니 생기는 곡해이다.

이단 감별사들 대부분 현대신학의 흐름 이해 부족
이단 감별사가 특정인을 이단을 만들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누구든지 이단이 될 수 있다.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나 표범이 먹이사냥을 할 때 아무거나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무리 가운데 나약해 보이는 혼자 노는 놈을 공격하는 것과 똑 같다. 힘이 약한 새끼거나, 어딘가 다쳐서 절뚝거리거나, 무리와 어울리지 않고 변두리에 떨어져 있는 놈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래서 표적 공격을 계속 감행해 결국 쓰러뜨리면 다른 짐승들이 몰려 와서 함께 뜯어먹는다. 그리고 사자의 공격을 지켜보고 있던 자칼이나 독수리도 쓰러진 놈을 뜯어먹기 위해 그 주위로 모여든다.
한국교회 이단 시비가 이와 유사하다. 용감한(?) 한 이단 감별사가 신학적 배경이나 정통성이 좀 부족해 보이면서도 인기가 있어 사람을 좀 모우는 한 특정인을 발견하면 그 주위를 어설렁거리며 공격자료를 수집하고, 어느날 기회가 오면 본격적으로 공격을 개시한다. 그 특정인이 방어(변증)에 실패하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이단”으로 매도해 버린다. 이것이 80년대 이후 한국교회가 이단을 정죄해 온 과정이다.
또한 이들 소위 이단 감별사들의 신학적 지식이란 것이 우물안 개구리 수준이어서 세계신학계의 현대신학의 흐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세계교회 어디에서 좀 색다른 신앙운동이 일어났다고 하면 “어, 이거 이단운동 아닌가”하는 의심부터 하고 나선다. 예들들면, 한때 유명했던 빈야드 운동이나, 또 뜨레스디아스 운동 같은 영성운동도 이들은 용납할 수 없는 이단으로 봤다. 심지어 하나님의 기적이나 성령의 특별한 역사는 이미 사도시대로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 신학 용어로 '은사종료설'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지금 무슨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이 일어 났다거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신비로운 일이 벌어지는 것은 모두 ‘사탄의 짓’으로 규정해 버린다. 이런 풍토에서는 진보적 신학의 발전이나 성령의 역사에 의한 새로운 신앙운동은 뿌리를 내리기는 커녕 그 싹도 틔우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이단 연구가 이단을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성장에 저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러므로 이단 연구는 자기 신학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어설픈 이단 감별사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신학대학의 조직신학 또는 교리사 선생들이 맡아 연구해야 한다. 그것도 1년 혹은 2년 연구로 끝낼 것이 아니라, 그 열매를 봐가며 결론을 내어도 늦지 않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pnnews@empas.com
교회연합신문(www.ecumenicalpress.co.kr) -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  발행인 : 강춘오  |  설립일:1991년 11월 16일
    | 사업자:206-19-64905  | 03127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16길 73-10  |  대표전화 : 02-747-1490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All right reserved.
    교회연합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