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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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슬픈 어머님의 자살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한 셋집 단칸 방안에 하얀 분 대신 연탄 가루를 바른 엄마가 쓰러져 있었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네 살 난 그녀는 어느 날 자살한 어머니의 시체를 붙들고 “엄마 죽지마” 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고생을 타고난 그녀의 어머니는 눈만 트면 바람을 피우고 술독에 빠져 개망나니 짓을 하는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온 동네 약방에서 사서 모은 수면제를 한 줌에 털어 넣었다고 한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온 초등학교 6학년 큰 오빠는 흰 거품을 가득 물고 비틀거리며 죽어가는 엄마를 등에 업고 비지땀을 흘리면서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엄마는 옆에서 울고 있는 그녀와 큰오빠를 버리고 깊은 잠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녀는 어머니의 시체 앞에서 “다시는 이런 썰렁한 곳에서 혼자 울지 않을 거야” “독한 소리를 듣더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거야! 그 대신 마른 눈 똑바로 뜨고 내 삶을 찾아갈 거야. 아무리 삶이 나를 포기해도 지레 겁먹고 항복하는 쪼다가 되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지는 않을 거야” 이야기는 오늘 날 우리 가정의 이야기가 아닐까?               
최근에는 유감스럽게도 자살과 안락사를 너무 쉽게 긍정하는 풍조가 강해진 듯하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 청소년, 중년 가장들, 장년들과 노인들의 자살을 더 이상 외면 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가 된 것 같다. 날마다 전국에서 평균 60 여명이 자살한다는 통계가 있고, 이 숫자는 교통사고, 사망자의 2배와 맞먹는다고 한다. 게다가 자살을 시도했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진 사람의 수는 적게 잡아도 실제로 자살한 사람의 10 배가 넘는다고 하니 정말 놀랍다.
그리고 절친했던 사람이나 가족의 자살 또는 자살시도 때문에 정신적 충격을 받는 사람은 자살 행동 한 건당 최소한 5명은 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자살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약 2만 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자살 행동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받고 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도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자살하는 사람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가족과 지인도 얽히게 되는 심각한 정신보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헌데 우리나라에서는 자살 예방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는데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자살 예방에 대한 중앙 정부와 지방정부의 특별한 대책이 있어야 하겠다.
자살이란 무엇인가? 사전상의 정의를 보면 더할 나위 없이 간명하게도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 라고 했고 성경에는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데(창2;7)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목을 잃으면 아무 유익도 없고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히9;27) 그러기에 우리는 자살을 택하지 말고 생명을 택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살 원인을 알아야 한다.
학자들에 의하면 첫째 우울울증,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짐이 된다. 소속감이 없다. 충동성(느닷없이 큰 실망 갈등에 반응) 정신 장애(자살자 약95퍼센트가 사망 전 정신장애 경험)  등이라고 한다. 이 정의는 모든 자살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듯하다. 그럼 자살을 어떻게 극복할까? 실례로 자살을 극복한 베토벤을 소개한다.      
음악인으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 악성이라고 불리는 프리드리히 베토벤은 작품의 수준 못지않게 고난에 찬 삶의 역경을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의지의 표상이자,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베토벤은 1802년 여름 의사의 권유에 따라 하 일리 겐 슈타트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는 기대했던 청력이 회복되지 않았고 근처 미하엘 교회의 종소리마저 들리지 않자 그해 10월 절망한 나머지 남동생 앞으로 유서를 쓴다. 그가 사망한 후 발견되어 ‘하일리겐 슈타뜨의 유서로 널리 알려진 이 글은 현재 그의 기념관에 복제본이 전시되어 있고 원본은 함부르크 국립대학 도서관에 소장 되여 있다고 한다. “자살로 내 생명을 끊지 못한 것은 예술의 덕택이었다. 죽음이 나를 끊임없는 고뇌의 상태에서 해방시켜 주겠지, 잘 있거라, 내가 죽더라도 나를 완전히 잊지 말아다오” 그러나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
자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리 고통 중에도 비상한 작품들들 속속 작곡하고 발표했다. 그는 많은 작품 중에서도 6년간 힘을 기우려 다듬고 다듬어 38세 때 고뇌와 좌절을 극복하고 교향곡 제5장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교향곡인 제9번’ 합창을 병마와 싸우며 혼신의 힘으로 작곡했다.
그는 1824년 5월 비엔나의 케른트 국립극장에서 작품을 초연 했을 때 연주가 끝나고 청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는 한 가수가 그를 지휘대에서 청중석으로 돌려 세우자 청중들의 반응을 보고 고개 숙여 인사할 정도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다.
인간은 단 한번 주어진 생애를 살기에 베토벤처럼 절망을 극복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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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극복한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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