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미갈의 부부싸움과 내면 치유/ 사무엘하 6:16~23
2020/01/16 16:0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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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갈등에는 변화를 위한 기도와 상담사역 필요
1.jpg부부갈등의 해결책은 공감이다
공감은 상대방의 영혼을 안아주는 것이며 ‘당신은 나 자신과 똑같이 소중한 나, 나보다 더 귀한 존재’라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자를 살맛나게 만드는 묘약이다.
아내가 “힘들다”했을 때 “무슨 일 있었어?”하고 물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그리고 따뜻하게 안아 주며 “여보 당신 정말 힘들었구나”하는 것이 공감이다.
이를 다윗과 미갈의 충돌에 적용해 본다. 다윗이 집에 들어갔을 때 미갈이 비난으로 대했는데, 그때 다윗이 아내에 대한 공감 능력이 있었더라면 이렇게 다독이면서 접근했을 것이다.
“여보! 당신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무슨 힘든 일이 있었어요? 당신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아프네요. 우리 차 한 잔 마시면서 천천히 얘기해 봐요.”
아내를 안아주면서 아내의 마음을 풀어 주려는 의도로 물어 볼 수 있었더라면 미갈이 어떻게 반응을 보였을까?
다윗이 언약궤를 메고 성으로 돌아오면서 거룩한 얼굴 기쁨어린 모습을 미갈이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고 멸시한 것에 대해 주석가들은 미갈의 행동이 저주를 자초했다고만 설명하고 끝낸다.
“그녀는 다윗의 신앙을 부당하게 비난했고 하나님은 그녀가 자식을 갖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녀를 질타하셨다. 하나님은 자기를 높이는 자들을 높이시고 자신과 자신의 종들과 자신을 섬기는 일을 조롱하는 자들을 가볍게 여기신다.”
“미갈이 교만하게 비신앙적으로 다윗을 무시한 벌을 받아 다윗은 그녀와 동침하지 않았고 미갈은 자녀를 낳지 못했다.”
이렇게 보면 다윗의 여호와로 인한 기쁨이 아내에 대해서 무력한 것으로 보인다. 거룩한 기쁨이 아내의 마음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거나 공감해 주려는 여유가 없다.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 거룩한 기쁨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원수도 품고 용서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자신을 무시했다고 저주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면 거룩한 기쁨은 지독한 이기주의로 보여진다. 잘못하면 무조건 하나님의 징계라는 도식에서 보면 ‘하나님은 징계자’란 이미지만 남는다. 정말 하나님은 그런 분이신가?
우리가 잘못하면 우리를 징계만 하시는 심판자 하나님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징계를 야기시킨 우리 자신의 잘못을 먼저 살펴 볼 때 지혜를 얻고 그 지혜로 부부갈등을 잘 풀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담의 원죄를 출생 때부터 품고 태어난다. 그럼에도 성경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다고 한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잘못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거룩한 다윗이 아내의 비난과 업신여김에 대해서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아내의 응어리진 마음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으로 품어주고 그녀의 상처가 회복되기를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남편의 모습을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Ⅱ. 다윗과 미갈의 내면 세계 탐색
미갈의 내면에는 분노의 뿌리가 있었다
그녀는 왜 남편 다윗의 여호와로 인한 기쁨을 수용하고 이해하지 못했을까?  그녀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깊어 있다.
① 아버지 사울이 자신의 사위이며 미갈의 남편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자신의 남편을 죽이려한 행위는 자신을 죽이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버지가 결혼을 승낙했고 다윗을 정식 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런 자신의 남편을 죽이려 했으니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내면에 쌓였을 것이다.
②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고 했을 때 다윗이 도망갔다. 그때 미갈은 친정집에서 홀로 남아 있었다. 남편과 함께 도망을 갔어야 했는데 미갈은 아버지를 떠나지 못했다. 여전히 그녀는 아버지의 딸로 남아 있었으니 아버지에 의해 남편과 별거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아버지에 의해 주도 된 삶은 미갈의 내면에 분노의 뿌리로 형성되었을 것이다.
③ 미갈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버지에 의해 새로운 남편 발디엘의 아내로 살게 되었다.
사울 왕에게 평생을 따라다니는 중요한 이슈는 두려움이었다. 그런 두려움은 자녀들도 두려움으로 양육했고 자녀들에게도 두려움이 흘러갔다. 미갈은 아버지로부터 정서적인 지지와 공감을 받아본 경험이 전무하였다. 아버지 사울은 무서운 아버지였다. 그에게는 분노가 많았고 자녀들의 정서를 이해하거나 자녀들의 아픔을 경청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사울왕도 마지막에는 극도의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무당을 찾아가서 도움을 받았다.
사울 왕이 자녀들을 양육할 때 내재되어 있는 두려움이 자녀들의 내면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아들 요나단이 전쟁 중에 금한 꿀을 먹었을 때 아버지 사울은 아들을 칼로 죽이려 했다. 이때 신하들이 극구 말려서 요나단이 목숨은 부지했지만 아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두려워 했을까? 인정도 눈물도 없는 아버지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이런 상황을 지켜 본 미갈 역시 아버지는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을까?
다윗이 사울 왕의 칼을 피해 도망을 갈 때 아내 미갈이 왜 동행하지 않았을까? 아버지 사울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했을 것이다. 사울의 허락이나 동의를 얻지 못한데서 무슨 개인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아내라면 남편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이 당연한데 남편을 따르기 보다 아버지 곁에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사울은 딸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 주었다고 성경은 말한다(삼상 25:44). 사울의 이런 모습은 그가 사위 다윗과의 관계가 완전히 청산되고 단절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였다.
그런데 미갈은 아버지를 통해 새로운 남편을 만났지만, 실은 무서운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이혼당한 것이다. 이렇게 미갈은 부모를 떠난 아내가 아니라 결혼했어도 여전히 아버지로부터 분리되지 못한 딸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다. 자연히 아버지로부터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해 내재된 분노가 남편 다윗에게 투사가 되어 쏟아졌던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은 딸은 남편에게도 축복된 존재이다
이러한 미갈의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에서 남편 다윗의 정서적인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며 남편을 존중해 주며 지지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존재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란 딸들은 좋은 아내가 될 수 있다. 딸과 아버지 사이에서 형성된 신뢰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앞으로 딸은 남편과의 만남 속에서도 남편을 따뜻하고 편하고 자유로운 관계 가운데 내조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아내는 자신이 남편에게 축복된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은 딸에게 있어서 아버지가 존경할 만한 인물이요 아버지가 딸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했을 때에만 가능하다. 또한 아버지가 딸 속에서 발견되고 자라나고 있는 아름다움이 훼손되지 않도록 튼튼한 방패막이 되고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순수하고 딸을 향한 아버지의 관심이 진정 믿을 만한 것이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딸을 향한 아버지의 순수한 관심이 진정 믿을 만한 것이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아버지(혹은 남성 친척들)가 딸을 보호하기 위해 선천적으로 주어진 신뢰를 위반했을 때 딸은 끔찍한 배신을 경험한다.
이미 미갈은 아버지로부터의 배신감과 거절감이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로인해 남편 다윗에 대한 상처도 똑같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런 내면에서 다윗에게 자신이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은 심경을 호소하기보다는 쉽게 분노가 표출되었을 것이다.
④ 20여년이 지난 후 다윗이 왕이 되자 미갈은 남편 발디엘과 강제로 해어짐을 당하고 다윗의 왕궁으로 불려온다. 이 때 역시 미갈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남자에 의해 자신의 인생이 끌려 다니는 아픔을 겪게 된다. 아버지 상처로 인한 남자에 대한 상처가 계속 악화된다.
⑤ 미갈이 다윗에게 돌아와 보니 이미 그에게는 6명의 아내가 있었다. 이에 대해 다윗은 미갈이 공감할 수 있도록 과거지사를 해명하며 미갈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여 주지 못했다.
다윗은 성취지향적인 성향이 많았다. 미갈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는 나라의 일에 전력을 다하는 일 중심의 왕으로 살았다. 미갈과 따뜻한 부부의 정을 나눌 만한 정서적인 배려를 보여 주지 못했다.
⑥ 미갈이 다윗과의 영적인 연합을 방해했던 부분에는 미갈의 우상숭배(수호신)도 한 몫을 했다(삼상 19:11). 다윗의 하나님과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한 것도 그녀의 우상숭배가 작용을 했다. 그녀의 관심은 남편의 정치적이며 왕적인 지도자로서의 품위에 앞서 있었다. 그녀에게는 백성들이 왕을 무시하거나 얕잡아 보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항상 있었다. 이런 모습은 아버지 사울 왕의 모습이기도 했다.
다윗이 힘을 다해 춤을 추니 에봇이 펄럭였고 그 사이에 속살이(성기가) 보여질 정도였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우상숭배에 사로잡혔던 미갈은 남편의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자신에게로 향하지 못한 모습에 일종의 질투심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깊은 기쁨을 지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감격을 불신앙으로 일관했던 사울 왕가(王家) 출신인 그녀가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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