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앞에 선 교회
2020/02/14 15:5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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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본토에서 발생한 바이러스 코로나를 통해서 중국의 한 도시가 울타리에 갇히고 북한은 입출입을 막고 각 나라에서는 바이러스가 발생한 도시에 거주하는 자기 국민을 전세기들을 통해서 귀환을 서두르고 있다.
14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사분의 일 2500 만 명이 죽어 간 세계사에서 최악의 전염병이었다. 이러한 흑사병은 14세기 중반 킵차크 군대가 제노바 시를 향하여 페스트 환자의 시신을 제노바 시에 보냄으로써 전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전부터 동방원정에 나섰던 십자군 병사들이 보석과 동방문화를 약탈해 오면서 부수입으로 한센씨병과 흑사병을  얻어왔다는 것이 정설이라 전해온다. 더 정확한 것은 쥐벼룩 외에 인간을 통해서도 전염되어서 도시에 위협이 되었고 특히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원에서 가장 큰 희생을 냈다는 것이다. 페스트의 잠복기는 10일이고 40일 동안 외국 선박에 대하여 상륙허가를 내지 않았다. 일설에는 인구의 3분의 일, 혹은 4분의 일인 2500만에서 6000천만이 죽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이후에도 1664년-65년 사이 런던 인구의 20%가 이 병으로 사망을 하였고 19세기 말에는 중국에서도 수많은 인명이 죽기도 하였다. 흑사병의 공포를 문학으로 서술한 책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어쨌든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은 공포와 불안의 파도가 물결이 치고 사스와 메르스보다 더 바람과 풍랑이 요동치는 듯 하고 있다. 지구촌 시대, 세계화에서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질병도 세계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자본과 권력을 도모하는 무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정권을 회복하려는 투쟁과 싸움은 그치질 않고 있다. 무소불위의 검찰공화국은 최고의 권력을 향하여 칼을 휘두르고 있고 총선의 목적을 위해서 질병 문제까지를 정쟁의 재료로 삼고 있다. 이러한 전염병이 있게 되면 고통을 사는 사람들은 민중들이다. 자영업, 특히 식당이나 음식물을 취급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하루를 벌어서 먹고 사는 일 일 노동자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힘든 기초수급자나 차상위 계층들이 더 고달픈 삶을 살게 된다. 소수의 재벌들과 돈을 쌓아 둔 상류층들이야 이 죽음의 골짜기를 잘도 지나가지만 가난한 민중들의 삶은 더욱 더 피폐한 삶의 늪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세우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태어남이 있듯이 죽음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의 열풍을 통해서 가짜 뉴스가 범람하고 거짓 된 언론을 통해서 정쟁을 부추긴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든 다 지나갈 현실일 뿐이다. 중국에서 귀환을 하게 되는 같은 국민들을 지역 주민들이 받지 못하겠다는 것을 보며 정말 우리가 같은 민족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애우 학교가 들어선다고 하면 땅값이나 부동산 값이 떨어진다 하여 그것을 방해하는 인심이 허다하다. 인간들의 이기심과 자신만의 울타리를 걷어치우지 못하는 졸렬함과 억울함을 보며 인간에 대한 씁쓸함과 비정함 들을 겪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질병도 계속되고 크고 작은 문제들 역시 끝은 없다. 살고 죽는 것이 하늘에 있고 우리가 노력하는 것에 따라서 피해의 정도가 결정될 수도 있다. 썩어질 물질들에 탐욕적이고 어리석은 삶의 푯대를 삼고 사는 것이 어디 과거의 일만 있었는가? 삶과 죽음은 한 장의 종이 양면과도 같다.
하나의 티끌과 먼지로 돌아 갈 존재들의 거짓과 살인적 행위들이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소수가 세계 다수의 부를 다 차지하고 대다수의 민중들은 하루하루가 고달픈 삶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의 부의 양극화, 대한민국의 소수 재벌 중심의 양극화는 역사가 존재하는 한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성서가 말씀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평등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정의란 누구나가 인간의 존귀함, 존엄을 대접받는 세상을 말한다. 가짜 소식과 거짓들의 불안과 공포의 확대 재생산에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양극화가 저출산을 이루고 그 양극화는 더 깊은 계곡을 이룬다. 성서는 정의가 강물처럼 이루는 나라를 외치고 있다. 정의는 양극화가 극복된 하나님의 나라를 이른다. 평등과 정의가 없는 세상에서 진정한 구원과 사랑의 완성은 없다.
종교나 교회가 기도를 한다는 것은 민중들을 염두에 두고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소수의 자본가들과 불의한 권력에 아부 아첨을 해 오며 정의와 사랑을 버린 교회는 이미 성서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페스트나 사스, 메르스와 지금의 코로나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불의한 세력과 결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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