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 울타리
2020/02/14 17:0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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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연 옥


무너진 고향집
마음 놓아버린 탱자나무 울타리
목발 짚고 서 있다
한  가시 틈새에 젖꼭지 꽃망울, 틔우던
탱자나무
파란 이파리 갉아 먹던 애벌레는
호랑나비 되어 날아갔다
제 몸에 가시 세워 꽃과 애벌레 키우며
울창했던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

허리 굽은 아버지가 지나간다
열두 남매 울타리가 되느라
앙상하게 말라 가시던 아버지

노랗게 마른 탱자 알 몇 개 빈 마당에
뒹굴고 있다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에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이사야40:8).
모든 생명체는 풀과 같이 시들고 사라지는 존재지만, 하나님과 말씀(Logos)만은 영존 하신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게도 끊임없이 존재의 물음을 묻고 있다.
시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읽혀지는 고향집, 허물어진 벽, 이미 사람이 떠나간 엉성한 울타리는 기울어지고 퇴락한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시인에게는 영존(永存)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같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가슴에 아로새겨져있다. 탱자나무울타리와 아버지는 닮아있다. 탱자나무의 가시는 엄격하던 아버지의 사랑, 시들지 않는 사랑은 가시 틈새에 쉼 없이 꽃망울을 틔우던 아버지다. 아가페적 사랑이고 헌신이다.
열둘의 자녀는 탱자나무에 기생하는 호랑나비 애벌레였겠지, 무성한 탱자나무 이파리를 갉아먹으며 성장한 자녀들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고 없다. 아버지와 탱자나무의 절묘한 은유(隱喩)가 독자의 감명을 불러준다.
더군다나 노란 향기로운 열매와 가시울타리는 우리 기억에 남아 있는 정서의 울타리가 되고 있지 않을까, 가끔 시골 농가를 지날 때 만나게 되는 탱자나무 울타리는 뭉클한 한가닥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지금은 페가가 된 아버지의 집, 노란 향기를 끄러안고 마른 탱자가 빈 마당에 바람에 휩쓸려 굴러가고 있다면, 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닐까,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한 구절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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