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그리스도교 분파 이야기/강 춘 오 목사(발행인)-28
2020/03/27 16:2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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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정교회와 구분되는 오리엔트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콥틱 정교회·아르메니아 정교회 등  단성파 교단들

동양 정교회
(Oriental Orthodoxy)

본 분파 이야기 6회(2019년 3월 22일) 단성론파의 분열을 다루었다. 그것은 단성론파의 네 지류, 즉 이집트의 콥틱파, 시리아의 야곱파, 레바론의 마론파, 아르메니아파가 그것이다. 이들은 고대 에큐메니칼 기독론 논쟁 당시 451년 칼케톤에서 모인 양성론 논쟁에서 단성론을 채택한 교회들이다. 이들을 동방 정교회와 구별하여 ‘오리엔트  정교회’(Oriental Orthodox Church) 혹은 ‘동양 정교회’(Oriental Orthodoxy)라고 부른다. 이 교회들은 칼케톤공의회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고, 또한 완전한 사람이라는 양성론(兩性論)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에 흡수되었으며,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다”라는 단성론(單性論)을 따른다. 그런 의미에서 단성론파의 분열과 꼭지를 달리하여 동양 정교회라는 이름아래 다시 정리하고자 한다.

1. 시리아 정교회(Syriac Orthodox Church)
시리아 정교회는 안디옥(오늘의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를 수장으로 하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오랫동안 ‘야곱교회’ (Jacobite Church)로 불리우다가 2000년 교회 회의에서 ‘시리아 정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단성론파의 주교 야코부스 바라다이오스(Jakobus baradaios, 500-578)는 에데사 동부 델라에서 태어나 니시비스에 있는 파실타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542년경 에데사 주교로 축성되었으나 단성론을 지지함으로써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에게 바라다이(누더기옷)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로마 군대의 체포를 피해 누더기옷을 입고 나일강에서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지역을 피신해 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유랑생활을 하면서 설교를 하고, 수도원을 세우고, 사제를 임명했다.
시리아 정교회는 지정학적으로 동서 문명의 교류가 활발한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시, 찬송, 문학 등이 발달하고, 사제들은 독서와 기도와 명상 등 엄격한 수도원 생활을 수행하며, 시리아어를 예배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중동의 이슬람과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시리아 정교회는 1960년부터 WCC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시리아 정교회는 시리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도 케랄라 주에도 시리아 정교회가 있다. 이를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Malankara Orthodox Syrian Church)라고 부른다. 이 교회가 고대 동방선교를 담당했던 사도 도마교회로 알려진 교회이다.
사도 도마는 1세기  중엽에 인도에 복음을 전파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도마는 처음에 북부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후에는 인도 남부 케랄라 주 코친(Cochin) 근방에 상륙하여 선교했다. 코친에는 당시에 유대교 회당이 있었다. 그 때가 주후 52년경, 그는 그곳에서 주후 72년 순교할 때까지 20여년간 동방선교에 주력했다.
도마의 신앙을 따르던 인도의 기독교인들은 16세기 포루투칼 선교사들이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의 신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교황의 통제 아래 있는 포루투칼은 인도 교회를 라틴 교회의 구조 안에 끌어들이기를 열망했다. 그리하여 포루투칼측은 1652년 3월 시리아에서 온 고위 성직자 아하탈라를 구금하고 고문했다. 이 일로 인도 교회 사제들은 1653년 1월 코친에 있는 마탄체리 성모교회에 모여 포루투칼 국왕의 지배에서 교회의 정신적, 행정적 그리고 자율성을 회복하기로 결의했다. 그것이 오늘날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가 된 것이다. 이 정교회는 1948년부터 WCC에 가입했다.

2. 이집트의 콥틱 정교회(Copts)
이집트의 콥틱 정교회는 주후 42년경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에 의해 설립된 교회로 전해진다. 그 때는 로마 황제 네로가 재위하던 시기이다. 마가는 처음에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나 차츰 이집트 원주민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이집트 원주민을 콥틱족이라 한다. 그들은 고대 파라오의 후손들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콥트(copt)라는 뜻은 ‘Egypt’를 이르는 말이다.
콥틱 정교회를 대표하는 총대주교좌는 알렉사드리아에 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와 아프리카 총대주교’라고 부르며 ‘교황’이라는 호칭을 갖고 있다. 콥틱 정교회는 세계적으로 약 2000만명 정도의 신자가 있으며, 이집트에는 약 1500만명 정도가 있고, 나머지는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독일 등에 흩어져 있다. 이들 중에는 지식인과 상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이집트의 콥틱 정교회는 기독교 세계에 두 가지 큰 공헌을 남겼다. 초기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는 가장 오래된 신학교육 기관이었다. 이 교리학교는 주후 190년경 판타내우스의 지도 아래, 아테네의 아테네고라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교부 오리게네스 등 성경  주석과 비교학 분야에서 특출한 신학자들을 배출했다. 이 학교는 단지 신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과학과 수학, 인문학 등도 가르쳤다. 다른 하나는 수도원이다. 3세기 안토니오(251-356)와 파코미오(290-346)에 의해 이집트에서 시작된 수도원은 사막 교부들의 교육과 저술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639년 이슬람이 이집트를 침공해 정치적 격변기가 있었으나 이집트인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인으로 남았다. 이집트의 우마이야 왕조는 상인들이 이슬람교를 믿도록 유도하기 위해 세금정책으로 콥틱 교도들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콥틱 교회는 사라지지 않고 이집트 국민의 약 15%에 이르는 최대 그리스도 교파를 형성하고 있다. 이슬람 점령 이후 현대 했기까지 많은 박해를 받은 교회이다. 콥틱 정교회는 1948년부터 WCC에 가입했다.
또 에디오피아 정교회는 본래 이집트의 콥틱 정교회의 지도를 받았으나, 1959년 콥틱 정교회 총대주교 키릴로스 6세에 의해 에디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총대주교좌를 갖게 되었다.  
또 에리트레아에도 콥틱 정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에리트레아 테와히도 정교회라는 이름으로 1994년 에디오피아 정교회에서 독립하여 총대주교좌를 가졌다. 에리트리안 정교회는 2003년부터 WCC에 가입해 있다.
콥틱 정교회, 에디오피아 정교회, 에리트레아 정교회, 이 세 교회는 오리엔탈 정교회들과 상호 성사 교류를 하고 있으며, 다만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를 으뜸 주교로 인정하고 있다.
에디오피아(Ethiopia)에는 인구가 약 1억1950만명이고, 홍해를 끼고 있는 에리트레아(Eritrea)는 인구가 약 360만명인데, 에디오피아 교회는 교인수가 약 2900만명이고, 에리트레아에는 180만명 정도의 교인이 있다.  

3. 아르메니아 사도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
아르메니아 정교회라고도 불리는 이 교회는 사도 바돌로매와 다대오가 복음을 전했다는 전통에 근거하여 '사도 교회'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르메니아는 계시자 성 그레고리우스가 주후 300년경 아르사키드 왕 타리다테스 3세를 개종시킴으로써 역사상 최초의 그리스도교 국가가 되었다. 아르메니아는 로마제국이 392년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기 90년 전 주후 301년에 이미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이 교회는 처음에는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리아 교회의 지도를 받으며 시리아 문자를 사용했는데, 5세기에 이르러 성 메스로프가 아르메니아 문자를 만들고 성경을 아르메니아어로 번역했다.
이들은 506년 지방회의인 드빈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이 두 개의 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 칼케톤 공의회(451년) 의 결정을 반대했다. 그리스도가 오직 '말씀이 육신이 된' 한 가지 본성(신성)만 가졌다고 주장하는 단성론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그리하여 아르메니아 교회는 정통파 가톨릭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이집트의 콥틱 정교회와 시리아의 야곱파 교회와 교제했다.
계시자 성 그레고리우스와 그를 계승한 처음 주교들은 에치미아진(Echmiadzin)에 총대주교좌 관구(교회 최고행정부)를 두었다. 그 후 485-927년까지는 드빈으로 옮겼다가, 그 뒤 여러 곳으로 전전했다. 아르메니아 정교회는 총대주교를 '가톨리코스'(katholikos)라고 부르는데, 가톨리코스는 보편적 교회를 뜻하는 가톨릭이라는 말의 어원이다.
아르메니아 정교회에는 교권과 정치적 이해 관계로 오늘날도 아르메니아 교회를 대표하는 두 명의 가톨리코스가 있다. 하나는 모든 아르메니아인들의 최고 가톨리코스로서 에치미아진에 관구를 두고 있고, 다른 하나는 시스(sis)의 가톨리코스로서 현재 레바논 안텔리아스(Antelias)에 관구를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아르메니아 전체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되는 사람은 에치미아진에 있는 가톨리코스이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자들은 레바논의 안텔리아스에 있는 가톨리코스를 지원한다.  
아르메니아 교회가 총대주교좌가 둘로 나누어진 것은 정치적 문제와 연관이 있다. 전통적으로 에치미아진의 총대주교 가톨릭코스가 현재 실질적인 최고 의장 주교의 역할을 수행한다. 동로마 시대인 1293년 킬리기아 수도 시스로 가톨리코스 관구를 옮겼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 터키 동남부 킬리기아 지방엔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살았을 뿐 아니라, 한때는 그곳에 아르메니아 왕국이 세워졌다. 그래서 이곳에 가톨리코스 총대주교좌가 설치되었는데, 이후 1441년 에치미아진에 총대주교가 다시 선출되었다. 총대주교좌가 에치미아진과 시스로 나누어진 것이다.
그후 1894년부터 3년동안 계속된 오스만 제국의 박해와 1915년 터키의 인종청소로 아르메니아인이 100만에서 200만명이 학살당했다. 이로 인해 아르메니안 디아스포라와 함께 시스의 가톨리코스가 레바논 안텔리아스로 옳겨가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이스탄불에도 총대주교청이 있다(사실상 총대주교가 넷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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