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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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중국 우한에서 발행한 코로나19는 전례없는 재앙으로 우리의 일상에 들어왔다. 단 수 개월 만에 그야말로 전 세계를 뒤덮은 바이러스의 공포는 과학과 기술의 정점을 자부했던 우리 인간의 오만을 비웃듯 인류를 파멸해 나갔다.

 

허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전 세계 인류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을 통해 코로나19의 파해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감염 초기 한때 중국에 이어 최다 확진자가 나오는 등 전 세계의 우려를 받기도 했지만, 정부의 재빠른 대처와 생명을 건 의료진의 헌신, 그리고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한 우리 국민들의 노력으로 인해 지금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멈춰버린 세상 속 경제는 추락했고, 서민과 소상공인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도무지 수치를 가늠할 수 없는 피해 속에, 정부와 지자체는 역사상 처음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정책을 실시키도 했다. 처음이었지만 모두가 하나되어 이뤄낸 결과물,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코로나19를 이겨낸 이유일 것이다.

 

한국교회의 코로나19 대처 나쁘지 않았다

단기간 내 위기에 대한 새로운 해법 모색

코로나19에 대한 위협이 한층 줄어든 지금, 냉정한 시각으로 한번 되돌아봤으면 하는 것이 바로 한국교회다. 코로나19가 한창 정점에 치닫을 무렵, 그와 비례하게 교회의 예배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이 함께 고조됐었다. 언론들에 의해 예배를 고집하는 교회들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온상처럼 비춰졌고, 어느순간 비기독교인 뿐 아니라, 일부 신앙인들의 지탄마저 견뎌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모든 예배, 법회를 취소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한 불교와 천주교 등의 사례가 한국교회와 비교되며, 국민들은 또 한 번 교회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내 코로나19 확산의 본격 시발점이 됐던 신천지가 한국교회와 같은 기독교, 예배의 범주에 놓이며, 국민들의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물론 그 여론에 편승해 신천지 비난에 열을 올렸던 한국교회가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몸을 옭아맸다는 것은 매우 서툰 대처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냉정히 돌아볼 때 한국교회의 대처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교회 내 몇몇 확진 사례나, 반정부적 성향의 교회를 예로 들어, 이를 교회 전체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배제한다면, 한국교회는 기대 이상의 대처를 보여줬다.

 

물론 교계 언론 기자의 이러한 평가를 자기 진영에 대한 너무 과한 자기 칭찬이 아니냐는 비아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엄밀히 볼 때 전체 확진자 수 중 교회 내 확진은 그리 많지 않으며, 오히려 과도하게 쏟아지는 비난과 감시에 필요 이상의 방역과 소독을 해야만 했다. 마치 코로나19와의 전쟁 승리에 있어 최대 관건이 교회라도 되는 양 교회는 공무원들과 언론의 관심은 도를 넘어섰다. 당시 술집, 클럽 등의 유흥시설이나 pc, 당구장 등의 오락시설 등을 배제한 채 오직 교회만을 상대로 제재에 나서는 모습에 분개한 한 여자 성도가 줄자를 들고, 직접 공무원들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측정하며, 화제를 모은 유튜브 영상은 정부의 교회 몰이에 대한 분명한 모순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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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교회들은 눈을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는 이들 앞에 한 톨의 꼬투리라도 잡히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아무도 나오지 않는 예배당을 소독약 냄새가 가득하도록 매일같이 뿌리고 닦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는 정부 지자체 산하의 관공서의 방역 수준에 준하는 것으로, 일부 교회들은 부득이하게 출입하는 인원들까지도 감시코자 열 감지기까지 설치하는 치밀함을 보여야 했다.

 

결정적으로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회들은 온라인 예배를 택했다. 일부에서는 고작 예배의 방식을 온라인의 바꿨을 뿐인데, 이를 두고 엄청난 희생을 한 것인 양, 유난을 떤다고 할 수 있으나, 이는 기독교의 존재이유, 예배의 가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지일 뿐, 기독교에 있어 예배는 생명 그 자체라는 온라인 예배의 선택은 교회로서는 엄청난 결단일 수밖에 없다.

 

역사 이래 처음으로 진행한 온라인 예배앞에 큰 혼란이 예상됐지만, 의외로 교회는 차분했고, 성도들은 잘 적응했다. 특히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긴급 상황에 대한 여러 시스템들이 선보여지면서, 한국교회는 단기간 동안 위기 속 새로운 해법을 모색할 수 있었다.

 

대형교회들이 보여준 사회적 순기능 돋보여

이번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은 소위 메가처치로 불리운 대형교회들의 대처였다. 사실 그간 한국교회 내 대형교회들에 대한 언론과 국민들의 인식은, 온갖 정치 다툼과 재정 및 도덕성 문제가 가득한 그야말로 부정의 온상이었다. 물론 이러한 이미지는 교회 내 고발을 일삼는 일부 편협한 시선을 가진 세력들에 의해 호도된 측면이 있었다. 대형교회의 순기능은 완전히 외면한 채, 오직 비난을 목적으로 일각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눈덩이처럼 부풀려 왜곡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담임 이영훈 목사), 새에덴교회(담임 소강석 목사), 사랑의교회(담임 오정현 목사), 광림교회(담임 김정석 목사) 등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초대형교회들이 보여준 헌신과 리더십은 한국교회의 존재적 가치를 보여준 매우 휼륭한 사례로 평가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사회와 교회 향한 나눔 선두

기독교의 사회적 구제 앞장서 실천

먼저 세계 최대교회로 꼽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교회의 나눔과 복지를 이끌었다. 확산 초기 코로나로 고통받는 이웃과 지역을 위해 10억원을 쾌척한 것은 물론, 국내 최대 기도원인 파주 오산리 기도원을 생활치료시설로 기꺼이 내놓았다. 사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세계 최대교회라는 타이틀로 일각에서 대형교회를 무분별하게 비난할 때 늘 1순위에 등장하는 교회지만, 현실은 이와 많이 다르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사회적 복지 기여는 국내 최대 수준으로 매년 전체 헌금액의 상당수를 나눔과 복지를 위해 내놓고 있다. 여기에 굿피플, 조용기 자선재단 등 굵직한 구호 나눔 NGO 단체를 주도적으로 지원하며, 기독교의 사회적 구제를 앞장서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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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코로나19 대처에 있어 대형교교회들 역할이 유독 돋보였던 것은 개교회들의 고통 분담에 앞장 섰다는 점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소속 교단인 기하성총회와 함께 코로나19로 재정적 타격이 심각한 미자립교회들을 위한 월세 지원에 나섰으며, 사랑의교회와 새에덴교회도 미자립교회에 대한 긴급 지원 정책을 앞장서 펼쳤다.

 

사실 금번 코로나19를 한국교회가 잘 이겨내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는 엄청난 위기가 있었고, 치열한 눈물이 있었다. 코로나 위기 속에 힘들지 않은 곳을 찾기가 더 어렵겠지만, 미자립교회들은 정부나 지자체 지원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가장 최악의 피해를 본 곳 중 하나였다. 가장 현실적으로는 당장의 임대료와 공과금을 내지 못하면, 교회를 문 닫아야 하는 상황, 한국교회 70% 이상의 미자립교회임을 감안할 때, 금번 코로나19는 한국교회에 부흥 이래 최대 위기임이 분명했기에, 이러한 대형교회들의 헌신은 메마른 사막에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물론 일각에서는 재정이 넉넉한 대형교회들에게 이러한 지원이 뭐 별거냐는 딴지를 걸 수 있지만, 표면적이 큰 만큼 코로나19의 무자비한 폭격 앞에 실제 엄청난 수준의 피해를 입었기에, 이러한 지원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허나 이들 대형교회들은 오히려 사회와 교회를 위한 나눔, 복지 비용은 전혀 줄이지 않았다. 내부적인 긴축 정책을 시행하면서도, 오히려 외부 지출은 이전보다 늘린 모습이었다. 아직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 것은 대형교회들의 나눔과 각 교단들의 긴급 구호 정책이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새에덴교회, ‘정부-교계갈등 속 대화 통한 해법 모색

코로나19 이후 교회의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 마련

코로나19는 위와 또 다른 측면에서 대형교회의 새로운 역할을 드러내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정부와 교회간의 갈등이 극에 달할 시점에, 이에 대한 중재를 담당했던 것도 이들 대형교회였다. 이영훈 목사와 소강석 목사 등의 교계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정부, 지자체 관계자들과 대화하며, 서로간의 협력과 이해를 구하는데 주력했다. 일부 기독교 보수세력의 이슈로 많은 국민들이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오해를 하고 있지만, 사실 이들 목회자들은 교계를 대표해 밤낮 없는 대화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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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교회의 예배 진행에 있어 파격적인 대처와 즉각적인 제재로 교계의 반발을 극심하게 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직접적인 대화와 중재에 나선 소강석 목사의 존재감은 매우 컸다. 당시 교회 예배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워낙 극에 달한 시점이라, 이 지사의 제재 정책에 대다수 국민들이 동조를 보내고 있어, 교회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소강석 목사는 무조건적인 반발이 아닌 대화와 토론을 통해 교회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해소하며, 불필요한 여론 확산을 막았었다.

 

소강석 목사와 새에덴교회는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의 회복을 도모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사실 금번 코로나 사태에서 온라인 예배의 성공적 전환이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임시 긴급방편으로 시작한 온라인 예배지만, 그 편리함과 효율성을 맛본 성도들의 입맛은 자칫 코로나 이후, 정상적 상황에서도 온라인 예배를 고집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 예배가 중단된 지난 2달여 간, 흩어진 교인들이 코로나 극복 이후 다시 온전히 모이리란 보장이 전혀 없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출석 성도가 약 50%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회의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근 새에덴교회가 주최하고 소강석 목사가 강사로 나선,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 세움 세미나에 무려 1000여명의 목회자와 신학생이 참석했다는 것은 현재 이에 대한 교회적 고민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 수 있다. 애초 500명으로 기획했던 동 세미나는 전국에서 빗발치는 참가 요청으로 결국 1000여명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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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세미나에서는 새에덴교회는 고통 분담 차원에서 먼 거리에서 찾아온 목회자들의 참가비를 돌려주는 것은 물론, 교통비까지 제공하는 섬김을 보이기도 했다.

 

사랑의교회, 온라인 시대의 수준 높은 시스템 주목

중보기도 통해 교회 본연의 사명 감당

사랑의교회는 온라인시대의 새로운 전략과 목회 운영을 한국교회에 선보였다. 4차산업 시대의 도래에 대비해 그간 꾸준한 연구와 시스템 구축을 시행해 온 사랑의교회는 코로나19 속 가장 빛나는 대처를 보여준 교회로 평가 받는다. 사랑의교회는 온라인 예배로의 유연한 전환은 물론이고, 각종 모임과 교육까지 쌍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는 화상회의프로그램을 선보이며, 많은 관심을 모았다. 특히 개교회들이 스마트폰과 온라인 공간을 저렴한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내놓은 것은 향후 한국교회의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될 정도다. 사랑의교회의 오정현 목사는 교회가 가진 기술과 노하우를 하나도 빠짐없이 한국교회 전체와 공유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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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의 노력은 위기 속에서도 사회와 국민 전체를 위한 중보기도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더욱 돋보였다. 사랑의교회가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시작한 ‘SARANG ON 정오기도회는 교회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였다. 사회와 국민을 위기와 고통 앞에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그들을 대신해 치유를 도모하는 것은 세상 앞에 교회가 행해야 할 최대의 사명이다. 사랑의교회가 이를 단시간에 이를 브랜드화 하고, 전 성도들의 동참을 유도한 것은 위기가 짙어질수록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풍토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이미 코로나와 관계없이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고, 최근 가속화됐다. 혹여 한국교회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면, 그건 코로나19의 탓은 아닐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19에서 보여준 한국교회의 모습은 오히려 그동안 내재된 위기까지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또 다른 희망을 주고 있다. 그렇기에 위기가 기회라는 오래된 명언이 오늘 유난히 우리에게 와 닿는다. 칠흑같은 어둠이 후에는 반드시 새벽의 광명이 찾아온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한국교회 위기의 정점이었기를 바라는 것은, 바로 내일 눈부신 새벽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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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코로나19’, “위기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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