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36
2020/05/15 16:1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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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가의 자녀 교육 (창세기 27: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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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5), 어버이날(8), 부부의 날(21) 등이 5월에 있고, 교회에서는 첫째 주(3일)를 어린이 주일, 둘째 주(10일)을 어버이 주일로 지키고 있다. 그래서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가정 창조가 그 창조의 크라이막스이고 가정창조로 창조 사역이 끝난다.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창조가 마치 가정 창조를 향하여 진행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가정의 꽃, 자녀들의 교육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살펴보고자 한다.
자녀들은 대부분의 경우 낳기는 쉽지만 기르기가 힘들다. 첫째는 건강하게 길러야 하고, 둘째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도록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시간과 돈과 에너지와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의 경우 자식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자식들에게 끌려다니고, 학교 선생들에게 끌려다니고, 사회 분위기에 끌려 다니기 십상이다. 어떻게 자식을 길러야 잘 기르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이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조상들도 자식들 때문에 곤혹을 치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특히 이삭과 리브가의 경우가 그렇지 않는가 싶다.
이삭은 나이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자식을 얻지 못하였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를 위하여 기도했다. 그의 부친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사라의 몸종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아 가정에 온갖 풍파를 일으켰는데, 그의 아들, “이삭은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의 아내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다”라고 말하고 있다(창 25:21). 기도라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이시고,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들 부부에게 쌍둥이 아들을 주셨다. 그러나 이 쌍둥이들이 배 속에서 서로 싸웠다. 그래서 리브가는 아주 고통스러웠다. 그런 가운데 리브가는 “이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라고 말하면서 여호와께 물었다”라고 했다(25:22). 이삭과 리브가는 자식을 주시라고 기도하고, 아이가 태속에 있을 때도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그의 자식들에 관한 장래의 일을 말씀해주셨다. 그의 태속에 두 민족이 들어있고,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강하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큰 자는 에서이고, 작은 자는 야곱이다. 먼저 나온 에서는 그의 몸이 온통 털로 덮여 있어서 털외투라는 뜻에서 에서라고 그 이름을 지었고, 나중에 나온 야곱은 그의 형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해서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지었다.  
여기서 볼 때 이삭과 리브가는 자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자식이 없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식을 주셨다.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의 것이 아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이 마치 자기의 소유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자식을 자기 뜻대로 기르려고 하고, 자기의 연장선 상에서 자식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자식을 다루려고 한다. 그리하여 많은 경우 부작용을 초래하고, 자식과 갈등을 빚는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자식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느니라”(렘 1:5)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이 사람을 그 어미 뱃속에서 지었다고 말씀하시며, 어미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에게 계획과 뜻이 있어서 구별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자식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생명이다.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두시고 지으신 거룩한 존재, 구별된 존재이다.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내 자식이기 때문에 귀여워하지만, 그보다 하나님의 자식이기에 귀하에 여겨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이 들어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이삭이 그의 장자 에서를 축복하기 위하여 에서에게 들에 나가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명한 것이다. 이삭은 이 문제를 리브가에게 말하거나 묻지 않았다. 그러나 이 부자의 대화를 뒤에서 들은 리브가는 그의 남편 이삭이 두 아들을 잉태하였을 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어긋나게 한 것이라서 놀라고 이를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급히 둘째 야곱을 불러 가축 떼가 있는 곳에 가서 새끼 염소 두 마리를 잡아 오라고 지시하며  “내가 그것들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 것이니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갖다드리면, 그가 잡수시고, 돌아가시기 전에 너를 축복할 것이다.”(9,10)라고 말한다. 그러나 야곱은 “보십시오 우리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고 저는 매끈매끈한 사람입니다. 만일 아버지께서 저를 만지시면, 저는 그의 눈에 속이는 자가 될 것이며, 제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가 받겠다. 오직 너는 내 말을 듣고 가서 나에게 가져오너라”고 했다(13). 그래서 야곱은 염소새끼를 잡아 그의 어머니에게 가져갔고, 리브가는 그것으로 별미를 만들고, 야곱의 매끈매끈한 곳에 염소들의 가죽을 입히고, 그의 형 에서의 좋은 옷을 가져다가 야곱에게 입혔다. 야곱은 별미를 들고, 아버지 이삭에게 가지고 가서 자기를 마음껏 축복해달라고 말한다. 뜻밖에 빨리 별미를 만들어 온 것을 이상하게 여긴 이삭은 그 자초지종을 물었는데, 야곱은 “여호와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제게 쉽게 만나게 하셨습니다.”(20)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삭은 야곱을 가까이 불러 그를 만져보고,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구나”(22)라고 말하고, 그에게 입을 맞추고, 그의 옷의 향내를 맡고, 그에게 장자의 복을 빌었다(27). 그러나 이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뒤 늦게 이 사실을 알게 에서는 자기를 속이고 자기의 축복을 가로챈 그의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칼을 갈았다. 리브가는 형제간의 칼부림을 피하도록, 야곱을 그의 친정으로 피신시켰고, 야곱은 이로 인하여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게 된다. 그는 이후 20년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했고, 그의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리브가는 참으로 믿음 있는 현모양처임에 틀림없다. 남편이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는 누를 범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일을 꾸며, 바로 잡았다. 아들을 위하여 별미도 만들고, 야곱을 에서로 바꾸기 위하여 야곱에게 염소의 털을 붙이고, 심지어 이 사실이 탄로가 나서 복이 아니라 저주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야곱을 달래며, 야곱이 받을 저주를 자기가 대신 받겠다고 말하며 설득한다.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게 하려고 온갖 지혜와 능력을 동원하고 심지어 저주를 감수하는 이 모습은 참으로 눈물겨운 모성애이고, 남편에 대한 헌신적인 내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가정의 평화가 산산 조각 나버렸다. 분명 잘 못 된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기도하며 잉태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자식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이들 부부는 자식을 축복하는 이 문제를 두고는 함께 기도했다는 말이 없다. 이삭은 이삭대로 가장으로서 할 일을 하고, 리브가는 아내로서 남편을 돕고, 자식을 돌본다. 그러나 쌍둥이를 하나씩 나누어 편애하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 아닌가 싶다. 이 사건의 중심인물은 리브가이다. 리브가는 다음 두 가지 점에 있어서 자녀 교육에 실패하고 있다.
첫째는 리브가의 열심이다. 리브가는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한 발 앞서 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정하신 뜻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섬기게 하는 뜻을 정하셨다면 하나님께서 이를 이루실 것이다. 그런데 리브가는 남편 이삭의 잘못을 고쳐서 자기가 하나님이 뜻이 이루어지도록 지혜를 짜고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리브가는 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지켜보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식들의 문제를 두고 한 발자국 뒤로 물어 서 있어야 한다. 자식은 내 소유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식이다. 하나님께서 뜻하신바가 있어서 나를 통하여 이 세상에 보내셨기 때문이다.
둘째는 리브가의 방법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야 한다. 아무리 목적이 선하고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이루는 방법이 악하고 거짓되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선을 이루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악을 낳는 것이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기 위하여 거짓을 꾸미고, 야곱에게 거짓을 가르치고, 거짓을 행하게 도와준다. 어미로서 자식에게 선행을 보이고, 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살도록 가르쳐야 할 자가 오히려 거짓을 장려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도록 독려한다. 심지어 자식의 저주를 자기가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이 일을 조종하고 진행한다. 자식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도록 기르고 훈련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복을 받도록 하나님의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려고 하면서 대신 스팩을 만들어주고, 이력서나 추천장을 거짓으로 만들어 주어서는 안 된다. 목적을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자기도 망하고, 자식들도 망하고, 사회도 망하게 하는 짓이다. 자식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쳐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살도록 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을 중심한 자녀 양육, 하나님을 앞서 가지 않는 자녀 교육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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