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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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왜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처럼 다가오지 않는 것일까? 만일 매혹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면 나도 뜨겁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을 텐데........’

 

그 다음날 예배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속된 인간의 사랑같이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성간의 사랑은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려면 우물에서 물을 기르는 것처럼 먼저 힘쓰고 애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본문 신30:2절 이하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것을 온전히 따라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이 말씀을 요약하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순종하면 사랑하게 해주겠다.”입니다. 사랑은 한꺼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도 하나님께서 하게 해주셔야 할 수 있는데 먼저 순종하는 일부터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마음을 아시고 목사님을 통하여 응답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 때 받은 은혜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신앙인들이 느낌을 의지하면 환경에 지배를 받고 마귀의 속임에 놀아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지 자신의 감정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느낌이 없어도 순종하라고 하셨으니 순종하는 것이고,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사랑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느낌은 거짓입니다. 날씨처럼 수시로 변합니다. 다말을 연애하여 심화로 병이 들었던 암논이 자신의 정욕이 채워지자 이전 연애 감정이 이젠 미움으로 바뀐 것을 예로 들수 있습니다(삼하13:1-22). 순종하고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감정까지 주십니다. 그 때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감정입니다.

 

7:22에는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라고 나옵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것은, 예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속 사람이지 육신이 아닙니다. 육신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려고하니 문제가 됩니다.

 

육신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육신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착한 양심을 써서, 속사람을 쓴 사람들은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속사람을 써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하여 먼저 묵상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39:3). 묵상할 때 화가 발합니다. 감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영원한 구원 뿐만 아니라 현재 함께 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고, 돌아보아 주시는 은혜를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는 눅7:36 이하의 한 여인처럼 자신이 사함 받은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많이 깨달을수록, 사함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수록 주님을 많이 사랑합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7:47). 빚을 탕감 받은 일이 많은 사람일수록 고마움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속사람을 따라 순종하고 묵상하며 많은 죄 가운데서 사함 받은 것을 깨닫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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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예수님을 사랑하려면’(신 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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