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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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 위기가 좀처럼 사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초창기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했던 우리나라는 점차 종식 단계에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 미국과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의 확산세는 여전히 절정에 치닫고 있다.

 

예배 회복, 무엇이 먼저인가?

전 세계에 펜데믹을 불러온 코로나19는 한국교회의 생태도 완전히 바꿔 놓았다. 130년 역사 이래 처음으로 온라인 예배가 대대적으로 시행됐고, 그나마 현장 예배를 유지하던 교회들도, 주일예배 외에 여타 활동은 전혀 하지 못했다. 예배를 중단치는 않았지만,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수가 급격히 줄며, 예배의 절대성은 자연스레 무뎌졌고, ‘주일성수라는 한국교회가 지켜온 숭고한 가치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바이러스 확산이 대폭 둔화됐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확산 절정기에 유독 교회의 예배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국민적 여론이 집중됐던 터라, 쉽사리 예배 재개를 결정키 어려웠는데, 확진자가 급격히 줄며, 오는 31한국교회 회복의 날까지 기획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안과 우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일각에서는 교회 예배 진행을 두고,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고, 타종교와 비교하며, 기독교의 이기성을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종교적 신념이나 신앙에 대한 무지,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현상이기에 이해하고 넘길 수 있는 부분, 진짜 문제는 한국교회 내부에 존재한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한 한국교회의 가장 큰 불안은 회복의 가능성이다. 바이러스 사태라는 전례 없는 위기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등졌고, 예배를 눈감았다. 약소화된 현장 예배, 온라인 예배 등 각 교회들이 저마다의 사정에 맞춰, 위기 속에서도 예배를 지켜내려는 피나는 노력을 보였지만,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예배가 무너지고, 성도가 떠났다는 씁쓸한 결과는 외면하기 어렵다.

 

온전한 예배에 대한 신학적 정립 시급

한국교회는 이번 기회를 통해 교회와 예배, 주일성수 등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온라인 예배라는 전례 없던 새로운 형태의 예배에 대해 신학적인 논의를 통한 합의된 의견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택한 온라인 예배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향후 정상적인 상황에서 코로나와 관계없이 지속될 온라인 예배에 대해서는 한국교회가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이미 많은 교회들이 현장예배의 회복과는 별개로 온라인 예배는 꾸준히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여전한 우려로, 현장 예배를 거부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 차원인데, 사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은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강한 상황에, 이러한 대처는 오히려 온라인 예배의 고착화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온라인 예배에 길들여진 많은 성도들이 주일 교회에 출석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70~90년대 급성장한 바탕에는 주일성수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앙의 절대적 자세로 주일성수를 꼽으며,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 들였다. 유럽과 미국의 교회들이 무너지는 중에도 한국교회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일성수에 대한 개념이 워낙 투철했던 탓이었다.

 

허나 지난 3개월 여, 온라인 예배를 경험한 성도들에 주일성수라는 절대적 명제는 많이 흐려졌다. 굳이 교회를 나가지 않더라도, 아무 곳에서나 온라인 예배로 주일을 지킬 수 있다는 편리함과 시대적 변화와 발전에 따른 새로운 예배 형태라는 합리화된 사고가 결합되면서, 수많은 성도들이 매우 당당히 교회를 외면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주일성수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그동안 주일 오전 교회라는 특정 장소에 나가 예배를 드리는 것을 주일성수로 여겼다. 어느새 주일성수=교회출석동일화 됐고, 한국교회 역시 부흥의 편리함을 위해 이를 자연스레 성도들에 인식시켰다.

 

허나 이러한 정의 속에는 수많은 모순이 뒤따랐다. 주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에 따라, 세상 일을 멈추고, 교회에 나와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교회 안에서 교회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감당하는 직업은 세속적이지만, 교회의 일은 주의 일이기에 주일성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당연한 인식이 박힌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거스틴의 두 왕국론이나 이를 발전시킨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에 크게 반한다. 단순 교회나 목회자의 일만 주의 일, 성직이 아니며,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하는 모든 일과 직업 역시 주의 일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퇴색된 결과다.

 

온라인 예배 역시 주일성수로 여길 수 있는 것은 주일성수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낳은 폐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의 대다수의 성도들은 예배에 대해 단순히 교회에 나와 설교를 듣고, 헌금을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설교만큼 중요한 예배의 요소는 바로 교제. 성도들 간의 교제가 없는 예배는 결코 예배가 아니다.

 

온라인 예배가 완벽한 예배가 될 수 없는 근본적 이유는 바로 교제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물론 온라인 상의 SNS나 채팅 등을 교제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이 역시 한계가 있는 것은 예배의 교제 속에는 단순히 말을 통한 서로간의 의사소통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 대화 뿐 아니라,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누며, 생각과 신앙을 나누는 모든 것이 교제의 범주에 들어간다.

 

온라인 예배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예배 중단의 위기에서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게 해 준 나름의 훌륭한 대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시임시로 끝나야 한다. 스마트폰 속 설교를 들으며, 스스로를 자위하는 것은 예배를 그저 기독교인의 자격을 유지키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런 결과를 가능케 한 것은 한국교회와 목회자의 그릇된 가르침에서 비롯된다.

 

한국교회가 예배의 회복을 이루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성도들에게 예배의 진정한 의미와 주일성수의 목적과 행함을 온전히 가르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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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한국교회의 예배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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