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여성의 지위를 변화시킨다.
2020/05/28 14:0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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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삼 박사(전 한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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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용어로 성평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선교하던 추장기만 하더라도 여성의 지위는 남성보다 훨씬 뒤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사실 그때에는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갖는다는 것이 호사스러운 시기이기도 했다. 즉 여성의 호칭을 이름 대신에 ‘아무개 딸’, ‘아무개 댁’, ‘아무개 어미’, 등으로 호칭되는 남성과의 관계의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철저한 예속 상태였다.
여성들은 또한 계급의 차이에 의해서도 차별받는다.. 미 감리교의 선교사인 헐버트는 상류계층인 양반, 중인 층의 평민, 하층계급인 무당, 노예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 계급의 상태에 따라 여성들은 경제력에 있어서나 은둔의 정도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지적한다. 낮은 계급의 여성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삶은 거칠고 또한 이름 모를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류계급의 여성들에게는 안 주인으로서 외부세계의 활동을 배재당하여 조그마한 자유도 허용되지 않은 채 일생을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살아갔다.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 여성상은 남성의 지배구조와 이념으로 억압과 소외를 당했을 뿐 아니라 같은 여성이면서도 세습적으로 내려오는 신분적 차이로 인해 또다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겪는 이중고를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땅에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왔다. 그리고 여성들의 지위가 점차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여인네들은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집안에서의 조상 숭배 예식 등 중요한 예전에 여자들이 참석할 수 없는 반면에 교회 내의 예배에는 여자들이 참석하면 큰 환영을 받는다. 죽은 후의 천당은 현실의 힘들고 단조로운 삶에 대한 큰 위로였으며 교회와 성경공부는 여인들에게도 새롭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 주었고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모임을 가질 수 있게 했다. 동시에 남자들과도 공동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무엇인가를 갖게 했다.
여인들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돕는 자로 등장한 여인들을 보았고, 빌립보 성의 루디아 같은 여자는 교회를 창설하고 인도해 가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러한 말씀들은 지금까지 여자들에게 허락되었던 어떤 역할보다도 더 긍정적인 것으로서 기독교가 전래됨으로써 여인들은 자신들의 이미지와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슨 가치를 지녔는지를 파악하고 새롭게 가치관을 수정했다. 문자 그대로 수천에 달하는 한국 여인들은 교회를 통해서 새로운 이름을 얻었고 새로운 자아를 정립하며 새 희망을 얻었다. 이들은 변화된 새 자아의 모습으로 가정은 바뀌었고, 그들의 동네와 사회를 바꾸는 교회의 공동체가 되었다. 그들이 받은 복음의 역동성을 숨기지 아니했고, 빛으로 드러나 어둠을 밝혀 주었다.
복음이 사회 속에 뿌리를 내리면 환경이 변화되기 시작한다. 사회적으로는 18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한민족의 절반이 되는 여성을 계몽시켜야만 자주독립이 성취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에 선교사들의 여학교 사업은 이 같은 한민족의 개화 열망의 돛을 달고 더욱 발전 확대될 수 있었다. 한국의 전통적 문화와 사회 구조론을 존중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여야 한다는 선교정책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하여 친근감을 갖게 했다. 언더우드 부인도 한국 여성 선교의 목표는 ““소용 있는 실제적인 기독교 영성” 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선교사들은 한국사회에 나타나는 가장 비합리적인 것만을 개혁하는 정도였으므로 여성 개종에 큰 저항은 없었다. 그들이 내세운 개혁되어야 할 생활 습관의 예로는 조혼, 축첩, 여아 매매 등이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공헌 덕택에 억압 상태에 놓였던 한국 여성들에게 기독교는 남성과 여성의 대등한 관계에서 대등한 위치를 회복시키고 신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우월감과 비천함을 해소시키는 빛으로 다가왔다.
선교사님들이 전해준 예수 복음의 결과는 오늘날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가? 필자가 보기에는 동양의 어느 나라보다도 여권 신장과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즉 신분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심지어 종교적으로도 여성은 이제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한반도에서 진행되었던 복음의 수용 결과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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