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총으로 인해 훼손된 한국교회 이미지 회복 절실
그도 그럴 것이 한기총은 수년 전 한교연과의 분열과 함께, 운영의 주축이 됐던 중대형교단들의 대거 이탈하며, 군소교단 연합체로 전락한 지 오래며, 교계 연합단체로서의 마땅한 활동도 전무했다. 그나마 한때 한국교회의 상징과도 같았던 한기총이라는 ‘이름값’으로 버텨내기는 했지만, 이마저도 어려웠던 것은 호랑이 떠난 굴에 주인을 자처하는 몰염치한 여우들이 득세했기 때문이다. 전광훈이라는 인물이 한기총이라는 배를 완전히 침몰시킨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사실 전 목사가 아니었어도 한기총은 머지않아 스스로 무너졌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견해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기총을 무너뜨렸다는 전 목사가, 한기총이 다시 회생해야 하는 명분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했던대로 어차피 한기총은 언젠가는 무너질 시한부 단체였지만, 전 목사가 대표회장에 올라, ‘한기총’이라는 이름을 정치와 사회 전면에 내세우며, 온 국민에 ‘한기총’을 각인시켰다. 한기총이라는 이름은 전 목사에 있어 자신이 1000만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명분을 작용했고, 전 목사는 이를 십분 활용했다. 무엇보다 21세기에 다시 되살린 극단적 반공주의를 ‘한기총’이라는 이름과 결합시키며,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물론 그러한 관심이 결코 달갑지만은 않았다. 전광훈 목사로 인해, 국민들은 한국교회 전체를 마치 극단적 반공단체로 인식했고, 목회자들은 썩은 정치에 물든 편협한 인물로 각인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 국민의 머릿속에 한기총이라는 이름 하나는 확실히 새겼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기총의 회복은 곧 한국교회의 회복으로, 전광훈 목사의 직무정지는 한국교회 회복을 위한 궁극의 첫 걸음이 된다. 그렇다면,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한기총은 전광훈 목사의 직무정지를 이끌어내며, 회복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딛는데는 분명 성공했다. 허나 문제는 그 두 번째 발걸음이다. 한기총이라는 배를 이끌 마땅한 선장도 없고, 딱히 가야할 방향도 없다. 모든게 막막함 그 자체다.
지금도 여전히 한기총의 주인은 군소교단이다. 한때 예장합동의 복귀설이 나돌며, 한기총 부활을 위한 새로운 구심점이 될 것이라 기대도 했지만, 전 목사 등장 이후, 이마저도 완전히 사그러들었다. 그나마 기하성이나 개혁총회 같은 중형 교단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기하성은 이미 한기총을 버리고 한교총에 전력한 지 오래고, 개혁총회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가볍디 가벼운 정치질로, 한기총의 중심교단으로서의 역할을 전혀 감당치 못하고 있다.
사실상 오합지졸이 되어버린 지금의 한기총이 스스로 회복을 도모하기란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다. 어쩌면 전광훈 목사가 단기간 내 한기총의 임원회와 실행위까지 장악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한기총 스스로가 자기 정체성을 지켜낼 힘도 의지도 없었던 탓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기총 회복을 위한 구심점이다. 한기총의 회복을 위한 모든 회원 교단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군소교단 연합체라는 지금의 한계는 결국 특정한 누군가의 의지만으로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 한기총에 있어 내부적인 연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정상화를 위한 비대위조차 서로 정통성 싸움에 휘말리는 최근의 모습은 이러한 기대를 애초에 박살내 버렸다.
그야말로 ‘최악’ 그 자체를 대변하는 한기총을 보며, 교계 전체가 혀를 끌끌 차고 있음에도, 정작 그 구성원들은 그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혼란 중에 튕겨 나올 잿밥을 취할 궁리만 하고 있다는 현실은 참으로 암울하기만 하다.
한기총이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고, 지금이 바로 그 적기라는 것에 이견이 없지만, 이 모두를 짊어질 인물 역시 보이지 않는다. 냉랭한 무관심보다는 차라리 혈기 가득한 비난이 낫다고 했던가? 어쩌면 한기총은 온 국민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전광훈 대표회장 시절을 ‘전성기’로 기억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