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나도 그곳에 있었다.
2020/06/12 12:5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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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삼 교수( 전 한세대 선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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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러고 보니 40년이 넘었나 보다. 한번쯤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제 하고 싶다. 오늘의 제목처럼 “5·18 나도 그곳에 있었다” 이다. 그 때에 필자는 광주 기독병원의 원무과에서 근무를 하였다. 광주 기독병원은 당시 5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 이었다. 그 병원에서 나에게 주어진 과업은 모든 환자들이 진료를 받거나 입원을 하기 위해 접수를 하면 처리하는 일을 맡았다. 따라서 모든 환자는 다 필자의 손을 거쳐야 한다.
   5·18 사건을 우리의 역사 속으로 끌고 들어와서 광주 시민과 대한민국을 어렵게 만든 장본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인 것 같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은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고 계엄을 확대했다.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정계를 대표하는 3김을 체포하거나 가택 연금하고 그외 정치세력을 모두 체포했다. 계엄이 확대되고 김대중 등의 정치인이 체포되자 광주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며 저항했다.
  광주시민들의 저항이 시작되기 전날 광주의 금동 126번지에 위치한 광주제일교회에서 지방회 주관으로 성경암송대회가 열렸다. 광주제일교회는 선교사였던 배유지 목사가 창립하였고, 이루에게 잘 알려진 이기풍 목사가 목회하였던 역사적인 교회 이다. 성경암송대회를 마치고 광주시내로 나아가는 길에 경찰들이 대열을 갖추고 행진을 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하는 시간이었다.
  5월 18일. 그날도 여느날 처럼 병원에 출근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시내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멀리 보이는 세무서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면서 하얀 연기가 하늘에 닿았다. 급기야 총소리가 들리고, 총상을 입은 환자들이 병원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사태는 더욱 복잡하게 얽혔다. 소총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뚜껑 없는 차량을 통해서 병원에 환자들을 실어 나르고, 시내의 상공에는 헬리곱터 소리와 “뚜뚜뚜뚜” 하는 연발이 발사되는 총소리로 뒤범벅이 되었다.  이미 사망한 시신들이 병원의 영안실을 채우고 있었다.
  병원은 총상을 입거나 다쳐서 입원한 환자들을 입원실이 모자라 수용할 수 없었다. 임시 방편으로 복도의 작은 공간이라도 비집고 간이침대를 놓고 환자들을 치료할 수 밖에 없었다. 전쟁도 이 보다는 못하리라고 생각할 만큼 처참하였다.
  수술을 해야 하는 데 피가 모자랐다. 그 때에 멀리서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는 헌혈에 대한 호소 였다. 헌혈자들이 병원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대부분 학생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그 당시 춘태여상고 학생인 윤금희 라는 학생도 헌혈에 참여 하였다. 그러나 헌혈을 마치고 되돌아가는 차량이 공격을 당하여 다시 시신으로 병원으로 돌아 왔다. 그렇게 죽은 그녀는 지금은 망월동 5·18 기념 묘지에 안장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광주는 사방이 봉쇄 되었다. 필자의 고향이 고흥이다. 어머님이 자녀들이 걱정이 되어서 광주로 와야 하는데 교통이 통제됨으로 화순을 넘지 못했다고 하였다. 광주는 고립되었고, 방송에서는 광주는 폭도들이 난동을 일으켜서 치안 세력과 충돌하여 몇 명이 죽었다는 뉴스를 내어 보내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야구 경기 같은 스포츠 중계를 집중적으로 방송하면서 국민의 관심을 호도하기도 하였다.
   잠시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 없었다. 일단의 시민군들은 도청에 모여 있었고, 치안을 담당할 경찰과 군인들은 광주 외곽에 주둔하였다. 그러던 중에 마지막 진압의 시간이 왔다. 그날도 필자는 병원에서 밤 세워 일을 하고 있었다.
  깊은 밤에 확성기에서 여성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도청으로 나와 주십시요! 진압 부대가 처들어 와서 무고한 시민을 죽이려 합니다”라는 멘트였다. 처절한 외침 이었다.
  몇 분 후에 먼 곳에서부터 개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렸다. 밖에 나가서 병원의 담장을 보니 머리에 힌 댕기를 두른 군인들이 빠르게 움직여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진행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얼마 후에 사직 공원과 도청에서 “우당탕탕” 하는 총성이 지속적으로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용해 졌다.
   필자는 왜 이 글을 ㅤㅆㅓㅅ는가? 이것은 역사이기 때문이다. 총에 맞아 죽은 자도, 총상을 입고 불구의 몸이 되었던 사람도, 나의 손을 거쳐서 접수되고 퇴원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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