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표적’
2020/10/01 07:3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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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목사 (신촌예배당, 웨이크 사이버신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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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12:40).

 

표적이란 sign으로 초자연적인 일이 외부에 드러나 진리임이 입증되거나 묵시 되는 일을 의미합니다(디럭스바이블). 성경에서 예수님께 대한 대표적인 표적으로는 아기 예수님을 구주로 입증하는 표적(2:2~1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표적(12:40), 사흘 만에 부활하시는 표적 등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2:19).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 목자들이 찬 공기를 마시며 밤중에 자기 양떼들을 지키고 있을 때 천사들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그들을 보고 크게 무서워하는 목자들에게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2:2~12)라고 말합니다.

 

그 때 다윗의 동네, 곧 베들레헴에 여러 아이가 태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아기가 구주이신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표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왕을 찾기 위해서는 궁전으로 가야 하지만, 천사들의 지시를 받은 목자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선 마구간이 있는 집을 물색하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얼마든지 깨끗하고 아름답고 훌륭한 곳에 나실 수 있었을 터인데 하필 마구간이었을까요? 또 그 사건이 표적이었을까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은 입으로 말씀하실 뿐 아니라 삶 자체가 말씀이셨습니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검소하고 가난한 모습을 보임으로 신자들 역시 그렇게 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머무시는 곳은 자신을 낮추는 사람, 심령이 가난하고 온유한 사람의 몸입니다.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구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메시아 되는 상징물을 요구합니다. 이 전에도 예수님은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한센 병 환자를 고치셨고,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셨습니다. 귀신들린 자의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가깝게는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아니하고 다시 표적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요나의 표적을 예로 들었습니다. 요나의 표적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생활은 항상 때를 향하였습니다. 그 때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아버지로부터 영광을 받을 때였습니다(2:4, 7:6, 12:23, 17:1). 그리스도임을 입증하는 표적 역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사건입니다.

 

이적과 기사는 사탄도 가끔씩 할 수 있습니다(13:1). 예수님께서도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24: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사탄과 거짓 선지자들이 할 수 없는 것은 죄인이 아닌 신분으로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일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일은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표적들 가운데 메시아임을 보여주는 핵심이었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교회,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십자가가 있습니다(9:23). 그것은 성령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게 하는 표적입니다. 아무리 말을 유창하게 하고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삶 속에 십자가가 없다면 성령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자신을 없는 자로 여깁니다(19:15). 십자가는 순종입니다(2:8). 자신의 좋은 생각과 의견일지라도 접어두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복종합니다.

 

2:18 이하에서 유대인들은 성전을 청결케 하는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는 표적입니다. 십자가가 씨라면 부활은 열매입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요즘 과일 역시 풍성합니다. 이러한 과일들은 씨를 심은 결과입니다. 심지 않고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는 수고를 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부활의 기쁨 역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심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영생을 받았고 또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기쁨을 계속해서 맛보려면 바울사도처럼 날마다 죽는 것을 심어야 합니다(고전15:31). 날마다 죽음을 체험한 바울은 날마다 부활을 맛보고 누리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 조차 항상 기뻐할 수 있었고,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됨의 표적이 십자가였듯이 십자가는 영생에 소망을 두지 않고 세상 복만 추구하는 사탄의 사자들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입니다.

 

십자가는 성령에게로 우리를 인도하고 성령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5:22~23). 바울이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진 것처럼, 예수 죽인 것을 항상 몸에 짊어짐으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과 죽을 육체에 나타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고후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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