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크기변환_사본 -강성률 목사.jpg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12:49~5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있었던 내용입니다. 그곳 또한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환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 못하고 눈먼 자 속에 들어 있던 귀신을 내어 쫓아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을 하게 되고 보게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사실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자 예수님의 하신 일을 오염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12:24). 쫓아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능력이라고 모독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마가는 예수의 친속들이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3:21)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미친 사람 취급한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삽시간에 그 지방에 퍼졌습니다.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 누이들에게까지 그 소문이 퍼진 것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오늘날 고쳐야 할 것입니다. 통신수단이 발달 된 오늘날에는 천리, 만리,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곳까지 삽시간에 퍼지기 때문입니다.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으러 온 것입니다.

 

그 사실을 누군가 알리자 예수님께서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며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며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모친과 동생들이라고 지시한 사람들은 제자들이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둘러앉은 자들”(3:34)로 나옵니다. 둘러앉은 자들이나 제자들의 공통점은 말씀을 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도 거기 있었겠지만 그들은 말씀을 듣기 위하여 참석한 사람이 아니라 흠을 잡기 위하여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거기에 해당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바로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께 말씀을 듣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예수님의 육적인 가족들은 그 순간 예수님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퍼뜨린 소문을 듣고 마음이 흔들린 것입니다. 아무리 친족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보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보다 세상 말, 철학과 사상에 귀를 기울인다면 예수님의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까?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10:27).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의 양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습니다(10:26). 예수님께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5:25).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10:17).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내려오십니다(10:44).

 

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기갈이 임합니다(8:11). 어릴 적에 복사기 대신에 묵지가 있었습니다. 백지와 백지 사이에 묵지를 놓으면 글씨를 쓸 때 아래 백지까지 글씨가 복사됩니다. 영적인 기갈은 육적으로 환경으로 번지게 되어 말할 수 없이 삶이 피폐해집니다. 피곤하고 지치게 됩니다.

 

사도행전 27장에서 바울과 죄수를 태우고 이탈리아로 가던 백부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들었다가 자신은 물론 그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이 죽을 뻔한 고생을 당하게 됩니다. 요나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다시스로 향하는 배를 타다가 큰 풍랑을 만나 내던져지고 마침내 고래 배속에서 사흘을 회개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자신의 생각과 지혜로 행하거나, 상책을 좇아 살아가거나, 세상풍조를 따라 살아간 결과 깊은 밤을 만나게 됩니다. 5:1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처럼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4: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하여 기도할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십니다(7:17). 뿐만 아니라 말씀에 합당한 선한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벧전3:21).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예수님의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가장 시초는 바로 주님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예수님의 형제와 자매와 모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